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

60년대만 해도 가정용 유선 전화는 재산 목록에 들어갈 만큼 귀했다. 전화보급률이 미미하여 그만큼 희소가치가 있었다. 시골에는 행정관서에나 있을 뿐 전화가 전무하다시피 한 마을이 많았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동네도 있어 전화는 먼 나라 얘기였다. 학교의 가정환경 조사 항목에서도 전화의 유무가 빠지지 않았다. 학교 다닐 적, 선생님 앞에서 집에 전화가 있는 급우들이 보란 듯이 한 손을 힘차게 들어 올리는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전화가 본래의 소통 기능을 넘어 부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재산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전화로써 편리해진 생활을 생각하면 귀한 대접을 받을 이유가 충분히 있다. 우선은 먼 곳에서 가느다란 전선을 타고 온 목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신기하다. 입 밖을 나오면 사라지던 말이 요술을 부린 듯 먼 곳에서 달려오는 것이 여간 경이롭지 않았다. 마치 사람이 날개를 달고 창공을 날아 찾아오는 기분을 들게 한다. 집에 가만히 앉아서 멀리 있는 친척, 친지들과 옆에 있는 듯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새삼 정감을 느낀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전화는 시공을 넘어 쉽게 알릴 수 있어 한층 더 대견스럽다. 전화가 통신수단을 지나 사람의 생명을 구해 비유적으로 구원자 노릇을 하는 셈이다. 
오래지 않아 동그라미 안에 새겨진 숫자를 집게손가락으로 돌리는 다이얼전화가 등장했다. 번호를 돌리면 곧바로 상대방에 연결되도록 발전한 것이다. 

『다이얼 엠을 돌려라』라는 스릴러 영화제목처럼 다이얼 전화를 이용하게 되었다. 대학 동창생을 꾀어 부유한 아내를 청부살해하려는 남편이 사교모임에서 아내와 통화하여 알리바이를 꾸미려고 동전을 넣은 공중전화 다이얼을 다급하게 돌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다이얼을 돌리는 일이 쉽지는 않다. 머릿속으로 번호를 외면서 돌려야 한다. 돌린 번호를 또 돌려 엉뚱한 집에 연결되어 난처했던 일이 있을 것 같다. 이제 다이얼 전화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다. 숫자를 집게손가락 끝으로 꼭꼭 누르는, 더욱 편리한 전화가 나온 탓이다. 

집집마다 전화를 갖춘 것은 80년대 초였던 것 같다. 하지만 집에 전화가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걸 수는 없었다. 통화에는 당연히 요금이 부과된다. 한 인터넷 검색 회사의 자료에 의하면 ’16년 3월 기준, 우리나라 성인인구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1%로서 세계 1위이다. 보급률 90%를 넘는 국가는 한국과 싱가포르뿐이다. 우리나라 ’15년 상반기의 보급률 83%, 세계 4위에 비교하면 획기적인 기록이다. 일본의 보급률은 59%이라고 한다. 90년대, 컴퓨터의 황제 빌게이츠는 우리나라가 초고속통신망 발달에서 단연 앞서갈 것이라고 예측했다는데 스마트폰 보급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한편, 집 전화는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현재 1,600만여 대라고 한다.

요즘에도 공중전화가 거리 곳곳에 있다.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었거나, 소지하지 않은 경우에 전화를 걸 일이 생기면 공중전화를 찾을 수밖에 없다. 전화 부스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지는 않지만 공중전화를 찾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가흥동 택지로 가는 강변아파트 입구 오른쪽 보도에 오래 전에 설치한 듯 퇴색하여 푸르스름한 부스 두 곳 안쪽에 공중전화가 있다.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도 전화 부스가 보행자의 통행을 가로 막을 듯 서 있다.

마주 오는 사람을 비켜 가기도 불편할 만큼 좁은 인도를 전화부스가 삼분지 이 이상을 차지한다. 한 사람이 겨우 오갈 수 있는 전화부수 앞을 지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차도로 내려서는데 바로 옆으로 질주하는 차량들이 끊이지 않아 자칫 사고를 당할 우려가 있다. 전화부스에 이어 높이 솟은 콘크리트 전신주도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한다. 부스에 전신주까지 가세하여 보기에도 답답하다. 부스와 전신주 세울 곳이 여기뿐이었을까 싶다. 

택지 입구에는 출퇴근 무렵이면 푸른 신호가 한 차례 더 밝혀지기를 기다려 할 정도로 차량행렬이 꼬리를 문 듯 이어진다. 교통량에 견주어 도로가 좁은데다가 강변아파트로 좌회전하는 차도 있어 정체되기 때문이다. 도로 입구가 병목처럼 좁지만 양쪽에 고층아파트가 서 있어 넓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운전자 스스로 양보하여 사고를 예방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내 곳곳에 설치해 놓은 공중전화의 위치를 확인하여 통행에 불편을 주는 부스는 옮겨야 한다. 설치할 당시에는 적합한 장소였을지라도 아파트가 서고 새 길이 생기는 등 주위 환경이 바뀌면 전화의 위치도 다시 살펴야 한다. 보행자에게 불편을 주고 안전에도 문제가 있다면 조처해야 한다. 사용빈도를 확인하여 철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선 현장 답사를 건의하고 싶다. 

전화와 함께 부스 옆에 선 전신주도 자리를 옮겨 보행자가 마음 놓고 오갈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어느 기관이든 시민을 위해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때 신뢰를 받는다. 공중전화는 유용하다. 하지만 보행자의 안전이 우선이다. 안전을 위해 인도를 보행자에게 돌려주기를 기대한다. 안전에는 예방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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