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전 영주교육장·소백산자락길 위원장)

▲최근 신암폭포 부근에 세운 퇴계의 시비

신암폭포(新岩瀑布)는 봉화군 상운면 신라리와 안동군 녹전면 매정리 사이를 이은 좁은 협곡에 숨겨진 작은 2단 폭포이다. 신라리 숲댕이마을에서 보면 서남쪽, 매정리 담말에서 보면 동북쪽 중간쯤에 해당한다. 분명한 것은 신라리가 상류이다 보니 신라리 숲댕이 물이 이곳을 관통하여 매정리 담말을 적시게 된다는 말이다. 당시 자연을 관리 운영하던 구곡문화 등의 풍습으로 미루어보아 이 폭포를 발견한 이덕홍이 직접 이 폭포를 경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이 “퇴계선생과 제자 이덕홍이 학문의 뜻을 나누며 노닐던 장소로 사철 맑은 물이 흘러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선생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제자와 학문에 관해 깊은 대회를 나누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직접 폭포 옆에 ‘新岩瀑布’라 새겨 넣었다”는 내용에는 좀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실제로 두 분이 유상하며 노닐던 장소로는 신암폭포가 너무 좁은 협곡이며, 길 정상 턱걸바위에 음각된 ‘新岩瀑布’ 4글자는 가로 95㎝, 세로 120㎝ 넓이로 판을 다듬어 두 글자씩 세로로 새겨져 있는데, 그 오른쪽에는 작은 글씨로 ‘병오삼월일(丙午三月日)’이라 새겨져 있다.

이를 근거로 삼는다면 병오년은 간재의 나이 7세이거나 68세 되던 해에 해당하므로 퇴계나 간재가 각자한 글자로 보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간재가 신암폭포의 경치를 보여드리고 싶어 스승에게 한 번 찾아줄 것을 청한 건 사실이나, 춘삼월에 퇴계가 폭포를 찾았을 때는 마침 간재가 자리를 비운 사이라 만나지 못하고 시만 한 수 엮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런데도 “글자가 새겨진 ‘턱걸바위’는 퇴계선생이 공부를 하다 간간이 체력단련을 위해 턱걸이를 하던 곳이다.”라고 까지 미화시킨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간재는 1541년 장수면 호문리 녹동 외가에서 출생하여 10세 전후에 퇴계 문하로 들어가 학문에 열중하였고 50대 중반에 타계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근에 살고 있었던 간재가 신암폭포를 처음 발견했다는 기록은 모두가 일치한다.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은 외가인 영천군 남촌 구룡동(현재의 장수면 호문리 녹동)에서 출생하였다. 이후는 외내마을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간재가 살았던 ‘외내(汚川 : 현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마을의 ‘외(汚)’는 ‘우뚝한’이란 뜻이고, ‘내(川)’는 ‘시내’란 뜻이다.

외내는 영천이씨(간재 후손)의 세거지(世居地)이다. 풍수지리로는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金鷄抱卵] 형상으로, 많은 인물을 배출되어 예로부터 당시 ‘영천(영주) 제일향(第一鄕)’이라 불려 왔다고 한다. 특히 농암의 종손자인 이명홍·이복홍·이덕홍의 3형제가 모두 퇴계에게 급문하였고, 이덕홍의 아들 4형제는 한강(寒岡) 정구(鄭逑)에게 급문하여 학업을 닦았다. 이중 간재 이덕홍은 퇴계가 성명·자·호 3가지를 모두 지어준 유일한 제자로 평소 스승으로부터 총애를 받았고, 임종 시 그의 서적을 모두 물려받았다.

많은 성리학적 저술을 남겼으며, 임진왜란 시 거북선 원형설계도로 추측되는 『귀갑선도(龜甲船圖)』를 제작하여 바다에는 거북선, 육지에는 거북거[龜車]를 진언한 바 있다. 또한 간재의 세 아들이 식년시에 동시에 급제하여 조선조 과거역사상 ‘3형제 동반급제’라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평은면 천본리 부곡(오계서원)에서 건너다보이는 간재 종택 외내마을 이야기이다.

가까이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부곡(釜谷)에는 간재를 배향한 오계서원(汚溪書院)과 간재가 건립한 군자정(君子亭 : 경북유형문화재 제276호)이, 장수면 녹동(鹿洞)에는 간재선생강생유지비(艮齋先生降生遺址碑)가 있다. 또한 도산서원 옥진각에는 간재가 제작한 혼천의(渾天儀 : 천문관측기구)가 보관되어 있다.  

이곳 외내마을은 본래는 고구려의 매곡현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선곡도호부(선곡현=매곡현)의 소재지가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상당한 규모를 갖춘 마을이었으나 현이 예안으로 옮겨 간 뒤 마을 규모가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고증이 미흡하지만 큰 창고, 옥터 등이 전한다고 한다. 조선 전기에는 예안현에 속해 있었고, 조선 후기에는 영천군 천상면 오천리(현 평은면 동부지역)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동군 녹전면 원천리에 편입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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