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탐방 [156] 단산면 병산2리 ‘새터’

▲새터마을 전경

1910년 경주인 이철희가 터 잡은 마을   
나주나씨, 1949년 행갈에서 새터로 이주

▲병산2리 표석

단산면 병산리 새터 가는 길
영주 서천교사거리에서 회헌로를 따라 순흥·단산 방향으로 간다. 동촌2리(조개섬) 교차로에서 사천·단산방향으로 우회전 한다. 사천-바우-병산 앞을 지나 무궁화길로 접어들면 서쪽 산자락에 보이는 마을이 새터다. 지난 18일 꽃피고 새우는 숲속마을 새터에 갔다. 
이날 마을회관 옆 느티나무 쉼터에서 황동식 이장, 박상조 노인회장, 나춘광 전 영주경우회장, 나석원 종손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새터’의 내력과 옛 행갈(寒葛)의 전설을 듣고 왔다.

▲서창마을

역사 속의 병산2리
옛 문헌에 새터(新基)라는 지명은 없다. 1910년경 생긴 마을이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 고구려 장수왕(394-491) 무렵 단산·부석면 지역은 고구려의 이벌지현(伊伐支縣)이라 불렀는데 신라 경덕왕(재위.742-765)이 빼앗아 인풍현(인豊縣)으로 고치고, 급산군(급山郡.옛 순흥)에 예속 시켰다. 고려 때는 순흥부에 속한 (인풍) 현이 그대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고려 때 인풍현에 속해 있던 단산면 지역을 순흥도호부 ‘일부석면’이라 칭하고, 현 병산리 지역에는 병산리(甁山里)와 대지곡리(大枝谷里.행갈)와 서창리(西倉里)와 회석리(會石里)를 두었다.

조선 말 1896년(고종33년)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일부석면이 단산면(丹山面)으로 개칭되면서 순흥군 단산면 병산리(屛山里)·대지리(大支里.행갈)·서창리·회석리(젓돌)로 개편됐다. 그 후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이 영주군으로 통합되고, 단산면의 병산리, 대지리, 서창리, 회석리를 병산리로 통합했다가 해방 후 1,2,3리로 분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황동식(67) 이장은 “신기는 숲이 좋아 새들도 찾아들고, 귀농·귀촌도 많은 마을”이라며 “총 35세대(귀촌9)에 70여명이 사는 평화로운 마을”이라고 말했다.

 

▲100년수령 느티나무

새터(新基)마을의 생성
새터마을 입향조는 경주인(상서공파) 이철희(李轍熙)이다. 

이 마을 이의정(77.새터) 씨에 의하면 “이철희 재종숙께서는 안동군 녹전에 살았는데 1900년대 초 단산면 서창에 사는 박씨가(朴氏家)의 딸에 장가들어 처가에서 살다가 1910년경 새터로 살림을 나게 되었다”며 “그는 아들 5형제와 마을을 개척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느티나무도 입향조가 1915년에 심은 나무”라고 말했다. 

당시 병산리에는 병산, 서창, 회석동이 있었는데 마을이 새로 생겼다 하여 ‘새터’라고 부르다가 한자어를 붙이니 ‘신기(新基)’가 됐다. 

이 마을 김영일 노인회총무는 “해방 무렵 김해김씨와 경주김씨 일족이 신기로 이거하여 당시 5세대가 사는 작은 마을었다”면서 “6.25 전 1949년 행갈에 살던 나주나씨가 빨갱이들의 피습으로 20여 세대가 새터로 이거해 오는 바람에 큰 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나주나씨 가족묘원

나주나씨 옛 순흥 입향
신기의 나주나씨(시조 羅富)는 고려 태조 때 삼한공신에 오른 인겸(仁謙)을 중시조로 하고, 세조 13년(1467) 장성현감을 시작으로 나주진관절제도위를 지내고, 조선조 청백리 6인에 오른 은제(殷制.1419-1487)를 파조로 하는 청백리공파(淸白吏公波)다.  

나주나씨 종손 나석원(77.37세손) 씨는 “저의 10대조 이암공(怡菴公) 휘 태좌(泰佐.27세) 선조께서는 영조(英祖) 임금 등극에 공헌하시어 금위영 총융사직을 지내시다 간당(奸黨)의 모해(謀害)로 관직을 떠나 낙향하게 됐다”며 “공께서는 1730년대 초 부친(필국必國.26세)과 조부(재윤載允.25세)님을 모시고 한양을 떠나 죽령을 넘어 당시 순흥부 일부석면 대지곡리(행갈)에 터전을 잡으셨다”고 말했다. 

나춘광(87.전 영주경우회장) 후손은 “이암공 선조께서 행갈에 입향하시어 해방 무렵까지 200여년동안 후손이 크게 번성하여 60여 가구가 사는 집성촌을 이루었다”며 “그러나 1948-49년 공산주의자(빨갱이)의 만행과 피습으로 집이 모두 불타 이곳 새터로 이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옛 행갈마을 터

행갈 사건의 개요 
1948년 가을. 국군으로 가장한 빨갱이 10여명이 구장(이장 나기선씨)집에 나타났고, 마을 사람 40여명도 모였다. 빨갱이 대표가 공산당 찬양 연설을 진행하던 중 이 마을 청년회장(나석열)이 “야, 잡아라”하면서 총을 빼앗아 넘어뜨리는 순간 다른 빨갱이가 쏜 총알이 청년회장 가슴을 관통했다. 동네 청년들은 일제히 맨주먹으로 빨갱이들과 맞서 싸웠다. 총소리와 육박전이 한바탕 치러진 후 빨갱이들은 도망갔고, 총 맞은 청년회장과 마을사람 2명이 죽었다. 
빨갱이 2명도 현장에서 죽은 사건이다. 그 후 국군 1개 소대병력(지휘관 서 상사. 20명)이 주둔하여 1년간 마을을 보호했다. 군부대가 떠난 1949년 가을 빨갱이들이 이 마을에 내려와 집과 낟가리에 불을 질러 마을을 초토화시켰다.

 

▲마산둑

꽃피고 새우는 숲속 마을
도로변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마산둑’이라 한다. 옛날 이곳에 마씨(馬氏)가 살았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이 둑에 철철이 꽃이 피니 ‘꽃피고 새우는 마을이 맞다’라는 생각이 든다.

김재수 전 이장은 “마산둑에는 사철 끊이지 않고 꽃이 핀다”며 “이른 봄에는 산수유가 노란 천국을 만들고, 이어서 박태기가 피고 지면 연이어 벚꽃이 만발하니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이다”고 말했다.

박상조 노인회장은 “신기쉼터는 우리고장에서 가장 숲이 넓고 두터운 쉼터”라며 “마을 사람들 모두 이 나무 밑에서 여름을 난다. 그래서 에어컨·선풍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숲이 좋다”고 말했다.

김 전 이장은 또 “해마다 5월이면 이 느티나무에서 꾀꼬리가 새끼를 친다”며 “올해도 알을 품어 벌써 새끼를 쳐 나갔다”고 했다. 

노인회 김 총무는 “우리마을 숲에는 꾀꼬리 뿐만 아니라 크낙새, 황조롱이 그리고 이름 모를 새들이 찾아드는 숲 마을”이라며 “신기는 자연 그대로 평안한 마을”이라고 말했다.

 

▲무궁화꽃 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요즘 KBS가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방영하고 있다”며 “드라마를 보면서 무궁화꽃길을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단산면 무궁화꽃길의 중심이 새터마을 앞이다. 

김재수 씨는 “1980년대 심은 무궁화가 2013년 세상에 알려졌다”면서 “그동안 단산면에서 꾸준한 관리와 보식 등이 이루어졌으며, 새터마을 사람들이 지성으로 보살핀 결실이다. 이 무궁화는 꽃 중심부에 붉은 색 ‘단심’ 무늬가 있는 토종무궁화”라고 말했다.

 

▲신기쉼터

새터마을 사람들
황동식 이장의 주선으로 마을 사람들이 느티나무 쉼터에 모였다. 숲이 깊어 바람이 시원하다. 
황 이장은 “마을의 농업은 벼 50%, 과수 50% 정도로 보면 된다”며 “마을 사람들이 합력하여 숲을 잘 가꾸고 꽃나무(벚, 박태기, 산수유 등)를 심어 멀리서 보면 숲에 가려 집들이 잘 안 보인다”고 자랑했다. 김부자(81) 할머니는 “어디를 다녀 봐도 이렇게 좋은 나무그늘은 볼 수 없다”며 “신기쉼터는 우리 마을의 상징이고 자랑”이라고 말했다. 

이금순(81) 할머니는 “지금은 물이 흔하지만 예전에는 마을 앞 논 한가운데 샘이 있어 물 길어다 먹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며 “당시 정월대보름날이면 도가를 정하고 제관을 정해 샘에 고사를 지냈다”고 말했다. 

김복순(83)할머니는 “신기는 느티나무 숲 외에도 벚꽃 숲, 솔 숲도 있다”면서 “이렇게 마을이 깨끗하고 향기로운 것은 이장, 노인회장, 새마을 지도자들이 마을을 잘 가꾸고 경영한 덕분이다. 세상에 그냥 잘 되는 일은 없다. 모두 합력하고 노력하고 실천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말디딤돌

회관 옆에 하마비 같은 돌이 하나 있다. “무슨 돌이냐?”고 여쭈니, 김 전 이장은 “예전에 마씨(馬氏)가 이 마을에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며 “이 돌은 이 마을에 살던 마씨가 말을 타고 내릴 때 디디던 디딤돌”이라고 말했다.

이원식 시민기자

 

 

▲황동식 이장
▲박상조 노인회장
▲나춘광 어르신
▲나석원 종손
▲김복순 할머니
▲이금순 할머니
▲김부자 할머니
▲이의정 씨
▲김재수 전 이장
▲김영일 노인회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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