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 최상호(시조시인.논설위원)

‘썰전’에서 들었던 웃기는 이야기다. 만남과 이별엔 상대가 있기 마련인데, 내로라하는 이들의 재회를 결혼이란 단어로 풀어내면서 구설수로 유명해진 이가 “헤어졌던 사람은 다시 만나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 좋은 기억만 남아 다시 만나도, 과거에 헤어졌던 것과 똑같은 이유로 결국엔 헤어지게 된다”고 했다. 또 다른 평론가는 “결혼은 판단력 부족으로, 이혼은 인내심 부족으로, 재혼은 기억력 부족으로 한다”면서 “또 헤어지면 정말 끝인데, 둘 다 선수인데 또 그러겠냐?”고 되물어서 웃고 말았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면서도 여타의 동물과 다른 점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지킬 줄 아는 ‘수치심’을 갖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집단의 거대화 및 차별화가 진행되면서, 윤리·도덕을 보완하는 법과 같은 ‘제도’의 도입과 확충이 요구되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는 듯하다. 
사회제도의 목적은 정의 또는 공정성을 바탕으로 시민들에게 보편적인 결과의 예측가능성을 제공하여, 불필요한 ‘사회적 손실의 최소화’와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인 이용’을 꾀하는 것일 텐데, 최근 이른바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정의 및 효율성 등과 같은 사회의 기본적 원칙뿐만 아니라 수치심조차 망각한 ‘야만적 행위’가 이어지고 있으니 걱정이다. 그 예로 청와대 비선진료 의사들 재판, 분당하고 나갔다가 다시 복당한 국회의원들, 권력기관 사외이사 임명, 그리고 정치판을 기웃거리던 폴리페서들을 들 수 있겠다.

이와 같이, 일반시민의 상식 즉 예측가능성을 철저히 무시하는 비합리적 사례들이 통용된다면, 머지않아 사회는 거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정당이란 것이 권력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이익집단인 만큼, 머릿(의원)수의 확보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당연할지는 모르지만, 국민들의 행복이나 상식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니 걱정만 느는 것이다.

유명 인사들이 하찮은(?) 문제로 치부하는 논문 표절 의혹이나 학력-경력 위변조 같은 것도, 정당의 단순한 이기적인 이익추구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질서의 붕괴를 가져 올 수 있고, 그런 짓거리가 공동체의 공통된 가치 또는 규범의 상실로 인한 혼란상태 즉 ‘아노미현상’을 가져 오기 때문인 것이다.

20세기의 한동안, 국내에는 기본적인 원칙의 존중보다는 힘 있는 자의 편의(?)가 우선되는, 아노미현상의 사회가 계속되었다.
특히, 유신시절은 독재정권의 유지를 위해 피의자를 사전 구속영장도 없이 체포하여 사형까지 하는, 힘 있는 자들을 위한 ‘야만의 시대’였음에 틀림이 없다.

즉, 반공과 경제성장을 앞세워 기본적인 인권의 무시 및 빈부 격차를 조장하면서, 인류공통의 가치관도 쉽게 부정되었다. 이 때문에 위의 비합리적인 사례를 보면서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않으면, 역사가 스스로 찾아온다’는 말을 떠올린 것이다. 

한편, 국내경제를 지배하는 일부 거대기업들은 국적조차 잊은 채, 이익확대를 위해 세계 각지에서 글로벌 규모의 경영을 하는 21세기를 맞이한다. 국민들의 삶도 경제적인 풍요라는 ‘양의 확대’에서 사회복지의 충실 같은 생활의 ‘질의 향상’으로 옮겨 가는 등 다양화되고 있다.

그러나 높은 경제성장률 지상주의는 인간의 행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결코 목표가 아니며, 게다가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맹목적인 경제성장률 추구가 아니라, 오히려 공정한 ‘분배’에 중점을 두어야 할 시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지상주의만을 앞세워 무분별한 에너지 확대정책 특히 원전 확대정책을 고수하면서 원전 추진에도 불구하고, 규제권한까지 획득하여 조직 확대를 꾀하려 하니 더 큰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규격인증까지 위조해대던 이들에게 그런 권한까지 주려하다니 규제인력·자원의 분산과 책임의 불명확화 등을 가져와 오히려 원전의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조직 강화가 원전 안전성의 향상에 바람직하며 또 국제적으로 ‘기본적인 원칙’이기는 하다.

그러나 몇몇 힘 있는 자들의 ‘힘 자랑’ 때문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희생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새 정부의 적폐청산을 위한 정치 및 행정조직은 20세기의 구태의연한 패러다임이 아니기를 소망한다. 일신우일신만 쫓다보면 선진국으로의 도약은커녕, 국가의 지속 가능성조차 위태롭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입으로 경제성장보다는 공정한 분배 및 복지 충실 그리고 수출보다 내수 증진 등과 같이, 자립적이며 공정한 사회형성을 목표로 삼았으면 좋겠다. 

시민들이 기껍게 ‘기본적인 원칙’을 존중하고, 힘 있는 자들은 기본적인 원칙의 준수로 입는 손실(?)을 기꺼이 감수할 때, 우리 정치도 경제도 복지도 선진화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국민에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정치인과 사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업인 그리고 선후배들에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지역유지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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