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시인, 수필가. 본지논설위원)

지난 몇 달간 텔레비전 보기가 겁날 정도로 정치권과 시국이 불안하다가 마침내 조기 대선을 맞게 되었다. 촛불이나 태극기를 있게 한 일들이 지금도 진위를 가리는 중이지만 이 땅의 국민들에게 한없는 아픔을 주었다.

그래서 그 시간이 우리 정치사에서 도약의 계기가 되고 정치권과 국민에게 성숙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주말마다 촛불이 거리를 밝히고 태극기가 맞불을 놓는 불행한 사태의 결론을 내는 일은 사법부에서 할 일지만 선거를 앞두고 그 원인만큼은 애초에 가지지 않은 정권이 들어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어느 관심 받는 후보의 조카 전력을 세상에 터뜨리는 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잘나가는 후보 아들의 전력을 들춰내어 고해성사하라고 윽박지르고, 이에 질세라 뒤따라오는 후보 부인의 전력을 들추고 해명하라고 윽박지르는 싸움이 오고가는 것을 본다.

또 다른 후보의 아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다는 소문이 난무한다. 가짜 소문인지 진짜 소문인지 모를 소문을 싸고 갑론을박하느라 체력을 소모하는 모습을 보면 유권자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비중 있는 상대후보를 흠집 내어 장기적으로 여론화 하는데 혈안이 된 선거판을 보면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이라 우리는 아직도 정치적으로 후진국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현 정권의 고난의 시발점이 한 아낙의 자녀에 대한 무분별한 무한 욕심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다음 정권에 도전하는 유력한 후보가 가족에 대한 무한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도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이다. 자기의 능력을 피력하기보다 상대의 결정적 상처를 찾고 피할 수 없게 몰아붙이는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행태와 맞으면 됐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병폐적인 모습도 참 실망스럽다.

국민들은 너무 많은 복지를 누리면서도 한 편으로는 너무 과한 복지를 걱정한다. 가정에서도 수입이상의 지출을 한다면 빚을 얻을 수밖에 없고 빚이 감당 못하게 늘어나면 파산이란 것이 닥치는 법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어느 정치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채무가 있는 상황에서 복지를 하자면 증세를 하거나 더 큰 채무를 지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이미 진 빚을 해결하자면 생산증가와 절약뿐이다.

누가 더 많은 것을 나에게 주는가 하고 후보를 고르는 유권자가 있다면 그도 문제이다. 그러나 걱정스러울 만큼 국가 채무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복지 보다는 빚을 청산하기 위해 허리띠를 매는 내핍생활을 하자고 동의를 구하는 후보자가 없는 것도 실망스럽다.

결국은 증세뿐이면서 꼭 자기 돈을 쓰는 것처럼 이것도 올려주겠다 저것도 새로 주겠다면서 하나 같이 선심을 제안하는 공약들이 현혹으로 느껴져 실망스럽다. 그분들이 유권자는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유권자는 반성해야 하고 자존심을 보여야 한다.

이제는 국민들도 정치는 세금을 효율적으로 써 줘야지 국민의 입맛에 맞춰서 쓰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자꾸 최고치를 경신하는 국가 빚을 안고 갈 셈인가?

어느 후보자랄 것 없이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이해를 방해하는 모호한 말을 하거나 상대 후보를 자극적인 말로 폄훼하는 후보에게 실망한다. 하기야 같은 당에서도 경선과정에서 조차 다시 안 볼 것처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서로 넘기는 걸 보고 정치란 건 참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본선은 더 심각해서 걱정이다. 상대로부터 별별 소리를 다 듣는 후보자 가운데 누군가 한 분은 나라를 대표하게 된다. 그토록 공격받고 바닥에 이르기까지 폄훼되던 당선인을 우리는 어떻게 대통령으로 존경하란 말인가? 누가 당선되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아직도 우리는 실망하는 중이지만 국익 우선 공약과 지킬 수 있는 공약을 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고품격 토론을 보여주는 그런 선거운동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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