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사진설명>
▲청량산 공민왕당(광감전)에서 백중제를 지내는 모습

청량산 공민왕당(광감전)에서 백중제를 지내는 모습청량산은 공민왕 신앙의 중심지이다.

이곳에 임시궁궐을 짓고 군사를 훈련시켰으며, 수레를 타고 순찰을 다녔다는 오마도(五馬道)가 있고, 밀성대는 군법을 어긴 군사들을 처형했던 곳이라 한다. 축융봉 동남쪽에 공민왕이 쌓았다는 성터가 고즈넉이 남아 있다.

또, 산성마을에는 공민왕을 모신 제당, ‘공민왕당’이 남아 있다. 이를 중심으로 북쪽에는 부인당, 남쪽으로는 어머니당, 딸당 등 가족단위의 사당이 청량산을 둘러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마을사람들도 700여 년 동안이나 동제를 올려 그 인연을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다. 공민왕 저택을 지키는 호위무사들이라고나 할까?

역사적 인물이 신격화 되는 데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업적의 위대함, 비극적 종말, 그리고 전승집단과의 친분성이 그것이다. 최영장군의 장군당이 그렇고, 단종의 고치재서낭당이 그렇고, 금성대군 두레골서낭당이 그렇다.

공민왕은 즉위 초부터 반원정책을 실시한다.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충렬왕에서 충정왕까지 써 왔던 ‘충’자의 굴레를 버려 국가적수모를 회복한다.

원나라의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 땅을 되찾고, 이어 토지제도와 관제를 개편하여 권문세족의 기득권을 해체함으로서 국가의 중흥을 꾀하였다. 여기까지가 공민왕의 위대성이다.

그러나 원나라 노국공주를 왕비로 맞아 극진한 사랑을 베풀었지만 그녀가 임신 중에 죽음을 맞아함으로써 후사를 얻지 못한다.

이로 인해 비탄에 빠진 국왕이 비정상적인 동성애에 빠져 신하에게 시해 당함으로서 참담한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된다. 이곳 사람들은 이곳에 왔던 왕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인연으로 그의 생애를 안쓰럽게 지켜보게 되었고, 이런 연유가 그를 지역공동체 신으로 좌정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초기에는 청량산에만 국한되었던 이런 정서가 점차 인근지역으로 확산되어나갔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고려 제31대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제2차 침입은 당시의 수도 개경을 단번에 함락시키니 어쩔 수 없이 왕과 그 일행은 그해 동짓달 소백산맥을 넘어 남쪽으로 몽진하게 된다.

처음에는 순흥고을을 택했지만 산바람이 너무 차다는 이유로 복주(福州-안동)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공민왕은 추운 겨울날, 개경을 떠나 이곳으로 오는 동안 피폐한 민심을 직접 보았고, 이렇다 할 백성들의 대접도 없어 온갖 고초를 겪으며 소백산맥을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관과 민들이 합심하여 공민왕 일행을 받들었다. 이곳에서의 따뜻한 영접으로 겨울을 나고 이듬해 2월 개경이 수복되면서 환도하였다.

왕이 이곳을 기억하여 안동을 대도호부로 승격시키고, 재물을 하사하여 감사의 뜻을 표시하였다. 사람들은 고려왕실이 여기를 충절의 고장으로 인정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까닭으로 청량산을 중심으로 한 이곳에는 공민왕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축융봉 아래 산성마을에 있는 공민왕당은 공민왕을 마을신으로 모시면서 매년 정월 보름과 7월 보름(백중)에 동제를 올린다.

‘공민왕당백중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공민왕에 대한 신앙은 공민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산성마을을 중심으로 국한하다가 점차 인근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확산 과정에 공민왕의 선조와 가상의 후손까지도 신격화시켰다.

이리하여 공민왕과 공민왕 계열의 신들이 주변 마을 동신으로 좌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동신들은 모두 친족 관계이다.

처음에는 산성마을에서만 공민왕을 마을신으로 받들었지만, 나중에는 부인과 그의 어머니, 사위, 딸 등이 모두 신격화 되면서 청량산 일대는 과히 공민왕 신앙이 빼곡하게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공민왕 일족의 집성촌이 형성되었다고나 할까?

산성마을을 중심으로 한 하회마을·수동·용상동에서는 공민왕을 모셨고, 내살미·왕모산성의 왕모당에는 왕의 어머니 명덕태후를 모신다.

왕비 노국대장공주는 아랫뒤실·윗뒤실, 형 내외를 모시는 곳은 단천리, 딸은 가송리 공주당·등자다리 구티미, 사위는 새터, 아들은 고계동다리, 손자 내외는 소용골에서 모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중 공민왕과 그의 왕모인 명덕태후, 부인인 노국대장공주를 제외하면 모두 가상의 인물이다. 이른바 짝퉁 서낭당인 셈이다.

이들을 포함하여 현재까지 공민왕 관련 신앙이 전승되고 있는 곳은 산성마을의 공민왕당, 도산면 가송리의 공주당, 왕모산성의 왕모당, 명호 북곡리의 부인당 등을 포함하여 주변 지역 10여개 마을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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