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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儒)의 도(道)를 전(傳)하는 마을 전닷(傳道전도)우리마을탐방[152]문수면 대양1리‘전닷’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7.06.08 10:25
  • 호수 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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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닷마을 전경

임진왜란 때 공주인 이여(李璵)의 피난처 
평해황씨 유일(有一)의 후손 360년 세거지

문수면 전닷 가는 길
시내에서 남산고개를 넘어 문수방향으로 향한다. 적서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적서교를 건넌다. 노벨리스에서 좌회전하여 무섬·와현 방향으로 간다. 

와현삼거리에서 우측길로 접어들어 1km 가량 가다보면 도로 우측에 ‘대양1리 전도’라고 새긴 표석이 나타난다. 

표석방향으로 들어가면 연못이 있고 그 뒤로 보이는 마을이 전닷이다. 지난 21일 전닷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황일현 이장, 신창오 노인회장, 김민자 부녀회장, 유태환 새마을 지도자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전닷마을의 유래와 평해황씨 세거 내력을 듣고 왔다. 

전도마을 표석

역사 속의 전닷마을 
전닷 지역은 조선 초기까지는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중기(1600년대) 무렵 행정구역을 군면리(郡面里)로 구분할 때 영천군 권선전면(權先田面) 전두전리(纏頭田里)에 속한 이름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땅이 구석지고 토지가 박해 백성들이 드물다」고 적었다. 
그 후 조선말 1896년(고종33)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벌사리’가 처음 행정구역으로 나타난다. 

이 무렵 전닷은 영천군 권선면(權先面) 벌사리(伐賜里)에 속했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군의 적포면, 권선면, 진혈면이 ‘문수면(文殊面)’으로 통합됨에 따라 영주군 문수면 벌사리가 됐다가 2008년 10월 16일 주민들의 청원으로 대양리로 개칭됐다.

전도촌 유래비

지명유래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전닷’이라고 부른다. 
마을 표석에는 전도(傳道)라고 새겨져 있다. 
또 마을 유래비에 보면 「임진왜란 때 공주이씨 석간(碩幹)공의 손자 여(璵)공이 영주 뒤새에서 이곳으로 이거하여 마을 이름을 ‘전도촌(傳道村)’이라 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면 ‘전도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궁금하다. 
공주이씨 영주문중에 의하면 “유(儒)의 도(道)를 전(傳)하는 것을 공주이씨 가훈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이 마을 황기호(84.문수면노인회장) 회장은 “공주이씨 이여(李璵)공이 이곳에 정착한 후 선대의 가훈에 따라 ‘유학의 도(道)를 전(傳)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전도촌(傳道村)이라 했다고 한다”며 “처음에는 ‘전도’ 또는 ‘전도촌’이라 불렀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발음이 변해 전닷이 됐다”고 말했다.

전닷 서낭당

공주이씨 피난처    
영주의 공주이씨(시조 이천일)는 명덕(明德)을 중시조로 삼은 공숙공파로 명덕의 증손자 진(畛)이 영주 입향조다. 
진은 임피(현 군산) 현령을 지냈는데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는 벼슬을 버리고 영천 뒤새(현 영주2동)에 은둔했다. 

진의 증손자 석간(碩幹.1509-1574)은 천하명의로 팔도에 이름을 떨쳤으며, 두 아들 정견(庭堅)과 정헌(庭憲)은 동시에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시 정견(기장현감)은 원종공신에 올랐고, 정헌은 부산진전투에서 순국하여 좌승지로 추증됐다. 

석간의 손자이자 정견의 아들인 여(璵.선교랑.1588-1661)가 임진왜란 후 1610년경 영주 뒤새에서 이곳 산속으로 숨어들어 삶의 터전을 열었다. 
입향조 이여(李璵)는 아버지의 공로에 힘입어 종6품 선교랑에 올랐으며, 여의 아들 유형(惟馨.1617-1692)은 통덕랑에 올랐고, 유형의 아들 경종(慶宗)은 용양위부호군에 올랐다. 

전도촌 유래비

평해황씨의 입향 내력
평해황씨(시조 황락)가 전도촌에 입향하게 된 것은 조선 효종 때 선비 명로(命老.1638-1713)에서 비롯됐다. 

명로의 고조부인 유일(有一.1561-1587)은 소년시절 본향 평해에서 안동 춘파(현 서후면 성곡동)로 옮겨와 살면서 종형 여일(汝一)과 함께 학봉 김성일에게 배웠고, 1587년(선조20) 문과 회시(會試)에 응시하여 급제하였으나 급성병으로 방(榜)이 붙기 전에 숨을 거두니 예에 따라 성규관정자(成均館正字)에 증직됐다. 

유일의 고손자인 명로는 20세 되던 해 이곳 전도에 사는 공주이씨 유형(이석간의 증손자, 이여의 아들)의 딸에게 장가들어 전도 입향조가 됐다. 

후손 황기주(79.영주시노인회장) 회장은 “명로 선조께서 1658년 전도로 입향하셨으니, 저희 평해황가가 전도에 세거한지 359년이 됐다”며 “그동안 후손이 크게 번성하여 해방 후에는 5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현대교육이 시작된 이후 각계각층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현재 전국 각지에 후손 500여명이 산다”고 말했다. 

호곡정

호곡정과 도은정 
전닷에는 옛 선비들이 남긴 흔적들이 남아있다. 
마을 안쪽 깊숙한 곳에 호곡정(虎谷亭)이 있고, 그 뒤에 이석간(호 草堂)의 손자 이여(李璵)와 그의 아들 이유형(호 草堂)이 거처하던 초당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다. 

또 그 뒤에는 도은정(道隱亭)이 있다.  호곡정은 평해인 호곡 황유일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근대에 건립하고 1974년 중건했다. 
호곡이 학봉 김성일 문하에서 공부할 때 학봉으로부터 동자례(童子禮)·거향잡의(居鄕雜儀)를 받았다. 

학봉은 호곡에게 “이로써 몸을 닦고, 행신 범절의 규범으로 심으라”고 일렀다. 
황기주 후손은 “‘동자례’와 ‘거향잡의’는 유학의 예절 지침서로서 문중에서 가훈으로 삼아 널리 활용하고 있다”며 “필사본과 목판을 호곡정에 보관하고 있다가 2011년 소수박물관에 기탁했다. 

또 매년 2월 중정일에 호곡 선조의 사당인 원모사(遠慕祠)에서 향사를 지낸다”고 말했다. 
도은정은 명로의 후손 도연(道淵.1857-1914)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근대에 건립한 정자다. 

황기호 후손은 “도연 선조님은 저의 증조부되신다”면서 “사간원 정언을 지낸 박우현의 문하에서 배우고, 서산 김흥락(학봉의 후손) 문하에서 공부하셨다. 
저서 도은집을 남기신 당대 이름난 선비셨다”고 말했다.                

전도지(傳道池)

전닷연못과 전도공원
마을 앞에 아름다운 연못이 있다. 등굽은 버드나무에 둘러싸인 이 연못은 영주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그 안쪽에 있는 전도공원에는 수백년 수령의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여기에 황재춘(黃載春.고인) 선생이 1998년에 세운 ‘전도촌유래비’가 있다. 그 옆에는 ‘항일지사농은황공학명기사비’가 있다. 농은(農隱) 황학명(黃學明)은 나라 잃은 아픔에 탄식하던 중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1년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또 1996년 공원 부지를 희사한 정수낭(鄭壽娘) 씨의 기념비, 2002년 연못 부지를 희사한 황세진(黃世鎭) 씨의 기념비도 있다.

도은정

기자가 전닷마을에 갔을 때 황일현 이장님과 여러 마을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장 부인 유금란 씨와 김민자 부녀회장이 다과상을 준비해 주셔서 더욱 고마웠다. 

황 이장은 “전닷마을은 연화산 남하에 산이 좌우로 둘러 싸여 있고, 학가산이 바라보이는 아담한 마을에 30가구 60여명이 산다”며 “자랑할 게 별로 없으나 유학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 자랑”이라고 소개 했다. 

신창오(75) 노인회장은 “요즘 농촌은 노인들만 살지만 우리마을은 젊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라며 “마을에는 유초중고학생이 다 있다”고 자랑했다.   

항일지사 황학명 기사비

유태환(47) 새마을지도자는 “산촌 지역이라 밭농사 중심 수박, 고추, 약초 농사를 많이 짓는다”고 했다. 황태진(43.반장) 씨는 “산지를 개척해 사과농사 6천평을 짓고 있는데 물이 귀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영주시에 연못물을 끌어 오릴 수 있는 시설을 요청하였으나 답이 없다”고 했다. 

황기석(74) 씨는 “마을 앞 동구에 500년 수령 소나무가 있고 그 옆에 서낭당이 있다”며 “매년 정월대보름날 자시에 마을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는 서낭제를 지낸다”고 말했다. 

김민자 부녀회장은 “정월대보름날은 동신제 음복을 나누면서 윷놀이로 하루종일 축제를 이어간다”며 “마을 어르신들과 이장님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셔서 화합하고 살기좋은 마을”이라고 말했다.

게이트볼장

조영하(79) 씨는 “마을 입구는 좁지만 안쪽은 넓다”며 “안마, 샛마, 거랫마가 있는데 선비들이 사는 마을이라서 예(禮)를 중요시 한다”고 말했다. 

임일임(78) 씨는 “마을에는 훌륭한 분들이 많으셔서 회관을 짓고 연못을 만들고 게이트볼장도 만들었다”며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은 마을”이라고 했다. 평해황씨가의 며느리가 된 

이순이(75) 씨는 “호곡정 향사 때는 도포에 유건을 쓴 제관 30여명이 마당에 그득하다”며 “효(孝)와 예(禮)를 중시하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문수면 대양1리 전닷마을 사람들>

황일현 이장
신창오 노인회장
황기호 면노인회장
김민자 부녀회장
유태환 새마을지도자
조영하 씨
이순희 씨
황기석 씨
임일임 씨
황태진 씨
황기주 영주시노인회장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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