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155] 글 읽기 좋아하는(好文) 선비가 살던 마을 ‘두신(杜新)’

▲두신마을 전경

옛적 노실(魯室), 조선 때 호문단(好文丹)-호문(好文)
70년대 소득증대 선진마을, 지금 치매예방 으뜸마을

▲동수나무

부석면 노곡1리 두신 가는 길

노곡1리 두신마을은 단산면과 부석면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순흥·단산을 거쳐 부석으로 갈 때 노곡1리 두신마을 앞을 지나야 한다.
이 길은 봄이면 ‘봄향기 느끼기 좋은 길’로 유명하고, 가을이면 은행나무 단풍이 ‘끝내준다’는 명소이기도 하다. 또 노곡1리 사람들은 선비의 고장을 상징하는 길을 만들기 위해 해마다 꽃나무 수백 그루를 심기도 했다. 지난 12일 노곡1리에 갔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유득수 이장, 조규복 노인회장, 이금옥 전 부녀회장, 김재성 전 노인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옛 호문동(好文洞)의 유래와 두곡(杜谷)의 전설을 듣고 왔다.

▲100년고택

역사 속의 노곡리
‘노곡리(魯谷里)’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일제 때 부터다.
삼국사기에 보면 “부석면 지역은 고구려의 이벌지현(伊伐支縣)이라 불렀는데 신라 경덕왕(재위.742-765)이 이 지역을 취한 후 인풍현(인豊縣)으로 고치고, 급산군(급山郡.옛 순흥부)에 예속 시켰다. 고려 때 기록은 확인할 수 없으나 순흥부에 속한 (인풍) 현(縣)으로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고려 때 인풍현에 속해 있던 단산면 지역은 순흥도호부 일부석면, 용암·감곡리 지역은 이부석면, 부석사·소천·노곡리 지역은 삼부석면으로 개편됐다. 이 때 노곡리 지역은 순흥부(順興府) 삼부석면(三浮石面) 호문단리(好文丹里)가 됐다. 1896년(고종33년)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삼부석면이 봉양면(鳳陽面)으로 개칭되면서 순흥군 봉양면 하호문리(下好文里)가 됐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주군 부석면 노곡리가 됐다가 해방 후 노곡1,2리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두곡 본 마을

지명유래
노곡(魯谷)은 노실(魯室)에서 유래됐다. 실(室)자가 들어가는 마을은 대부분 고려 때 생성된 지명이다. 부석면에는 노실(魯室), 감실, 보계실, 숲실, 한밤실 등 실(室)이 많은 지역 중의 하나다. 노실에 대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 송지향의 향토지에 보면 “옛 노실(魯谷)에 진사 김철수(金喆銖)가 우거(寓居)하면서 글 읽기를 즐겼다”란 기록이 있다. 이를 근거로 호문단(好文丹), 호문(好文)이란 지명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두신(杜新)의 원조는 두곡(杜谷)인데 소쿠리형 안에 마을이 생겼다. 옛날 황(黃)씨 성을 가진 선비가 마을을 개척했다는 구전이 있으나 시대는 알 수 없다. 용수산(龍首山) 줄기가 뻗어 내려와 양팔로 마을을 감싸고 있어 비바람을 막아준다는 뜻으로 ‘막은골’ 또는 ‘망골’이라 불렀는데 당시 이 마을 선비들이 막을 두(杜)자에 골 곡(谷)자를 써 두곡(杜谷)이라 이름 지었다.
세월이 흘러 6.25 전인 1948년. 빨갱이로부터 산간주민 보호를 위한 소개령이 내려졌다.

이 때 노곡2리(듬실, 남절, 청계두들) 사람들이 대거 마을 앞으로 이거하여 새터마가 형성됐다. 동리가 번성하면서 양 동리가 서로 이어지니 동리 이름을 두곡의 두(杜)자와 새터마(新基)의 신(新)자를 조합하여 두신(杜新)이라고 했다.

▲고 조성환 선생

글 좋은 선비가 살던 마을
호문동(好文洞)이란 ‘글 좋은 사람(선비)이 살던 마을’이라는 뜻이다.
박영만(76) 노인회부회장은 “먼 옛날 노실마을에 글 읽기를 좋아하는 김 진사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며 “100년 전 남양홍씨, 청주한씨, 창녕조씨 등 여러 성씨가 두곡에 살 때도 글 잘 하는 선비가 있어 마을은 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춘(70) 전 이장은 “마을 앞산에 ‘서당골’이라는 지명이 전해온다”며 “1950-60년대까지 마을에 훌륭한 한학자(박용환·김송규)가 있어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여기서 공부한 학동들이 각계각층의 지도자로 많이 진출했다”고 말했다.

김재성(80) 전 노인회장은 “학교교육이 시작된 후인 1960년대까지도 마을 사랑방서당에서 학동들에게 한학을 가르쳤다”며 “당시 선성김씨 김송규(金宋奎. 삼재어른) 훈장과 함양박씨 박용환(朴用煥. 아동어른) 훈장님께서 강학을 할 때 멀리 부석·단산에서도 한학을 배우러 왔었다.
그 뒤 후학들이 학계를 조직하여 지금도 두 분 훈장(訓長)님을 기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시태(69) 노인회부회장은 “조규복 회장님의 부친이신 고 조성환(曺成煥) 선생은 30세에 마을 이장직을 맡아 새마을운동의 선구자로 활동하셨다”며 “당시 지붕 개량에서부터 마을길을 넓히고 다리를 놓고 창고를 짓는 등 23년동안 농촌 근대화에 헌신하셨다”고 말했다. 또 “이 마을 출신 한천호(74) 씨의 아들 한대균(46)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2000년 12월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현재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옛 두곡 동샘

동샘과 동소나무의 전설
아주 먼 옛날 이 마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할 때부터 샘이 있었다. 이 샘이 망골 안쪽에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조규복(77) 회장은 “예전부터 전해오는 동샘의 전설이 있다”면서 “여러 성씨가 이 마을에 살았는데 늘 물이 부족했다. 마을 원로들은 궁리 끝에 독지골 물을 끌어 오자는 방책을 내놨다. 마을 장정들이 독지골에 가서 두루미(물항아리)에 물을 담아 솔잎 마개를 막은 후 들것(擔架)에 거꾸로 세운다.

두 사람이 앞뒤로 들고 내려가면 가느다란 물줄기가 떨어진다. 장정들은 ‘물간다’ ‘물온다’라는 주문을 외우고, 마을 사람들은 ‘샘에 물이 많이 나오게 해 달라’고 산신께 고(告)하면서 마을까지 간다. 이는 물을 얻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이요, 기우제와 같은 민속신앙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또 “마을 가운데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었는데 고사(枯死)하고 동생 나무가 동소나무가 됐다”면서 “1974년 후 동신제가 없어지자 동소나무도 몇 차례 팔려나갈 위기를 맞이했으나 그 때마다 사려는 사람에게 변고가 생겨 끝내 팔려 나가지 않았고, 마을을 지키는 동신(洞神)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새터마을

애향심이 남다른 마을
유득수(64) 이장은 “50년 전 두신은 100호가 넘는 마을에 7-8백명이 살았으며, 지금도 60호에 120명이 사는 큰 마을”이라며 “출향인들의 모임인 ‘노곡향우회’는 남다른 애향심을 보이고 있다. 서울에서 향우회체육대회가 있을 때는 마을 사람들을 초청하여 화합의 대잔치를 여는 등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조규복 회장은 “우리마을 출향인들은 고향 사랑이 지극하다”며 “향우회 초대 김홍렬 회장(총무 조대환)으로부터 한천우, 강창웅, 홍태희, 이영섭, 신홍균으로 이어져 지금은 조규덕 회장이다. 모두 애를 많이 쓰셨다. 특히 이영섭(60) 전 회장은 어버이날 고향을 방문하여 3년째 50만원씩 효심(孝心)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머리와 연못

두신마을 사람들
두신마을은 용수산을 등지고 앞들을 바라보고 있다. 용수산 용머리 앞에는 연못을 파 용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했다. 마을 앞에는 자개봉(紫蓋峰) 동쪽 골짜기에서 발원한 양중천(옛이름봉계鳳溪)이 흐른다. 마을 앞 풍광이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전부 논이었는데 지금은 절반이 과수원이다. 유득수 이장은 “현재 마을 사람들 100% 사과 농사를 짓고 있어 소득이 높은 편”이라며 “귀농·귀촌 가구 수가 15가구로 부석면에 가장 높다. 그래서 인구가 줄지 않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 금해연(76) 씨는 “대부분 사과농사를 짓고 사는데 지난 1일 탁구공만한 우박의 강타로 피해가 매우 크다”고 하면서 “노인 대부분이 보험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농사를 망쳤다. 재난지역 선포 같은 특별 조치가 요구 된다”고 말했다.

단산면 구구리에서 시집와 여기서 60년 살았다는 서정기(80) 할머니는 “60년 전 마을의 모습은 비록 초가집이었지만 논이 많아 쌀밥 먹고 사는 마을이었다”며 “두신은 부석면에서 전기가 제일 먼저 들어오고, 마을회관도 제일 먼저 짓는 등 선진된 마을”이라고 말했다.

부녀회장을 20년 했다는 이금옥(76) 씨는 “예전에 글 잘 하는 선비가 많아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면서 “지금은 유득수 이장님과 조규복 노인회장님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셔서 늘 화합하고 화기애애한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이 마을로 시집왔다는 김경옥(71) 씨는 “노곡1리는 ‘예쁜치매쉼터’를 운영하는 선진된 마을”이라며 “모든 마을이 치매예방 교육을 하고 있지만 우리마을은 조규복 회장님의 특별한 관심과 열정이 있으셔서 치매예방 으뜸마을이 됐다”고 자랑했다.

▲옛 정미소

<두신마을 사람들>

▲두신마을 사람들
▲유득수 이장
▲조규복 노인회장
▲박영만 노인회부회장
▲김시태 노인회부회장
▲김재성 전 노인회장
▲박영춘 전 이장
▲서정기 할머니
▲금해연 씨
▲김경옥 씨
▲이금옥 전 부녀회장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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