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흥기(소설가·본지논설위원)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 가운데 자식사랑에 누가 더 각별할까’라고 묻는다면 이는 우문일 것이다. 자식과 부모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 천륜이라고 일컫는데 아버지든 어머니든 자식사랑에는 다를 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섣부른 단정일지도 모르지만 아버지가 어머니를 따를 수는 없을 것 같다. 모정이 한층 더 깊고 살뜰하다는 의미이다.

어머니는 새 생명이 온전한 육신을 갖춘 인간으로 형성할 때까지 열 달 가량 몸속에 품었다가 낳은 뒤에는 수유를 하여 양육한다. 한 생명체로 이루어질 때까지의 물리적 시간을 따져서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비교가 안 된다. 원초적으로 신생아는 모유를 섭취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는 새 생명에게 거의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젊은 엄마가 두 살배기 아들을 버렸다가 법정에 선 사건이 보도되어 화제였다. 그 엄마는 외도를 하는 바람에 이혼을 당하고 정부와 재혼하기로 약속한 사이였다. 정부의 부모에게 결혼 승낙을 받아야 하는데 제 아들 형제가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어른들에게 아이가 하나뿐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두 살배기의 둘째 아들을 버리기로 정부와 공모했던 것이다.

엄마는 동서울터미널 1층 대합실에서 잡고 있던 아들의 손을 풀고서는 다급히 몸을 숨겼다. 사람들이 북적거려 아이의 시야에서 사라지면 엄마를 못 찾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온 세상인 양 여기는 두 살짜리 아이는 이내 엄마를 찾아 뒤를 따라와 첫 번째 아이 버리기는 실패했다. 모정이라고는 한올도 없는 비정한 이 엄마는 또다시 시도했지만 이번에도 아이의 눈길을 속일 수는 없었다.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을 버리고야 말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던 모양이다. 매우 영리한 아이였던지 세 번째에도 엄마는 아이를 따돌리지는 못했다. 어쩌면 아이는 본능적으로 엄마가 자신을 버린다는 것을 알아채고 줄곧 엄마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른 방법을 생각했던지 엄마는 아이와 함께 2층 대합실로 올라갔다. 안내 직원에게 ‘1층 흡연 장소 부근에 이 아이가 혼자 있더라. 이 아이의 부모를 찾아 달라’면서 마치 제 아이가 아닌 듯 거짓말을 하여 아이를 맡기고 재빨리 내려와 미리 산 차표로써 고속버스를 타고 사라졌다.

네 차례에 걸친 시도 끝에 뜻을 이루었지만 아이를 유기한 엄마의 범행은 들통이 났고, 경찰에 검거되어 법의 심판대에 서는 신세가 되었다. 사법당국은 이 무정한 엄마에게 1년 징역에 2년의 집행유예를 판결했다. 현역 군인인 정부는 헌병대로 이송했다.

두 살배기라면 겨우 두 돌을 지난 나이이다. 우리 나이로 세 살이 될까 말까 하다. 그 나이라면 말도 제대로 못한다. 좀 늦되는 아이라면 기저귀를 찰 나이이고 걸음걸이도 서투르다. 엄마가 어린 아들을 버리려고 못난 소행을 저지른 것이다. 끔찍스럽고 잔인한 한편으로는 이해되지 않아 기이한 사람이다.

훗날 동서울터미널에서 엄마에게 버림받을 뻔했던 사실을 알게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신문에 실려 있어 알게 될 개연성도 있다. 유아기에 겪은 어떤 일은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기는 고사하고 신기할 정도로 또렷하게 기억나는 수도 있다. 두 살 아이의 머릿속에 엄마가 자신을 버리려 한 일이 저도 모르게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말로써 표현은 못해도 정서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좋은 엄마가 되리라는 생각이라면 평생토록 아이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아이의 용서를 얻으려면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동서울터미널은 우리고장 사람들이 버스 편으로 상경할 때 다다르는 종점이다. 암사대교를 건너 한강 옆길을 달리면 터미널에 도착한다. 일층 대합실과 식당이 즐비한 이층에다가 큰길 바로 건너편의 사람들로 붐비는 강변역이며 높이 솟은 테크노마트가 눈에 선할 것 같다. 

강남으로 가는 버스보다는 동서울행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터미널 대합실 어디에선가 버림받은 두 살짜리 아이가 엄마를 찾아 가느라 울부짖으면서 종종 걸음 쳤을 것을 상상하니 마음이 착잡하다.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힌 채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고 달음질치는 모습이 떠올라 안쓰러움을 넘어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하다.

법리는 모르지만 어린이가 피해자인 범죄에는 한층 엄한 벌을 내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제 아이를 버리려고 몸을 감춘 엄마라면 더욱 무거운 죄 값을 주어도 마다해서는 안 될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사랑과 믿음이 가득한 가정에서 마냥 구김 없이 자라야 할 아이가 하마터면 엄마도 가정도 없이 고아가 될 뻔 했기에 더욱 마음에 걸린다.

먼 훗날, 모질게 학대를 받았을지라도 그 둘째 아들이 너그럽고 따사로운 심성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여 엄마를 기꺼이 용서하기를 바란다. 건강하게 잘 자라 성취인이 되어 사회에 이바지하는 한편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재삼 기원한다. 복잡한 대합실에서 세 번이나 엄마를 놓치지 않은 것을 보아 유능한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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