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영주人, 영주IN 이사람
소백산비로봉 표석이 세워진 사연은[이사람]산사랑, 배드민턴사랑 ‘동신직물’ 김형동 회장
  • 김은아 기자
  • 승인 2017.03.31 11:12
  • 호수 611
  • 댓글 0
풍기초등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모습을 배경으로 김형동 대표가 자신의 라켓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직물협회 회원들과 ‘비로봉’ 표석 우뚝 세워
경북배드민턴연합회 창설, 전국대회도 참여

사계절 언제나 그 자리에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소백산에는 매년 산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내린다. 왔다갔다는 것을 증명하듯 소백산 비로봉 표석 앞에서 한 컷, 옆으로 손을 집고 하늘을 보며 한 컷...

성인 남자의 키보다도 더 높은 이 비로봉 표석, 도대체 누가 세웠을까?

1993년 봉현면 구 직물조합 산우회 회원이었던 김형동(77. 동신직물) 회장은 12명의 회원들과 우리고장에 속한 소백산 비로봉을 상징하는 표석이 있었으면 하는 의견에 공감하고 1천만 원을 모아 기단(반석)과 표석을 마련했다.

김 회장은 “93년 10월에 표석을 올리려고 기단에 글씨도 새겼다. 하지만 이동하려면 여러 문제가 있었고 육군 대민지원사업으로 신청해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게 됐다”며 “육군참모총장에게 각서를 쓰고 한 달이 지난 후 승인받을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각서 사본을 남겨놓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두 번의 현지답사 후 날씨가 좋은 1994년 2월 24일, 경기도 이천 육군301항공대대의 헬기가 우리고장 영주 소백산 항공에 떴다. 이날 바로 비로봉에 표석이 세워졌다.

영주가 소백산의 기반이라는 뜻을 담아 경상북도 순흥면 배점에서 가져온 돌로 기단을 다지고 충청도에서 좋은 돌을 사와 글을 새겨 표석을 세운 것이다.

표석 앞면에는 증명사진에 많이 남겨진 ‘小白山 毘盧峰(소백산 비로봉)’ 한문 글자와 높이 ‘1439.5m’를 새겼고 뒷면에는 소백산 관련 한시가 적혀 있다. 글과 글씨는 향토사학자 송지향(宋志香. 1918.8.2~2004.1.27) 선생이 직접 썼다. 표석이 세워지고 5~6년 후 쯤 ‘경상북도 영주시’라는 글씨를 옆쪽에 새겨 넣었다고 한다.

40대 중반 주말마다 직물조합원들과 등산할 만큼 산을 좋아했던 김 회장은 “산우회 회원들과 전국 어느 산을 가도 정상에 표석이 있었는데 우리고장의 소백산에는 없어 안타까웠다”며 “당시 충청도 지역인 연화봉에는 작은 표석이 있는데 비로봉에는 없어 꼭 세워야겠다고 회원들과 다짐했다”고 말했다.

배드민턴 사랑도 남다른 김 회장은 현재 풍기배드민턴클럽 고문으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그가 배드민턴을 시작한 때는 40대 중반 무렵으로 평소 쉬는 시간과 비가 내려 산에 못가는 날이면 직물단지(현 봉현농공단지) 마당에서 타 업체 사람들과 배드민턴을 즐겼다.

배드민턴 클럽에 가입해 박광일(69) 회원과 1998년 전국대회에 참여를 희망했지만 출전은 좌절됐다. 연합회를 통해 출전해야하는 관계로 당시 연합회 구성이 안 된 경북은 발걸음을 쓸쓸히 되돌려야 했다고.

김 회장은 “경북에 연합회 구성을 위해 각 시군에 연락하고 13개 시군이 모였다”며 “경북은 전국에서 마지막으로 중앙연합회에 가입해 전국대회에 참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북배드민턴연합회 초대회장으로 활동한 김 회장은 전국대회 참여로 선수단을 이끌기 위해 많은 자비를 들여가며 기반을 다져 나갔다.

경북이 상위권으로 올랐지만 더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김 회장은 “생활체육과 엘리트체육이 합쳐지고 지역단체장이 대표를 맡아 바쁜 일정에 배드민턴 활성화가 주춤한 상태”라며 “3대가 모두 즐길 수 있는 배드민턴이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앞으로가 중요하다.

또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비로봉에 오르면 표석에 새겨진 글귀도 한번 보고 자연을 벗 삼으며 고향사랑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은아 기자  haedum@hanmail.net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은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