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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 전몰용사 예우 이래도 되나
  • 오공환 기자
  • 승인 2017.08.31 14:35
  • 호수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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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 동안 외면당한 전쟁영웅의 한(恨)
조카 이문학씨 숙부 명예회복 ‘동분서주’

“공무원으로 있을 때는 진정서도 못 올렸는데 자손도 없고 부모형제자매 벌써 다 돌아 가시고 아무런 혜택이 없지만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숙부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회복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전 봉화군청 공무원 이문학(62)씨가 최근 숙부 이도규씨(생존 시 88세, 당시 하사, 전투병, 군번 9215283)의 명예를 회복 시켜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숙부 이씨는 1929년 5월 7일 출생해 6·25전쟁 중이던 지난 1952년 6월 5일 당시 제주도에 있던 육군 제1훈련소에 입대 한 후 1년 뒤인 1953년 6월 22일 강원도 양구군 수립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24살의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바친 지 7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까지 정부로부터 그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조카 이씨가 숙부에 대해 털어 놓은 사연은 이렇다. 

숙부는 1952년 11월 2보충대(춘천지구 수용대)로 전속돼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생사를 넘나드는 전란 통에 복무를 하다 다시 같은 해 11월 7사단 8연대로 전속돼 낮에는 중공군과 북한군에 밀리고 야간에는 조명탄을 쏴 올려 다시 북진을 감행했다.

당시 휴전협정을 불과 7일 앞두고 중공군 135사단이 대대급 규모로 7사단이 지키고 있던 425고지를 공격해 왔다. 남한 전력의 30%를 차지하던 화천 발전소를 빼앗기 위해서였다.

당시 7사단의 중대장 김 모 대위는 부하 160명과 함께 백병전을 벌여 중공군 950명을 사살하며 고지를 지켜냈다.

또 그는 제7보병사단 8연대 소속으로 휴전을 앞두고 한 치의 땅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치고 밀리고 치고 밀리는 가장 치열했던 최전방 강원도 양구군 수립지구(미 수복) 중동부 전선 ‘938고지에서 전투 중 1953년 6월 22일 적의 포탄 낙하로 인해 흉부 파편창(破片創, 당시 군부대 화장보고서)’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만다.

숙부가 속한 제7보병사단 8연대는 1950년 10월 18일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해 김일성대학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공로를 세웠던 부대다.

조카 이씨는 “숙부가 돌아가시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으며 그의 맏형은 양식이 없어 아사(餓死)하고 부인은 가출하는 등 가사의 비탄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며 “부모형제들도 생전에 변변한 생일상이나 기일 제사 한번 올리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한 평생 한을 품고 사시다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당시 전시 상훈법에 의해 ‘가 수여증’과 재봉다리(숙부의 화장분)를 전해 받은지 67년이란 세월이 흐렀다는 조카 이 씨는 “현재까지 훈장은 커녕 6·25 국가 유공자증이나 전쟁영웅호국기장, 참전 용사증 하나 수여하지 않는 것이 현 대한민국의 보훈실정”이라고 말했다.

‘가 수여증’은 6.25 전쟁 당시 전시 상훈법에 의해 전투 유공자들에게 무공 훈장을 수여할 것임을 증명하는 문서이지만 이 조차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지난 2011년 10월 1일 국방부는 6.25전쟁 참전자 중 서훈 누락자 추가 서훈 계획을 공고하고, “6·25전쟁에 참전하여 공적을 세우고도 무공훈장을 받지 못한 자에게 서훈함으로서 수훈자들의 자긍심과 명예를 고취하고 국민의 호국정신 함양을 목적으로 한다”고 발표했지만 이 씨 숙부에 대한 무공훈장 추서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선배전우 명예선양활동’의 일환으로 ‘6·25전사자 및 무공훈장 유가족 찾아주기’사업을 추진했다.

이 ‘선배전우 명예선양활동’을 위한 유가족 무공훈장 대상자 명단에는 6·25참전 당시의 전사자, 명예제대, 만기제대, 실종, 전공상 전역, 불명, 의가사, 병역면제자, 순직자 등 참전 용자에 대해 모두 무공훈장을 수여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이 씨는 “숙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사를 했는지 집안에서 전혀 모르고 있다가 어렵게 사정사정 해가며 관계 당국에 전사자 화장보고서(당시 군부대), 전사통지서(당시 군부대), 병적확인서, 군인가족 기장수여 증서(경북지구 병사사령관), 유가족 증명서(국방부 장관) 등 많은 증빙자료를 찾아냈다”며 “자료를 통해 6·25참전 전몰용사임이 확실하고 무공훈장 서훈누락자로 판명됐으며 당시 1계급 특진 기록(육군본부)까지 있는 참전전몰 유공 용사임에도 추서하지 않음은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 “다같이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뚜렷한 공적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비정상적인 관행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육군본부 자료에 따르면, 당시 봉화군내에만 203명(전사자 8명)이 6·25참전용사 무공훈장 수여대상으로 확정돼 그 유가족 찾기를 한 바 있고, 근래에는 당시 전선에서 전사자 유골을 찾아 DNA검사를 통해 후손에게 훈장을 수여한 바도 있다.

이 씨 숙부의 경우 강원도 양구지구 전쟁기념관 및 전투 기념탑과 봉화군 6·25참전 용사비 등 모든 전쟁기록에 모두 빠져 있다.

오공환 기자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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