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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 ‘새끼실’우리마을탐방[163] 안정면 신전2리 ‘새끼실’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7.08.25 13:58
  • 호수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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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실 전경

고려 때 기실(基室)에서 유래한 마을 ‘새끼실’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깨끗하고 선진된 마을

안정면 새끼실 가는 길
안정면사무소에서 풍기방향으로 1km 가량 올라가다보면 도로 왼쪽 은행나무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마을이 새끼실(新田)이다. 산(山)을 등지고 내(川)를 바라보는 마을 풍광이 아름답다.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한다. “정말 그림같이 이쁜마을”이라며 “꼭 가보고 싶고, 살고 싶은 마을”이라고 말한다. 지난 13일 오후 신전2리 ‘새끼실’에 갔다.

이날 마을 회관에서 박태진 이장, 김박무 노인회장, 신복주 부녀회장, 신승호 씨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새끼실의 유래와 전설을 듣고 왔다.

신전2리 표석

역사 속의 새끼실(新田)
새끼실 지역은 신라 때 기목진(基木鎭), 고려 때는 기주(基州), 1413년(태종 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기천현(基川縣.풍기의 옛이름)에 속했다. 

1450년 문종(세종의 아들)이 즉위하자 문종의 태(胎)를 은풍 명봉산에 안치한 처우(處遇)로 은풍(殷豊)의 풍(豊)자와 기천(基川)의 기(基)자를 따 풍기(豊基)로 고치고 군(郡)으로 승격됐다.

조선 중기(1700년경) 무렵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정비할 때 풍기군 생고개면(生古介面) 신전리(新田里)가 됐다. 그 후 1896년(고종33) 행정구역 개편 때 생고개면(生古介面)이 생현면(生峴面)으로 바뀌면서 생현면 신전리가 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영주군으로 통합하고, 풍기군의 생현면, 동촌면, 용산면을 통합하여 새로운 안정면(安定面)을 만들었다.

면의 이름을 ‘안정면’이라 한 것은 풍기의 지명을 안정(安定)’이라고도 불렀기 때문에 옛 지명에서 유래하여 ‘안정면’이라고 칭했다.

이 때 향산동(香山洞)이 신전동(新田洞)에 포함되어 살포정을 신전1동, 새끼실을 신전2동, 향산동을 신전3동으로 분동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안정면소재지를 내줄동에 두었다가 신작로가 생기면서 신전동(새끼실)으로 옮겼고, 1920-25년경 살포정에 면사무소를 신축하여 신전1리로 이전했다.

경로당 준공(2008.10.2)

지명 유래
마을 표석에 ‘신전2리’ ‘새끼실’이라고 새겨져 있다. ‘신전’이라는 지명은 300여 년 전(1700년경) 행정구역을 정비할 때 이 지역 선비들이 상의하여 ‘신전(新田)’이라 이름 지었다.

그럼 ‘새끼실’이란 어디에서 유래됐을까?

박태진 이장은 “안정면지에 보면 ‘새로 개척된 마을’이라고 해서 신전(新田)이라 했다고 적혀 있다”고 했다. 김익자(78) 씨는 “오랜 옛날부터 ‘새끼실’이라 불러왔다”면서 “왜, ‘새끼실’이라 부르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 마을 신승호(70) 씨는 “고려말 공민왕 때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면서 “회관 앞에 있는 유래비에 보면 ‘기실(基室)에 터를 다듬고, 집을 지어 마을을 형성했다’라는 대목에서 ‘새끼실’은 기실(基室)에서 유래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합하면 “아주 옛날(고려) 이 마을의 이름이 기실(基室)이었다. 그 후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 마을이 없어졌다. 조선 중기(1700년) 무렵 이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영월신씨로 추정)이 옛터(기실)에 새로운 마을을 형성했다.

새끼실 유래비

당시 사람들은 옛 지명 ‘기실’ 앞에 ‘새’ 자를 붙여 ‘새기실’이라 불렀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발음이 변해 ‘새끼실’이 됐다”라는 설명이다.

우리나라 지명 유래에서 ‘실(室)’자가 들어간 마을들은 대부분 고려 때 형성된 마을로 보고 있다. 부석면에 가면 한밤실, 숲실, 노실, 보계실 등이 있는데 모두 고려 때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또 옛 풍기의 이름이 기목진(基木鎭), 기주(基州), 기천(基川)으로 변해왔는데 모두 ‘터 기(基)’자를 쓰고 있어, 기실(基室)은 ‘기천(基川)에 속한 작은 마을 이란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사람은 “생현과 줄포 사이에 끼여 있다 하여 ‘새끼실’이라 불렀다는 전설도 있다”고 말했다.

100년 고택

마을의 개척
새끼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이다. 봉화봉(烽火峰.옛 망전산봉수대)을 뒷산으로 하고 남원천(南院川)과 신전(新田)들을 바라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 터다.

박 이장은 “비스듬한 산기슭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우리 마을은 1500년경 영월신씨(寧越辛氏, 시조 辛鏡)가 개척한 마을”이라며 “개척 당시 각종 수목이 무성하고 여러 종류의 새가 서식했다는 구전이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분규(86) 할머니는 “예전에는 영월신씨 2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으나 지금은 7집만 살고 있다”며 “이 마을 출신으로 고 신낙선 교장 등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말했다.

안정제일교회

마을 교회
마을 가운데 교회가 우뚝하다. 일요일 오후 예배가 끝날 때쯤 안정제일교회에 갔다. 교회마당에서 장순욱(67) 목사, 우병문(70) 장로, 김박무(76) 노인회장을 만났다.

장 목사는 “1949년 본 교회가 설립되어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로 70년을 함께 했다”며 “새끼실은 박태진 이장님의 리더십으로 더욱 살기 좋은 마을이 됐다. 언제나 마을과 함께하는 교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병문 장로는 “당초 새끼실 마을 앞에 설립되었던 안정제일교회는 신전1리로 이전했다. 그 후 새끼실, 향산, 안심2리 사람들이 옛 터에 다시 교회를 세워 오늘에 이르게 됐다”며 “농촌 인구 감소로 등록 교인은 50명이 조금 넘지만 출석 교인은 40여명 정도 된다”고 말했다.

500년 동수목

500년 수령 동수나무
마을 앞 논 가운데 수령 500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해마다 정월대보름날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서낭제를 지냈다고 한다.

김영세(73) 씨는 “1999년까지 도가를 정하고 깨끗한 사람으로 제관을 선정하여 서낭제를 지냈으나 농촌 인구의 감소와 제관 선정에 어려움 등으로 폐지되어 아쉽다”며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늘 옛것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박무(76) 노인회장은 “새끼실은 산도 들도 푸르름이 넘실거리는 풍요로운 마을”이라며 “봉수산이 바람을 막아주고 남원천이 신전들을 넉넉히 적셔 주어 해마다 풍년을 기약하는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말했다.

새끼실 사람들

새끼실 사람들
지금 새끼실은 40여호에 70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앞에 현대식 건물로 잘 지은 경로당이 있다. 마을 사람들과 출향인들이 정성을 모아 2008년에 준공한 마을회관 겸 경로당이다.

정경자(71) 노인회부회장은 “우리마을도 독거노인들이 많은 마을인데 경로당이 있어 참 좋다”면서 “같이 밥해먹고, 외로움도 달래고 서로서로 챙겨주는 따뜻한 경로당”이라고 자랑했다.

강용순(84) 할머니는 “박태진 이장님과 김박무 노인회장님이 앞장서서 에어콘도 새로 넣어 주고, 싱크대도 새로 마련해 주어서 감사하다”며 “부자마을은 아니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정을 나누며 사는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김양자(75) 씨는 “마을에는 맑은 물이 나는 샘이 여러 군데 있고, 마을 앞에 남원천이 흘러 사람 살기 딱 좋은 마을이었다”면서 “예전에는 쌀이 최고라서 앞들이 모두 벼농사뿐이었지만 지금은 사과 등 특용작물 재배로 신전들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깔끔한 마을길

이동숙(71) 씨(반장)는 “질퍽하고 어수선한 마을길을 아스콘으로 포장 완료하여 마을이 더욱 쾌적하고 깔끔해졌다”면서 “박태진 이장님이 주선하고 마을 사람들이 합심 제2의 새마을운동을 추진하여 선진(先進) 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신복주(61) 부녀회장은 “우리 새끼실은 어르신들을 챙기는 일을 우선으로 한다”며 “정월대보름 마을윷놀이, 봄에는 효도여행, 5월의 어버이날 행사 등을 통해 효를 실천하고 있다. 마을의 주요 행사 때마다 김차이(64) 이장님 사모님과 차영희(61.총무) 전 부녀회장님이 봉사활동을 많이 하신다”고 말했다.

최화자(70) 씨가 ‘히티재를 넘으며’ 보릿고개 이야기를 할 때 모두가 숙연해 했다. 나이 서른에 혼자되어 아이 셋을 훌륭히 키운 최화자 씨를 모두 응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안정면 신전2리 새끼실마을 사람들>

박태진 이장
김박무 노인회장
신복주 부녀회장
정경자 노인회부회장
이분규 할머니
강용순 할머니
김익자 씨
김양자 씨
김영세 씨
이동숙 씨(반장)
장순욱 목사
신승호 씨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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