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산지나 구릉에 위치한 사찰은 대개 종심형(縱心型) 공간 구조를 가진다. 그리고 중심축을 따라 안으로 접근할수록 위계가 높아지는 게 보통이다. 소위 기승전결의 구성인 셈이다.

부석사는 대표적 산지형 가람이다. 사찰 입구에서 천왕문까지의 도입 공간이 기(起)라면, 천왕문에서 범종루 앞까지가 전개 공간인 승(承)에 해당하고, 여기에서 축이 꺾이면서 전환점이 되는 안양문까지가 전(轉)의 공간이다.

안양루와 무량수전은 극락을 상징하므로 결(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부석사를 좀 새겨볼라치면 사전에 이런 관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더구나 중심축 건물 안을 통과할 때마다 소위 폐쇄시각(vista)이라는 기법으로 풍광을 마치 액자 속의 그림같이 시각을 고정시킴으로써 다음에 전개될 중요 건물을 강조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이런 맛을 담당한 한 축이 이른바 ‘부석사의 석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필요한 구간마다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 전체 구간이 맛깔스럽게 정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부석사에서 규모가 가장 큰 석축은 회전문을 떠받친 대석단인데, 무려 그 높이가 4.3미터, 길이가 75미터나 된다. 큼지막한 돌을 면바르게 맞춰 놓고 그 사이에 작은 잔돌을 끼워 넣어 허튼 층으로 쌓은 것이다.

군데군데 돌을 오려 넣어 자연과 인공을 절묘하게 배합한 수법이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전경을 단번에 보여주는 평면적 구조와는 달리 하나하나를 세밀히 살필 수 있도록 우리네 헤픈 습관까지 적절히 통제하고 있어 기막히다.

대중을 실어 나르는 넓은 주차장과는 달리 사찰 입구로 다가설수록 점점 길이 좁아져서 개인수행이 중심 되는 불가의 언저리임을 넌지시 암시해준다. 사실 주차장에서는 사찰이 철저히 가려져 있다.

중턱에 사찰이 위치할 거라는 막연한 추측에 산 쪽으로 무작정 접근하다보면, 매표소로 진입하기 전 할머니 노점상 뒤 작은 바위에 글씨가 새겨져있다.

‘虛門洞天(허문동천)’. ‘虛門’은 문짝이 없는 빈 문이란 뜻이며, ‘洞天’은 신선이 사는 세계이니, 즉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란 뜻이 된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천왕문까지 오르는 길은 은행나무가 양편에 도열하는 제법 잘 알려진 길이다. 앞뒤도 잘 트이지 않으면서 경사까지 급하게 주어 오로지 오르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설계된 이 구간은 도입 구간이라 기(起)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천왕문을 지키는 사천왕들의 검문을 잘 통과해야만 비로소 경내가 된다. 이곳은 부석사에서 가장 웅장하다는 대석축이 진행방향을 단단히 가로막아 서있다. 사찰에 대한 궁금증이 극대화되도록 한 설계이리라.

한곳으로만 놓인 훌쩍 높은 돌계단도 격한 숨소리의 고행을 위해 일부러 만들어놓은 듯하다. 석축 계단을 모두 올라서야만 광대한 뒷모습도 열리기 시작한다. 힘들게 올라 다음 전개를 기대하는 이곳은 승(承)의 구간이다.

대석단을 올라서면 바로 범종루의 우뚝한 모습이 회전문의 폐쇄시각으로 트리밍 되어 더욱 강한 어필로 다가온다. 이 공간에서는 여러 모습의 건축물들이 제 나름의 양태를 출품하게 되는데, 없어진 법당을 대신하여 범종루가 자신을 대표로 내세우고 있다.

가로배치로 일관된 건축물에 대한 반기를 드는 듯 부석사의 중앙을 차지하여 카메라 앞에선 여인네들처럼 옆모습을 내세우는 파격을 주고 있다.

그래서 범종루의 남쪽 지붕은 날렵한 팔작지붕의 옆모습으로 단정하다. 이에 비해 북쪽으로는 꽉 막힐 것을 우려하여 열린 구조의 맛배지붕을 선택하는 파격의 연속을 보이고 있다.

뒷마당 괘불걸이의 위치로 보아 그 옛날 야단법석은 범종루 마루까지도 법회 공간으로 사용된 듯하다. 이곳 범종루 아래에서 부석사 공간 구조의 가장 큰 특징이랄 수 있는 소위 절선축(折線軸)까지가 전(轉)에 해당한다.

안양루 밑을 지나 마지막 석축 위를 올라서면 무량수전 앞 중정에 이르게 되고, 당당한 모습으로 선 무량수전과 마주하게 된다.

이 공간이 극락을 상징하는 가람의 종국점이므로 결(結)에 속한다. 통상 금당에 해당하는 건축물은 남향 정면에 본존이 봉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법당의 좌측, 즉 서쪽에 본존이 모셔져 있다.

이를 두고 아미타불이 서방정토의 극락교주이기 때문에 서쪽에 자리한 것이라고 흔히들 설명하지만, 사실은 무량수전이 금당(金堂)이 아니라 강당(講堂)이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처럼 부석사 공간구조는 기승전결 형식에 따른 종심형 가람 배치, 정연하고 힘 있는 석축단, 파격적인 건축물의 설정, 드러나지 않는 오묘한 공간처리 등이 조화되어 있어 그 디자인 수준 값을 한없이 높이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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