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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봉 정기 담은 화복(和福)한 마을 ‘소미(牛山)’우리마을탐방[162] 봉현면 두산2리 ‘소미·수용골’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7.08.18 17:02
  • 호수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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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미마을 전경

고려 왕건 남정 때 가마(輦) 머문 등항성(登降城)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탑프루트 사과단지’

봉현면 소미 가는 길
소미(牛山)는 도솔봉(兜率峯) 동쪽 두산천(斗山川)을 따라 길게 자리 잡은 마을이다.

풍기(봉현) 남원네거리에서 죽령방향으로 1Km 가량 올라가다가 두산삼거리에서 국립산림치유원(다스림) 쪽으로 1.2Km쯤 올라가면 두산2리 소미마을이 나온다.

지난달 30일 화목하고 다복한 마을 소미에 갔다. 이날 마을 회관에서 박재열 이장, 황상갑 노인회장, 황보 종 마을 원로, 유옥남 부녀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소미마을의 역사와 전설을 들었다.

두산2리 표석

역사 속의 소미마을
풍기군지(豊基郡誌)에 보면 두산2리 지역은 1413년(태종13년)�조선의�행정구역을�8도제로�정비할�때�기천현(基川縣.풍기의 옛 이름)에 속했다. 1450년 문종(세종의 아들)의 태(胎)를 은풍 명봉산(鳴鳳山)에 묻은 덕으로 은풍(殷豊)과 기천(基川)의 이름을 따 ‘풍기(豊基)’라 하고 군(郡)으로 승격했다.

조선�중기 무렵(1700년대)�행정구역을�면리(面里)로�정비할�때�풍기군�와룡동면(臥龍洞面)�두치동리(豆致洞里)에 속했다가 조선�후기�1896년(고종33)�행정구역을�13도제로 개편할�때�경상북도 풍기군�와룡면(臥龍面)�우산동(牛山洞)으로�분리됐다.

1914년�일제(日帝)에�의한�행정구역�개편�때�풍기군, 순흥군, 영천군을 영주군으로 통합하고, 풍기군의 와룡면과 노좌면을 통합하여 봉현면이라 칭했다. 또 와룡면의 두치동, 우산동, 신기동(지경터)을 통합하여 두산동(斗山洞)이라 했다.

당시 ‘봉현면’이라 한 연유는 한천동 앞에 있는 봉정지(鳳停地)에서 유래하여 봉새 봉(鳳)자에 고개 현(峴)자를 써 ‘봉현면(鳳峴面)’이라 했고, 두산동은 두치의 두(斗)자와 우산의 산(山)자를 조합하여 두산동(斗山洞)을 탄생시켰다.

소미산 풍광

지명유래
예로부터 도솔봉(兜率峯)은 투구(鬪具)를 닮은 산이라 했다.

두산의 선비 고 김윤기(金潤基.1905-) 선생은 두산동지에서 “걸어놓은 투구 끈이 남북으로 갈라진 밑에 한가로운 초가들이 산재해 있으니 이 부락이 ‘소뫼’라는 동리다.

옛날 고려말부터 내려오는 소(牛) 공동묘지가 마산(馬山) 앞에 있었다. 소 묘의 묘(墓)자를 메 산(山)자로 변경하여 우산리(牛山里)라 불렀다”고 기록했다.

황상갑(81) 노인회장은 “소미란 마을 뒷산이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소뫼’라고 불렀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발음이 변해 ‘소미’가 됐다”면서 “그 무렵 이 마을 선비들이 소 우(牛)자에 뫼 산(山)자를 써 우산리(牛山里)라 칭했다”고 말했다.

박재열 이장은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느티나무 수령과 비슷한 1700년(약300년전) 전후로 본다”면서 “소미는 두산천을 따라 장장 3km에 걸쳐 산재한 마을이며, 수용골은 용의 형상을 한 골짜기에서 물이 솟아나온다 하여 수용골(水龍谷)이라 부른다. 정감록파 5가구가 살았는데 지금은 없다”고 말했다.

소미성황당

탑프루트 사과마을 소미마을회관 앞에서 길을 물었다.
심상용(82) 어르신은 “다스림 방향으로 1km 가량 올라가면 도로 좌측에 ‘영주농업대상 수상의 집’이란 표찰이 붙어 있는 큰 건물이 박재열 이장네 사과선별작업장”이라며 “박 이장은 영주 명품사과의 선구자로서 우리마을을 한국 최고의 사과단지로 만든 주역”이라고 말했다.

박재열 이장은 2017년 영주사과발전연구회장으로 취임하여 TAP(Top Apple Production) 완성을 위한 기술혁신에 박차(拍車)를 가하고 있다.

박 이장은 2009년 농업진흥청 탑프루트(최고의 사과) 사업평가에서 대통령 표창장을 수상한데 이어 장관상 등을 휩쓸었고, 2013년 영주농업대상 수상, 2014 싱가포르·대만 수출 선도농가 선정 등 영주사과를 전국최고의 사과로 만드는데 앞장 서 왔다.

박 이장의 이력을 보면서 불광불급(不狂不及)이란 사자성어가 떠오른다.�‘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인데 ‘피나는 노력 끝에 정상에 섰다’라는 뜻으로 인간승리에 비유하는 말이다.

마산(등항성)

등항성과 적전들
소미마을 동편 옛 봉현서부초등학교 바로 뒤에 있는 작은 산을 마산(馬山)이라 하고, 그 뒤에 있는 들을 ‘적전들’이라고 부른다.

옛 문헌에 의하면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918년)할 때 후백제(견훤) 정벌(936년)을 위해 죽령을 넘는다. 죽령을 지키던 견훤의 군사와 고려(왕건)의 군사가 이곳(적전들)에서 접전이 벌어졌다 하여 ‘접전들’이라 불렀는데 나중에 적전들로 발음이 변했다고 한다.

견훤의 군사를 제압한 왕건은 이곳(마산=등항성)에서 7일을 기다려 견훤의 항복(降伏) 문서를 받았다 하여 등항성(登降城)이라 부르게 됐다. 동국여지승람과 주세붕의 고적기, 송지향의 영주영풍향토지, 영주시사 등에 둥항성이 나온다.

조선 후기(1849년)에 편찬된 옛 풍기군지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고려 태조가 남정(南征)할 때 이 현(縣)에서 7일간 머물렀는데 이 때 백제(후백제 견훤)의 항복 문서가 도달했기 때문에 태조의 가마가 머물렀던 이곳을 ‘등항성’이라 하였다. (登降城 在郡西五里 諺傳高麗太祖南征時 留于此縣七日 百濟降書至 遂名駐輦處曰登降城)」

소미마을회관 준공식 모습

바람과 햇살이 좋은 마을
두산2동은 지경터 두산교에서부터 주치골 입구까지 두산천을 따라 띄엄띄엄 산재해 있다는 게 특징이다. 마을은 사과나무에 둘러싸여 있고, 앞과 뒤를 돌아봐도 모두 과수원뿐이다.

이도선(65)씨는 “우리마을은 하루종일 해를 많이 보고, 바람이 좋아 색깔 좋고 맛있는 사과가 열린다”면서 “양지마와 음지마 그리고 수용골까지 온통 사과천국”이라고 말했다.

안동 녹전에 살다가 6.25 후 소미로 이사 왔다는 정하교(91) 할머니는 “당시 초가집 100여호가 동남향으로 길게 자리 잡고 살았다”면서 “동으로 굽이쳐 흐르는 시냇가에는 화사한 아침햇살이 눈부시고, 빨래하는 아낙들의 정다운 풍광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됐다”고 말했다.

전통마을은 대부분 옹기종기 모여 사는데 반해 소미마을은 시내를 따라 길게 자리 잡은 이유가 궁금하다.

이 마을 황보 종(77) 씨는 “소미는 고리목재 넘어 예천 상리·하리 사람들과 사고막재 넘어 사인암·상선암 등 인근 산간 사람들이 풍기장을 보기 위해 오가던 길목이었다”며 “예전에는 나막신 등을 파는 가게와 주막이 즐비하게 들어서다 보니 길게 띄엄띄엄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수용골

소미마을 사람들
마을 중심에 350년 수령의 동수목(洞守木)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고, 그 옆에 성황당과 마을회관 그리고 소미정(牛山亭)이 있다.

황보 종 씨는 “소미는 병자년(1936년) 수해 등 여러 번의 수해로 고난을 겪었고, 1970년대 초까지 초가집에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가난한 농촌 이었다”며 “1973-74년에 지붕개량, 돌담집을 시멘트벽돌집으로 개량, 1975년에 전기가 들어오는 등 새마을운동을 선도적으로 추진했다”고 말했다.

유옥남(60) 부녀회장은 “매년 8.15에는 마을 사람들과 출향인들이 모두 모여 경로 행사와 대화합의 축제를 연다. 또 5월에는 효도관광을 떠나고, 면민체육대회는 때는 화합의 큰잔치를 연다”며 “소미마을은 자연의 축복 속에 넉넉한 마음으로 활짝 웃는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옛 봉현서부초등학교

김영춘(86)할머니는 “예전에는 작은 논뙈기에 식구는 많고, 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고 살았지만 지금은 100% 사과 농사에 머리를 잘 써서 잘 사는 농촌이 됐다. 또 나라에서 잘 해 줘서 노인이 행복한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최순덕(84) 할머니는 “2012년 마을회관이 준공되어 참 좋다”며 “식사도 같이 하고 외로움도 달래고 서로서로 돌봐주는 경로당이다. 좋은 시설을 마련해 준 노인회장님과 이장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옥자(78) 할머니는 “마을 회관에 보통 때는 15명 정도 모이고 많이 모일 때는 30여명이 모일 때도 있다”면서 “모둠별로 화투도 치고 윷놀이도 하면서 재미있게 지낸다”고 말했다.

동수목과 소미정(牛山亭)

회관에서 나와 느티나무 그늘에서 조순희(76) 씨를 만났다. 조 씨는 성황당을 가리키며 “성황신의 은덕으로 화목(和睦)하고 다복(多福)한 마을이 됐다”며 “박재열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이 정성을 모아 정월대보름날 성황제를 올린다”고 말했다.

<봉현면 두산2리 소미마을 사람들>

박재열 이장
황상갑 노인회장
유옥남 부녀회장
황보 종 전 이장
정하교 할머니
김영춘 할머니
최순덕 할머니
심상용 어르신
이옥자 씨
이도선 씨
조순희 씨
소미표 사과
영주농업대상 수상의집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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