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146]장수면 화기2리 ‘장수원·물미’

장수원 마을전경

임진 때 충절가문, 만수(曼壽) 누려 ‘장수원’
축사(畜舍) 없는 청정마을, 금연하는 건강마을

장수면 장수원 가는 길
장수면에 있는 장수원 마을은 장수 조이월드와 마주보고 있는 마을이다. 영주시내에서 가흥교를 건너 장수방향으로 간다.

장수 IC 사거리에서 감천방향 구 도로를 따라 장수원 고개를 넘으면 자동차전용도로 다릿발 사이로 보이는 마을이 장수(長壽)하는 마을 장수원이다. 도로변에 화기2리(장수원, 물미, 새마을) 이정표가 있고, ‘장수원’이라고 새긴 큼직한 표석도 있다.

지난 9일 장수원 마을에 갔다. 물미에 있는 마을회관에서 나길주 이장, 김대기 노인회장, 김숙자 부녀회장, 이교준 성균관유도회장 그리고 여러 마을 사람들을 만나 ‘장수원’의 역사와 ‘물미’의 유래를 듣고 왔다.

장수원 표석

역사 속의 ‘화기2리’
화기2리 지역은 1413년(태종 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경상도 영천군(榮川郡) 서면(西面) 지역에 속했다.

조선 중기 무렵 행정구역을 방리(坊里)로 구분할 때 호문송리(好文松里) 화기방(花岐坊)이라 부르다가 영조 이후 면동(面洞)으로 바뀌면서 호문송면 화기동이 됐다. 조선 후기에 와서 1896년(고종33)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호문송면이 호문면(好文面)으로 개칭되면서 경상북도 영천군 호문면 화기동이 됐다.

그 후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이 영주군으로 통합되고, 두전면(豆田面)과 호문면(好文面)을 병합하여 장수면을 탄생시켰다. 이 때 장수원 지역은 영주군 장수면 화기리에 편입됐다가 해방 후 화기2리로 분리됐다.

나길주 이장은 “화기2리는 우곡천을 따라 내려가면서 장수원, 새마을, 물미양지마와 음지마가 있다”며 “현재 40여 가구에 80여명이 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라고 말했다.

화기2리 표석

전의이씨 장수원 입향
송지향의 영주향토지에 보면 「장수원의 전의이씨(시조 李棹)는 조선 성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이화(李樺)의 증손 이관(李瓘)이 명종(재위 1545~1567) 때 안동 풍산에서 화기로 옮겨 정착했다」라고 적었다.

후손 이교준(79.유도회영주지회장) 씨는 “입향조 관(瓘) 선조께서는 16세손으로 명종 때 제용감정(濟用監正)을 지내셨으며, 아드님 사남(嗣男) 선조와 함께 이곳으로 이거하여 터를 잡으셨다”면서 “정확한 입향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전후 사정을 따져볼 때 1550년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전의이씨가 장수원에 세거한지는 (467년) 500년에 가깝다”고 말했다.

장수원 출신 한뿌리회 초대 회장을 지낸 이근호(70)씨는 “1960년대까지는 전의이씨만 40여 가구가 사는 집성촌이었으나 산업화 이후 도시로 나가고, 지금은 15호정도만 살고 있다”며 “전의이씨 가훈은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 世守仁敬)’이다.

이는 효정공(孝靖公) 정간(貞幹.10세손) 선조께서 세종대왕으로부터 받으신 어필”이라며 “가정에서는 충효의 법도를 전승하고 사회에서는 인자하고 공경하는 기풍을 지키도록 하라는 가르침”이라고 말했다.

물미 양지마

장수원의 유래
전의이씨 장수원문중은 임진왜란 때 충절가문이다. 입향조 관의 아들 사남(17세손.1539-1629)은 임진왜란 때 (55세 고령으로) 의병을 일으켜 1594년 구담, 용궁, 다인, 예천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전후 나라로부터 그 공을 높이 평가받아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종2품)로 증직되었다.

그는 노후에도 서책을 가까이 하고, 풍류를 즐기면서 90세까지 장수를 누리다 돌아가셨다. 사남의 아들 경록(景祿.18세손.1563-1648)은 31세 때 부친을 따라 의병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워 전후 통정대부 용양위부호군(종4품)으로 증직됐다.

경록 또한 이곳에서 85세까지 장수를 누렸다. 영주시사에 보면 「전의이씨 사남·경록 부자(父子)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고, 효성을 다하니 하늘이 감동하여 장수(長壽)의 복을 내려주셨다. 그래서 장수하는 마을이라 하여 마을이름을 ‘장수원’이라고 불렀다」라고 적었다.

이교준 회장은 “일찍이 마을 이름이 ‘장수원’이 되었고, 일제 때 ‘장수면(長壽面)이 된 것은 양대에 걸친 충절과 장수(長壽)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전의이씨 가문의 며느리인 조수희(69)씨는 “장수원은 전의이씨 집성촌으로 오랜 세월 형님, 아재가 함께 살고 있는 마을”이라며 “집안사람들은 충과 효를 실천하고, 어질고 공경하는 정신을 대대로 이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물미 음지마

의성김씨 ‘물미’ 입향
물미의 의성김씨(시조 金錫)씨는 고려 때 문하시중 평장사(平章事) 벼슬을 지낸 연(衍)의 후손이다. 안동 예안에서 세거해 온 의성김씨 일족이 물미로 이거한 것은 23세손 은풍(銀豊.1623-1696)으로부터 비롯됐다.

물미에 살고 있는 후손 김일영(74.34세손) 씨는 “은풍 할아버지의 선대는 원래 안동 예안에 살았는데 임진왜란 때 선친 몽일(夢日.22세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성씨를 알 수 없는) 할머니께서 어린 은풍을 데리고 학가산 넘어 영천 화기로 이거하여 이곳에 터를 잡으셨다”며 “은풍 선조는 호(號)가 퇴산(退山)이며, 1671년에 통정대부(通政大夫-정3품 당상관) 용양위(龍양衛) 부호군(副護軍)에 오르셨다”고 말했다.

퇴산 선생은 물미에서 서당을 열어 강학을 장려하고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70세가 넘도록 장수했다고 전해진다.

새마을

물미의 지명유래
‘물미’의 지명 유래를 여쭈니, 퇴산의 후손 김일영 씨는 “마을 이름이 ‘물미’가 된 것은 은풍 선조의 호 퇴산(退山)에서 유래됐다”며 “물러날 퇴(退)자의 훈(訓) ‘물러나다’의 첫 자 ‘물’자와 뫼 산(山)자의 훈 ‘뫼’자를 따 ‘물뫼’라 불렀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발음이 변해 ‘물미’가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6.25전쟁 후에서 1960년대까지는 20호가 넘게 사는 집성촌이었으나 산업화 이후 타지로 떠나고 지금은 10여호가 산다”고 말했다.

양지마에서 음지마로 건너는 다리 이름이 퇴산교(退山橋)다. 퇴산이 물미에 입향한 시기는 세보의 기록과 전후 사정으로 볼 때 1630년경으로 추정된다.

나길주 이장은 “퇴산 선생이 400여 년 전 마을을 개척했다고 전해지고 있어, 그를 기리기 위해 다리 이름을 ‘퇴산교’라 했다”며 “‘물미’란 은풍의 호 퇴산에서 유래한 순수한 우리말 이름”이라고 말했다.

마을회관

화기2리 사람들
기자가 화기2리 마을 회관에 도착하니 마을 어르신 여러분이 나와 계셨다. 김숙자(61) 부녀회장이 차를 준비해 주셔서 이날 대화는 ‘화기 커피맛’으로부터 시작됐다.

“화기는 역시 ‘화기애애’하시군요”라고 했더니 김숙자 회장은 “화기리에 사니 저절로 ‘화기애애’해 진다”며 “나길주 이장님과 김대기 노인회장님이 잘 이끌어 주셔서 늘 화목하다”고 말했다.

이종금(78)씨는 “화기2리 사람들은 일할 때는 화끈하게 일하고, 놀 때는 ‘하하호호’하면서 고스톱도 잘 치고 잘 논다”며 “이 중에는 고스톱 교장도 있고 노래 선생도 있다”고 말했다.

물미 음지마에 사는 강정자(76)씨는 “우리 마을은 금연·금주의 마을”이라며 “담배 피우는 사람이 한 분도 없고, 회관에서는 절대 금연, 금주”라고 말했다.

우곡천

옆에 있던 백옥자(76) 씨가 거들었다. “담배 안 피우고, 술을 안 먹는 마을이 진짜 살기 좋은 마을이고 건강한 마을”이라며 “보시다시피 축사가 하나도 없는 청정마을이고, 담배꽁초, 술병하나 보이지 않는 금연, 금주의 마을”이라고 말했다.

“화기2리 농사는 어떠냐?”고 여쭈니 오화래(67)씨는 “우리 마을은 논이 많아 벼농사 중심 농업이 발달했다”면서 “밭농사는 생강, 고추, 수박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사전답사 차 장수원에 가서 회관을 찾아 우곡천을 따라 내려가다가 처음 만난분이 김대기(78) 노인회장님이다. 김 회장은 “장수원 전의이씨 내력은 이교준 씨에게 물어보고, 물미 의성김씨 내력은 김일영 씨에게 물어보라”고 하면서 “장수원은 목숨 ‘수(壽)’자에서 유래됐고, 물미는 입향조 퇴산(退山) 선생의 퇴(退)자에서 유래됐다”고 귀띔해 주셨다. 감사드린다.

의성김씨 고기(옛터)
장수 조이월드

 이원식 시민기자

<장수면 화기2리 마을사람들>
 

나길주 이장
김대기 노인회장
김숙자 부녀회장
이교준 성균유도회장
이종금 씨
강정자 씨
백옥자 씨
이근호 전 이장
조수희 씨
오화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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