권흥기(소설가, 본지 논설위원)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로서 학창시절을 돌아보는 데에는 영화가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영화는 주로 야간에 상영하는데 밤에 극장에 얼씬거리기만 해도 품행이 바르지 못하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학생들이 보면 안 될 영화도 있고 쇼 같은 공연도 하여 극장 출입을 했다가는 교칙을 위반하여 불량학생이라는 오명이 따른다.

그런데도 영화는 제목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기 일쑤고 교실 안 화제였다. 몰래 영화를 본 급우는 한 동안 선망의 대상이 된다. 길거리에 나붙은 외국 영화포스터는 이국적이면서도 신기하여 시선을 모았다.

극장에는 관람료를 내야 들어간다. 절대빈곤이 사라지지 않은 때에 돈을 내고 극장에 가는 것은 예삿일일 수가 없었다. 온 집안이 농사 일로 밤낮없이 바쁜 농번기에 영화를 보는 것은 더욱 못되고 사치스러운 소행이었다.

하지만 가지 말라면 더 보고 싶듯, 호기심 많은 한창 나이에 영화는 여간 유혹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영화는 대중문화의 총아지만 문화생활을 누릴 시설이 빈약했던 오육십년대에 누리던 인기에 비교하기는 어렵다. 한밤인 듯 캄캄한 극장 안에서 바깥세상을 잊은 채 스크린에 몰입하면 환상의 세계가 따로 없었다.

은막에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얘기가 전개된다. 애절한 사랑이 있고 참혹한 전쟁이 있는가 하면 초인적인 영웅이 등장한다.

새신랑이 된 게리 쿠퍼가 악당과 결투를 벌여 마을에 평화를 찾아 준 뒤, 아내와 마차를 타고 황야를 달리는 가운데 점잖은 듯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제가가 흐르는 『하이눈』같은 정통서부영화도 있다.

사필귀정을 주제로 한 『세인』이나 『오케이 목장의 결투』같은 서부극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넘치는 스릴과 장엄한 스펙터클’이라는 광고 구절처럼 성서에 나오는 얘기를 은막에 되살린 종교영화가 있고 냉혹한 암흑가의 세계를 그린 갱 영화도 있다.

전사한 줄 알고 거리의 여인이 된 가난한 주인공이 연인이 전장에서 돌아온 것을 알고 죄책감을 못 견뎌 다리에서 투신하는 『애수(哀愁)』는 젊은 여성들에게 한층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일본인의 모진 근성을 엿볼 수 있는 『콰이강의 다리』는 전쟁영화의 고전일 뿐 더러 주제곡인 휘파람 행진곡은 오늘날에도 듣는 명곡이다. 감명 깊은 방화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김진규와 여성 고전미의 전형인 최은희가 주연한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시집가는 날』과 『갯마을』등은 우리의 향수 짙은 삶과 정서를 사실적으로 그린 명작이었다.

인기 정상의 청춘스타 엄앵란과 신성일이 팬들뿐만 아니라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던 결혼을 한 때도 육십년대였다. 시골의 가설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날은 축제분위기를 자아냈다.

컬러텔레비전이 나오면서 영화는 사양길로 들어서는 듯했다. 미국 대형 영화사가 일본 기업에 매각되어 영화는 급속히 쇠락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방에서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는 드라마가 스크린을 따르지는 못한다. 거대한 장면을 텔레비전 모니터에 담을 수는 없다. 탤런트와 영화배우가 주는 인상도 다른 것 같다.

탤런트가 이웃 사람인 듯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반면 스크린을 누비는 배우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스타’라는 말처럼 대중으로부터 저만큼 비켜선 곳에서 신비로운 이미지를 지니는 듯했다.

영화는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스필버그가 감독한 『쥬라기 공원』이 거둔 10억불의 수익은 우리나라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하여 얻는 이익을 넘어선다는 보도도 있었다.

영화는 배우와 시나리오, 음악, 영상 기기 등 여러 분야가 복합적으로 어울린 종합예술로서 앞으로도 첨단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변신을 거듭 할 것이다. 사람과 사물이 관객을 겨냥해 은막을 박차고 달려오는 듯 박진감을 주는 3차원 입체 영상인 ‘3D영화’ 『아바타』는 1,300여만명이 관람했다.

우리고장에 곧 복합대형영화관이 완공된다. 버스터미널이 있던 자리에 숙원이던 대형영화관 신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허름하던 터미널 건물이 허물어지고 빈자리가 말끔히 정지되는가 싶더니 크레인이 높이 솟았다. 롯데시네마측은 11월경에 개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층은 근린생활 시설로, 2,3층은 6개관 906석 규모의 영화관이 지어진다고 한다.

우리 고장에는 본래 아카데미극장과 영주극장이 큰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듯 서 있었다. 영화가 퇴조하면서 극장이 사라진 자리에 새 건물이 섰고, 한 곳은 유흥업 장소로 이용되다가 관공서가 지어져 사라졌다.

영화를 선호하는 젊은이들은 차량 편으로 이웃 고장을 찾아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시민들도 영화관이 없는 고장이라는 데에 심정적으로 부담을 느꼈을 것 같다.

시장은 ‘시민의 숙원이던 대형영화관이 쇼핑몰과 함께 건립되어 터미널 이전에 따른 구도심 공동화 문제가 해결되었으며, 영화관이 영주시의 랜드마크가 되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제 편의시설을 갖춘 현대식 영화관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대중문화의 꽃인 영화를 제 자리에서 볼 수 있어 시민의 문화생활도 한 차원 향상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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