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148] 문수면 대양2리 ‘궁터’

궁터마을 전경

궁터에서 기와조각, 빗살무늬토기, 자기류 출토
자연의 청정함이 살아있는 때 묻지 않은 마을

문수면 궁터 가는 길
시내에서 남산고개를 넘어 문수방향으로 가다가 적서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적서교를 건넌다. 노벨리스코리아에서 좌회전하여 무섬·와현 방향으로 간다.

와현삼거리에서 보현마을 쪽으로 접어들어 1.5km 가량 가다보면 보현마을·궁터 이정표가 나타난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문고개마을이고, 문고개를 넘어 1km 쯤 더 가면 ‘궁터’다.

지난달 23일 궁터에 갔다. 마을회관에서 안선영 이장, 이춘선 노인회장, 권용필 씨, 김창한 씨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궁터의 전설과 감춰진 이야기를 듣고 왔다.

궁터 유래비

역사 속의 궁터마을
궁터마을 지역은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경상도 영천군(榮川郡)에 속했다. 조선 중기 무렵 행정구역을 면리(面里)로 구분할 때 영천군 권선전면(權先田面) 전두전리(纏頭田里)에 속했다.

조선말 1896년(고종33)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영천군 권선전리가 권선면(權先面)으로 바뀌면서 권선리, 월호리(月呼里), 벌사리(伐賜里)로 재편했다. 이 때 궁터는 벌사리에 편입됐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영주군으로 통합하고, 영천군의 적포면, 권선면, 진혈면을 ‘문수면(文殊面)’으로 통합했다. 이 때 벌사리는 영주군 문수면에 편입되었다가 해방 후 벌사2리로 분리됐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의 청원으로 문수면 벌사리가 2008년 10월 16일 대양리로 개칭됐다.

당시 동명개칭추진위원이었던 김창한 씨는 “선대부터 ‘대양리’라는 지명을 사용해 왔다는 점과 ‘벌사(伐賜)’라는 지명이 어감이 좋지 않아 변경을 추진하게 됐다”며 “대양(大陽)이란 큰 대(大)자에 볕 양(陽)자를 써 ‘햇볕을 많이 받는다’는 뜻으로, 실제 이 지역은 일조 시간이 다른 지역에 비해 2기간 가량 길다”고 말했다.

느티나무와 정자

지명 유래
궁터란 ‘궁궐이 있던 자리’라는 뜻이다. ‘문수면에 궁터가 있다’고 하면 ‘왕청스럽다’고 하겠지만 ‘정종 임금님이 낙향길에 머무르다 갔다’는 구전이 전해오고 있어 흥미롭다.

궁터마을 유래비에 보면 「내고향 궁터는 궁지(宮址.궁궐터)·궁기(弓基.활터)·궁기(窮基.피난처) 등으로 불러왔다」고 기록했다. 아마도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이다 보니 시대별로 마을이름을 달리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마을 김창한(65)씨는 “궁터(宮址)란 지명유래가 문헌에는 없으나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고 있다”며 “조선 2대 정종임금이 즉위 2년만에 왕위를 이방원(태종)에게 선위(禪位)하고,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낙향길에 올랐다가 산자수려(山紫水麗)한 이곳에서 (얼마동안) 머물다 갔다하여 ‘마을이름을 궁터’라 했다는 구전(口傳)이 전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마을 주변에는 규모가 큰 고분 2기가 있는데 당시 임금을 수행하던 신하나 장군의 묘로 추정된다”면서 “현재 이 마을에는 전주이씨 일가(一家)가 수백 년간 살고 있는데 ‘당시 임금을 수행하던 식솔 일부가 이곳에 남아 정착한 게 아닐까?’ 추정해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옛 궁터 자리

선사시대 유물 출토?
마을 사람들이 보물로 여기는 회관 앞 동수목 느티나무는 곁가지가 나와 ‘수령 200년’이 됐다고 하니 실제 수령은 500년이 넘어 보인다.

이 마을 권용달(73)씨는 “회관 건너편 창밭골에는 천년묵은 고목 느티나무가 있고 옛 성황단에는 수백년 수령의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고 말했다.

동수나무 앞에 사는 권용필(69) 씨는 “궁터 밭에서 빗살무늬 토기, 기와, 돌칼, 돌도끼, 자기류 등이 출토되기도 했다”며 “출토 유물들을 관찰해 볼 때 아주 오랜 옛날(청동기시대)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권 씨는 또 “전설에 의하면 궁터는 12실(마을)의 중심마을”이라며 “합실, 읍실, 간실, 새실, 물레실, 멱실, 곰실, 호구실 등 주변 12실이 궁터를 둘러싸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한 씨는 “문수면에는 정종대왕이 낙향길에 남긴 궁터가 있고, 또 태종이 어릴 적 동갑계원 친구 류빈(柳濱)의 묘를 임금과 같은 예우로 ‘종릉(種陵)으로 봉했다’는 능(陵)도 있다”고 말했다.

궁터노인회관

안동권씨 입향 내력
궁터의 안동권씨(시조 權幸, 본래 이름은 金幸)는 수중공파(守中公派.종파)로 권수중을 파조로 한다.

이 마을 권용필(38세손) 씨는 안동권씨 입향 내력에 대해 “저의 5대조 영추(映錘.33세손.1807生) 할아버지는 원래 상주 낙동에 사셨는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함안조씨) 할머니께서 아들 3형제(장남 祖洽.34세손.1821生)를 데리고 정감록 비결에 적힌 십승지의 땅을 찾아 이곳(궁터)에 터를 잡으셨다”며 “세보에 나타난 선대의 묘소와 증조부(丙根.1837生)님의 생몰(生沒)을 살펴보니 입향년도는 183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저희가 궁터에 세거한지는 200여년이 된 것으로 추정 된다”고 말했다.

궁터 성황대

전주이씨 오랜 세거지
궁터에는 전주이씨가 오랜 세월 세거해 왔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 마을에 전주이씨 며느리 3동서 박선옥(77)·이춘선(77)·권영희(66)씨가 살고 있다.

박선옥 씨는 “해방 후에서 1960년대까지는 8가구가 살았으나 1970년대 이후 도시로 떠나고 지금은 6촌지간 3동서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소룡산에서 궁터로 시집왔다는 권영희(66)씨는 “40여 년 전 큰집할배(1900生)가 살아계실 때 말씀하시기를 ‘느티나무의 수령이 200년이 넘었고, 우리 집안이 궁터에 세거한지도 200년이 넘었다’고 하신 말씀을 들었다”고 말했다.

김창한 씨는 “마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정종대왕 낙향 당시 그 식솔 일부가 세상을 등지고 이곳에 숨어 살았다’는 구전이 전하기도 하고, 나중에 호령대군파 일족이 십승지를 찾아 이곳에 들어와 살았다는 등 여러 설(說)이 전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궁터 사람들

궁터 사람들
궁터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성(城) 안 같기도 하고, 꽃방 안 같기도 하여 임금님의 거소로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안선영(63) 이장은 “궁터는 자연의 청정함이 살아있고, 때묻지 않은 인심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정향(情鄕) 마을”이라며 “예전에는 30여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20호에 40여명이 산다. 그 중 독거노인이 여러분 계셔서 마을 자체로 ‘독거노인공동거주의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점숙(83) 할머니는 “안춘선 노인회장과 박장옥 부녀회장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의 조석을 챙기고 성심껏 돌봐주니 너무나 고맙다”며 “우리 마을은 예로부터 효마을이었다”고 말했다.

전주이씨 삼동서

박장옥 전 부녀회장은 “안춘선 노인회장님께서 내 부모 모시듯 어르신들을 잘 돌봐드리다”면서 “위급한 일이 있을 때는 마을 사람 모두 나서서 서로 돕는다”고 말했다.

“예전에 우물가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니 김춘생(80) 할머니는 “여기, 느티나무 옆에 박샘이 있었는데 지대가 높지만 물이 ‘펑펑’ 많이 나왔다”며 “우물가는 나물 씻고 빨래하는 것은 물론 세상 소식도 전하고 남 흉도보고, 귀한 음식 나눠 먹기도 하는 친교의 장”이라고 말했다.

“예전에 영주 갈 때 어디로 다니셨냐?”고 여쭈니, 회관 옆에 사는 유병옥(77) 씨는 “예전에 영주 갈 때는 반구 가서 버스 타고 가다가 나중에는 소룡산 간이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다녔다”면서 “지금은 버스가 하루 2번씩 들어와서 교통이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주로 어떤 농사를 짓느냐?”고 여쭈니, 김종락(69)씨는 “궁터는 벼농사 중심 농업이 많다”며 “일조량이 많아 고추, 생강, 수박, 참깨 등 우수 농산품을 생산 한다”고 말했다. 회관에서 나와 이춘선(77) 노인회장과 정자에 올랐다. 남서풍이 불어 서늘할 정도로 시원하다.

천년 고목

이 회장은 “1970년대까지 보릿고개를 넘어야하는 어려운 농촌이었으나 지금은 기계로 특수작물을 재배해 부촌이 됐다”며 “김창한 씨, 권용필 씨, 안선영 이장 등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회관을 짓고, 정자를 세우고, 수도를 넣고, 버스를 들어오게 하여 살기 좋은 마을이 됐다”고 칭송했다.

<문수면 대양2리 궁터마을 사람들>

안선영 이장
이춘선 노인회장
박장옥 전 부녀회장
권점숙 할머니
김춘생 할머니
박선옥 씨
유병옥 씨
권용달 씨
권용필 씨
김종락 씨
김창한 씨
궁토 출토 유물

 

이원식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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