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영주 톺아보기 우리마을 탐방
긴(長) 골(谷)에 오랜 역사를 간직한 마을 ‘질골(芝谷)’우리마을탐방[149]이산면 지동1리 ‘질골
  • 영주시민신문
  • 승인 2017.06.01 08:26
  • 호수 618
  • 댓글 0
남양마을 전경

평해황씨·밀양박씨·반남박씨 세거지
친환경 무농약 벼·수박·고추 생산지

이산면 질골 가는 길
질골은 이산면 이산우체국 동쪽 2km 지점에 있는 두메산골 마을이다.
영주시내에서 이산로를 따라 영주고, 이산면사무소, 흑석고개, 이산초 앞을 지나 석포교를 건너간다. 이산우체국 앞에서 두월, 지동1리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석포2교를 건넌다. 

번계들길을 500m 쯤 가다가 지동1리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소바우마을 앞을 지나 500m 가량 올라가면 지동1리 남양마을이고 이어서 샛마, 큰마, 탑골로 이어진다. 

지난달 30일 오후 질골에 갔다. 이날 마을 회관에서 박한서 이장, 주상윤 노인회장, 전영순 부녀회장, 황종성 새마을 지도자를 만나 질골의 유래와 오랜 역사 이야기를 듣고 왔다.

질골 사람들

역사 속의 질골
질골 지역은 1413년(태종 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경상도 영천군(榮川郡) 동면(東面)에 속했다. 조선 중기 무렵 행정구역을 면동(面洞)으로 개편할 때 영천군 말암면(末巖面) 지동(地洞)이 됐다. 

조선 후기 1896년(고종33)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경상북도 영천군 말암면 지동리가 됐다. 그 후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개편 때 영천군의 산이면·어화면 일부와 말암면을 통합하여 ‘이산면’이라 했다. 

이 때 질골은 영주군 이산면 지동리에 편입됐다가 해방 후 지동1리로 분리됐다. 박한서 이장은 “질골은 남양마을에서부터 샛마, 큰마, 탑골입구, 탑골, 옥녀봉까지 2.3km에 이르는 긴 골에 띄엄띄엄 마을이 형성됐다”며 “신라 때로 추정되는 고찰이 두 군데나 있었다는 구전이 전하고 있어 역사가 깊은 골”이라고 말했다.

남양마을 표석

지명유래
지동1리를 ‘질골’이라 한다. ‘왜 질골이 됐을까?’ ‘질퍽하다는 뜻일까?’ 알고 보니 두 가지 유래가 전한다. 이 마을 이원호(80) 어르신은 “질골 입구 남양마을에서 옥녀봉(365고지)까지 골이 길어 ‘질골(長谷)’이라 불렀다”면서 “예전에는 ‘길다’를 ‘질다’로 발음하다 보니 ‘긴골’이 ‘질골’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큰마에 사는 황동섭(83) 어르신은 “마을 뒷산에 지초(芝草)가 무성하여 주지봉(朱芝峰)이라 불렀고, 마을 이름은 주지봉의 지(芝)자를 따 지곡(芝谷)이라 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발음이 변해 ‘지곡’이 ‘질골’이 됐다“고 말했다.

남양 출신 박기진(66) 씨는 “마을 동쪽에 ‘남양산’이 있고, 그 중턱에 ‘남양사(南陽寺)’라는 신라 때 고찰이 있었다”며 “지금은 절터만 남았지만 옛 절의 이름을 따 남양(南陽)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샛마 전경

지동(芝洞)의 평해황씨
지동의 평해황씨(시조 黃溫仁)는 미균 황유정(黃有定.8세)의 후손 남소(南巢) 진도(振道.12세손)가 임진왜란 무렵 이곳으로 이거하여 마을을 개척했다고 한다. 평해황씨 세보에 보면 진도는 기사생(己巳生)으로 1569년생이다. 

진도가 장성하여 이곳에 입향했다면 1590년경으로 추정된다. 이 마을에 사는 후손 황동섭(83.28세손)씨는 “질골의 평해황씨는 입향조 진도 선조의 호를 따 ‘남소공파(南巢公派)’라 한다”며 “우리 황씨가 이곳에 세거한지 약 430년이 됐으며, 1960년대에는 30여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10여호가 산다”고 말했다. 

큰마(지곡) 전경

마을 앞에 황씨묘국(黃氏墓局)이란 바위 글씨가 있고 그 앞에 경의재(景義齋)가 있다. 이 마을 출신 황재갑(영주동)씨는 “경의재는 저의 조부되시는 황병하(黃秉河.1904-1954) 의사의 영정실”이라며 “할아버지께서는 광복을 맞이했으나 남북이 분단되어 원수로 겨루매, 암담한 현실을 걱정하다 1954년 3월 1일 의관정제하고 ‘남북통일’ 네 글자를 가슴에 품고 통곡하다 자결하셨다며, 1960년 지역 유지(유림)들이 뜻을 모아 탑골 입구에 의열비(義烈碑)를 세우고 마을 앞에 경의재를 지어 영정(影幀)을 모셨다”고 말했다.

경의제

밀양박씨 세거 400년
질골의 밀양박씨는 강계부사, 동부승지를 지낸 문목공(文穆公)송당(松堂) 박영(朴英)의 후손들이다. 송당의 후손 일족이 남양마을에 세거하게 된 것은 12세손 시봉(時鳳.1590년生 추정)에서 비롯됐다. 

시봉은 원래 선산에 살았는데 임진왜란 후 안전하고 살기 좋은 땅을 찾아 이곳으로 이거했다고 한다. 후손 박승훈(89) 어르신은 “세보에 시봉 선조의 생몰(生沒)이 미기재 되어 정확한 입향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시봉 선조의 선친(命俊) 생몰이 1564-1626년으로 기록된 것으로 봐서,시봉 선조가 장성하여 이곳에 오셨다면 1610년경으로 추정된다”면서 “밀양박씨가 이곳에 세거한지도 어언 400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밀양박씨가의 며느리인 김설매(85) 할머니는 “예전에는 3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면서 “제사 지낼 때는 수십명 제관이 마당에 그득했고, 비록 잡곡밥이지만 골고루 음복을 나누었다. 또 저의 시조부께서는 ‘선비를 키워야 한다’며 손자들 글공부를 많이 시키셨는데 모두 잘 자라서 여러 분야의 지도자가 됐다”고 말했다.

지동 감자

반남박씨 질골 입향
질골의 반남박씨는 소고 박승임(11세손)의 후손이다. 질골에 사는 후손 박찬욱(57.朴贊郁.26세)씨는 “저의 선조는 원래 이산면 내림리(수구리)에 살았는데 제석(齊碩.22세) 고조부님께서 이곳으로 이거하여 새로운 터를 마련하셨다”며 “제석 할아버지 생몰이 세보에 미기재 되어 증조부(隨陽.23세.1880生)님 생몰에 비추어보니 1870년경 입향하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세보에 보면 ‘22세 제석-23세 수양(1880생)-24세 승은(勝殷.1911생)으로 세계를 이어왔으며, 지금도 10여 가구가 질골에 산다. 

주상윤(71) 노인회장은 “우리 마을 박찬욱 씨는 이산면을 대표하는 농업경영인으로 친환경 벼농사, 노지수박 재배, 고추 대량생산 등 과학영농의 선구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0 수박축제위원장, 2015년부터 영주농협 이산지역 이사, 반남박씨 문중 대표 등 지역 사회와 문중을 위해 헌신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박기진 서예가

남양 출신 박기진 서예가
영주가 낳은 박기진 서예가는 ‘폐침망식 불광불급(廢寢忘食 不狂不及)’의 노력으로 성취한 서예학자요 이론가이다. 즉 ‘잠도 안자고 밥 먹는 것도 잊고 오직 서예에만 진력하였으며,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쓰고 또 썼다는 뜻이다. 

박 씨는 이산면 지동(남양마을) 출신으로 안동대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대예술대학원(서예전공, 예술학석사)을 졸업했다. 부산 해운대여고와 영주대영고 교사로 근무했으며, 국전 초대작가, 경북도전 초대작가, 국제유교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지동 수박

질골 사람들
박한서(49) 이장은 “질골은 여름이면 둥글둥글 수박타령에 가을이면 황금빛 풍년 소식이 깃드는 평화로운 마을”이라며 “현재 30여호가 수박, 우렁이 벼농사, 버섯재배 등 친환경 과학영농으로 소득이 높은 마을”이라고 말했다.

전영순(70) 부녀회장은 “박한서 이장님과 주상윤 노인회장님이 마을을 잘 이끌어 주셔서 화합하고 화목한 마을”이라며 “지난 4월에는 화전놀이를 갔다 왔고, 5.8 어버이날은 대화합의 잔치를 연다”고 했다.

황종성(67) 새마을 지도자는 “8년 전 귀농하여 수박, 고추, 감자 등 친환경 농사와 양질의 꿀벌, 전통 메주를 생산하여 전국 교회로 공급하고 있다”며 “지금은 연 1-2천만원대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수요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독주골

30여 년 전 귀농했다는 김정옥(81) 할머니는 “공기 좋고 인심 좋아 이곳에 눌러 앉았다”며 “질골 사람들은 천성이 부지런하고 농사에 애착이 강하셔서 저도 좋은 점을 본받으며 넉넉하고 부지런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해에서 질골로 시집왔다는 전순랑(78)씨는 “왜 하필이면 ‘두메로 시집가느냐?’는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며 “쌀이 귀해 겉보리밥에 조밥으로 고생스레 살아왔지만 지금은 수박, 고추농사로 부자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탑골

독주골에 사는 유순득(78) 씨는 “마을에 집이 딱 한 채 있어 ‘독주골’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넷집이 산다”며 “질골은 80이 넘은 어르신들도 경운기 몰고 농사지을 정도로 장수(長壽)하는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이번 마을 탐방 때 길을 안내해 주신 박기욱(68.남양)씨, 박가서(60.질골)씨, 박종서(59.탑골)씨께 감사드린다.

<이산면 지동1리 질골 마을사람들>

박한서 이장
주상윤 노인회장
전영순 부녀회장
황종성 새마을지도자
박승훈 어르신
김설매 할머니
이원호 어르신
김정옥 할머니
유순득 씨
전순랑 씨
황동섭 어르신
박찬욱 씨

 

이원식 시민기자

영주시민신문  okh7303@yjinews.com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영주시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