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150]평은면 오운2리‘갈분’

갈분마을 전경

영양천씨 영장공파(운주) 360년 세거지
마을의 자랑은 “젊은 농부가 많습니다”

오운2리 갈분 가는 길
갈분마을은 예고개에서 봉화방향 2km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영주농협파머스마켓 앞 적서교차로에서 국도 5호선 경북대로를 타고 안동방향으로 향한다. 내성천교를 지나 평은터널을 통과한 후 곧바로 예고개·봉화 방향으로 진출한다.

예고개삼거리로 올라가서 상운·봉화 방향 내리막길을 가다보면 도로 우측에 「평은면 갈분네」 표석이 나타난다. 지난 7일 갈분마을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권용철 이장, 천용하 노인회장, 천두종 어르신, 강일원 장로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갈분의 유래와 영양천씨 세거 내력을 듣고 왔다.

갈분마을 표석

역사 속의 갈분마을
갈분 지역은 1413년(태종 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경상도 영천군(榮川郡) 동면(東面)에 속했다. 조선 중기 행정구역을 면동(面洞)으로 개편할 때 영천군 천상면(川上面)에 속한 이름 없는 마을이었다.

조선 후기 1896년(고종33)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영천군 천상면 하운동(下云洞.갈분)이 됐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천군의 천상면(평은리, 천본리)과 진혈면(금광리) 통합하여 ‘평은면’이라 하고, 오동리(梧桐里)와 하운동(下云洞)을 하나로 묶어 오운리(梧云里)로 통합했다. 그러다가 해방 후 오운1리와 2리로 분리됐다.

권용철(56) 이장은 “오운2리는 새터, 예고개, 지점골, 갈분 등 작은 마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갈분에는 현재 35가구에 50여명이 산다”며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을 개척하고, 농축산업을 장려하여 희망 농촌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갈분기도원

갈분의 지명유래
갈분 지역을 ‘오운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14년 일제(日帝)가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다. 이 때 지역 유지(유림)들이 오동리(梧桐里)의 오(梧)자와 하운동(下云洞.갈분)의 운(云)자를 조합하여 오운리(梧云里)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면 ‘갈분이라는 지명은 어디에서 유래됐을까?’가 궁금하다. 회관 옆에 사시는 할머니께 “왜 ‘갈분’이라고 하나요?”라고 여쭈니 “옛날부터 ‘갈분’이라고 해서 갈분이지”라고 말했다.

이 마을 김순용(66)씨는 “지금도 앞산, 뒷산에 칡이 많은데 아마도 칡이 많아 칡 갈(葛)자에서 유래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갈분 출신 천영대(83) 어르신은 “예전에 우리 선조들이 이곳에 터 잡고 살 때, 땅은 척박하고 물이 귀해 먹을 것 또한 귀했다”면서 “당시 겨울을 나기 위해 칡뿌리를 캐 가루로 만들어 두었다가 칡가루로 연명(延命)했다는 전설에 유래하여 칡 갈(葛)자에 가루 분(粉)자를 써 갈분(葛粉)이라 했다”고 말했다.

갈분 음지마

영양천씨 400년 세거지
천씨는 귀한 성씨다. 영주시사나 향토사 기록에도 없다. 이번 마을탐방을 통해 평은면 오운2리 갈분에 영양천씨 30여가구가 세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양천씨(潁陽千氏)는 중국의 성씨로 본관은 중국의 영양(潁陽)이고, 시조는 명나라 도총장(都總將)을 지낸 천암(千巖)이다. 중국 성씨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내력은 이렇다.

천암의 후손 천만리(千萬里)가 임진왜란(1592) 때 두 아들 상(祥)과 희(禧)와 함께 철기군 2만을 이끌고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워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전란 후 명나라 장병들은 귀국길에 올랐으나 천만리는 두 아들과 조선에 남아 영양천씨의 시원(중시조)이 됐다.

영양천씨 갈분 입향 내력을 알아보기 위해 천두종(91)·천용하(75) 어르신 댁에 가서 세보를 펼쳐봤다. 천용하 어르신은 “갈분의 영양천씨는 영장공(營將公) 운주(耘疇.3세)의 후손”이라고 말했다. 세보에 보니 「영장공파 파조 운주는 천만리의 둘째 아들 희(禧.2세.1560생)의 4남 중 장자로 1624년 무과에 급제하여 정3품 절충장군에 올라 황해도 황주의 진영장에 취임했다」고 기록했다.

산간주택 연못

이 마을 천영대(83.16세손) 어르신은 “우리 천가의 갈분 입향 내력은 천만리(1543년생) 중시조의 증손자(4세손) 대에서 이곳에 왔다고 하니 1650-60년경으로 추정된다”며 “입향 후 14-15대손까지 살고 있으니 갈분에 세거한지 어언 360년이 됐다”고 말했다.

천두종 어르신은 “천만리 중시조는 명나라 장군이었는데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건국(1636년)되자 청 황제는 ‘조선에 귀화한 중국인을 모두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우리 천씨들은 영남지방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갈분 마을회관

갈분교회·갈분기도원
도로변에서 마을을 바라보니 언덕위에 교회가 우뚝하다. 마을과 교회가 5월의 신록과 어우러져 참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인다.

갈분교회 강일원(82) 장로는 “갈분교회는 교인 35명의 작은 교회이지만 1957년에 설립되어 개교 60주년을 맞이했다”며 “갈분교회는 산촌 주민들이 보릿고개를 넘으며 힘들어 할 때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에서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다”고 말했다.

또 “1967년에 설립된 갈분기도원은 경북 북부지역 최초, 최고의 기도원”이라며 “전성기 때는 1천500여명이 모여 부흥회를 열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였었다. 항상 문이 열려 있으며,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 강옥순씨는 “갈분기도원은 어렵고 힘든 사람이 와서 희망을 찾는 곳”이라며 “난치병으로 고생하던 사람도 여기 와서 병을 고쳐 환하게 웃으며 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갈분기도원 054-637-6009]

갈분교회

희망을 꿈꾸는 마을
기자가 갈분마을에 갔을 때 맥고자를 쓰고 밭일하는 김순용(66)·강순옥(59) 부부를 처음 만났다. 강순옥 씨는 “저는 농부의 아내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지난해는 생강값 폭락으로 힘들었으나 올해는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다”고 말했다.

김순용 씨는 “우리마을의 자랑 첫째는 젊은 농부가 많은 마을”이라며 “40-50대 젊은 친구들이 귀농하여 축산을 비롯한 특용작물 재배로 고소득 농업경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지마 전경

새마을지도자 천재민(51) 씨는 “5년 전 귀농하여 아버지가 하시던 축산을 물려받았다”면서 “농업기술센터에서 2년간 교육을 받았고, 현장 실습을 통해 기술을 익히고 있다. 지금은 축산이 안정기에 접어들어 전망이 밝다. 현재 갈분에는 8농가에서 한우 850두를 사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친구 천범진(42.반장)씨는 “산촌 농업이 소규모 밭농사에서 농축산 전문화 대형화로 발전하고 있는 단계”라며 “축산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한우 1백 수십두를 사육하고 있지만 해마다 규모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양지마 산간주택

갈분 사람들
어버이날을 하루 앞 둔 7일 오후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경로잔치를 논의 하고 있었다.

천용하(75) 노인회장은 “해마다 어버이날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경로잔치를 연다”면서 “요즘 젊은 세대들은 머리를 잘 써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있으니 고맙게 생각한다. 또 어버이날 경로행사도 마련해 주어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권용철 이장은 “지금 농촌은 어디라도 노인 인구가 90%를 넘고 있으나, 우리 마을은 4-50대 젊은 농업인들이 있고 유치원, 초등학생도 있다”면서 “예전에는 갈분(葛粉)으로 연명하는 가난한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산을 잘 이용하여 잘 사는 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갈분마을은 양지마와 음지마 그리고 새모테(회관마을)로 구분한다.

100년전 초가삼간

양지마에 살고 있는 천영한(79) 씨는 “예전에는 양지마와 음지마로 나누어 산 속에 마을이 있었으나, 6.25 전 빨갱들이들이 출현하는 바람에 소개령이 내려 새모테에 모여 살게 됐다”며 “산업화 이후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났다가 2천 년경부터 귀농인들이 늘어 새로운 양지마와 음지마를 형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자는 11일 오후 옛 사람들이 살았다는 양지마 양지골을 찾아갔다. 도로에서 서쪽방향 오르막길 500m 가량 올라가니 붉은벽돌조 양옥집이 한 채가 나타났다. 집 앞에는 100여평 되어보이는 연못도 있다. 여기가 지난 7일날 마을회관에서 만났던 천영한·손신자씨 부부의 집이다. 심호흡을 해봤다. 푸른산의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하다.

천 씨는 “산이 좋아 산에서 산다”며 “집사람이 동의해 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카페 분위기가 나는 거실에서 부인께서 내 주신 들깨차를 한 모금 물었다. 산속 맛이 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신선한 향이 남아있는 듯하다.

이원식 시민기자

<평은면 오운2리 갈분마을 사람들>

권용철 이장
천용하 노인회장
천재민 새마을지도자
천두종 어르신
강일원 장로
천영한 씨
손신자 씨
김순용 씨
강옥순 씨
천범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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