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탐방[137]단산면 단곡2리 안남

안남마을 전경

파평윤씨 마을개척, 우계이씨 집성촌
우렁이농법, 송이·인삼·사과·복숭아 산지

단산면 안남 가는 길안남마을은 순흥과 부석사이 단산면사무소 서쪽 야산 속에 숨겨진 마을이다. 단산면소재지로 들어가는 옥대삼거리에서 부석방향 우회도로를 따라 300m쯤 올라가다가 단산중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안남교를 건너 산모롱이를 하나 돌아가면 거리안남이고, 다시 500m 쯤 올라가면 안안남이다. 지난 5일 안남에 갔다. 단곡2리 노인회관에서 노흥석 이장, 김종식 노인회장, 윤재근 남목노인회장, 김종희 부녀회장 그리고 여러 어르신들을 만나 안남의 역사와 지명 유래를 듣고 왔다.

 

역사 속의 안남마을

안남지역은 1413년(태종1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로 정비할 때 순흥도호부 일부석면(一浮石面)에 속했다. 조선 중기 때 행정구역을 나타낸 순흥지에 보면 일부석면에는 병산, 회석, 안남동(安南洞), 단곡(丹谷), 아호(鵝谷.면소재지) 등 17개 마을이 있었다.

그 후 1896년(고종33년) 조선의 행정구역을 8도제에서 13도제로 개편할 때 순흥부가 순흥군으로 격하되고, 일부석면은 단산면으로, 안남동은 남목리(南木里)로 개칭됐다.

안남촌 표석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때 영천군, 풍기군, 순흥군을 통합하여 영주군이라 하고, 동원면이 단산면에 통합됐다. 이 때 단산면 남목리와 상단곡리, 하단곡리를 통합하여 ‘단곡리’라 하고 질막은 단곡1리, 안남은 단곡2리가 됐다.

노흥석(52) 이장은 “지금 안남은 행정동명으로는 ‘단곡2리’이고, 속칭 안안남·거리안남 또는 상남목·하남목이라고도 한다”고 말했다.

안남 성황단

지명 유래

‘단산’이란 단곡(丹谷) 곽진(郭瑨,1568-1633)선생과 서현(西峴) 김구정(金九鼎,1559~1638)선생을 기리기 위해 단곡의 단(丹)자와 병산의 산(山)자를 따 단산(丹山)이라 했다고 한다.

그러면 ‘안남’이란 지명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다. 파평윤씨 후손 윤재근(75)씨는 “저희 선조께서 이곳에 터 잡은 것은 난을 피해 안전한 곳을 찾아왔다”며 “당시 이곳은 첩첩산중이라 몸을 숨기고 살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이라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임진기(87) 어르신은 “왕산(王山)을 등지고 아천(鵝川)을 바라보는 우리마을은 소백산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남향마을”이라며 “그래서 옛 사람들은 편안 안(安)자를 써 안남이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마을 허숙(70)씨는 “중지봉(中地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왕산 지맥이 마을을 감싸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며 “왕산이 북서풍을 막아 풍수해가 전혀 없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동샘

파평윤씨 세거 500년

안남의 파평윤씨(시조:尹莘達)는 소정공(昭靖公. 15世)파의 파조인 윤곤(尹坤.坡平君.?-1422)의 후손이다. 후손 윤재근(74.34세)씨는 “절충장군(折衝將軍.정삼품)을 지낸 19세 윤주(尹주.庚子卒.?-1540) 선조의 묘가 안남 질골에 있는 것으로 봐서 1500년경 이곳에 입향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26세 통정랑(通政郞) 벼슬을 지낸 윤영교(경술졸.?-1730) 선조의 묘소, 27세 윤봉학(무자졸.?-1768) 선조의 묘소 등이 남목 후산에 있다”고 말했다.

윤씨는 또 “윤주 선조께서 무오사화(1498) 때 난을 피해 죽령을 넘어 순흥땅 욱금동(郁錦洞)에서 30여년간 살다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이곳 큰골 초입에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파평윤씨댁 며느리인 김정옥(80) 할머니는 “파평윤씨 조상님께서 이곳에 터를 잡은 지 500여년이 됐다”며 “다래덤불을 걷어내고 움막집을 짓고, 산전을 일구어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백년가약 마을회관

우계이씨 집성촌

우계이씨(시조:陽植)가 영주에 터 잡은 것은 고려 충신 이억(李억.8세)으로부터다. 이억의 현손 수형(秀亨.12세.1435-1528)이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벼슬을 버리고 1456년 순흥부 도촌에 은거한 후 그 후손들이 크게 번성했다.

안남의 우계이씨는 수형의 아들 양근(養根.13세)의 후손으로 별좌공파(別座公派)이다.

후손 이방춘(60.27세.단산우체국장)씨는 “별좌공의 후손 일부가 망동(보름골)에서 순흥 읍내리로 이거하여 살다가 저의 조부 대에서 4촌지간 4형제가 안남으로 이거하여 20여 세대가 사는 집성촌을 이루었다”며 “그 때가 아마도 조선말 1890년경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마을 출신 이돈춘(69.휴천동)씨는 “안남의 우계이씨들은 사랑방마다 글방(서당)을 열어 학문을 장려했다”며 “당시 이윤식(李閏植.26세) 백부께서 15대 단산면장(1953-1959)을 지내셨고, 이윤창(李閏昌) 재종숙께서는 단산면의원을 역임하시고, 1962년 단산우체국을 설립하셨다”고 말했다.

 

남목동계 문서

안남 동제(洞祭)

안안남 초입 우측에 수백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고, 그 아래 신령스러운 바위에 「안남(安南) 동신위(洞神位) 도감(都監) 박상수(朴相壽) 이세진(李世鎭) 유사(有司) 장복경(張復敬) 김악이(金樂伊) 김종성(金鍾聲) 光緖六年庚辰四月日」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광서6년은 중국연호로 서기로는 1880년이다.

이 바위글씨는 그 무렵 또는 그 이전부터 동제를 지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박찬래(68) 노인회 총무가 보자기에 싸 두었던 동계(洞契) 장부와 동신제 축문(祝文)을 보여주었다.

안안남 전경

축문에는 “소백산에서 내려온 왕산(王山) 아래 산과 물이 감도는 중지봉 자락 아늑한 곳에, 높으신 성황님을 오래토록 성심껏 모셨사옵니다. -중략- 동민 가가호호마다 자손이 번성하고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풍년들게 하옵시고, 전 동민이 무병장수하게 은덕을 베풀어 주옵소서”라고 기원하는 내용이다.

박 총무는 “안남 동제는 매년 정월대보름날 자시에 지내고, 소지를 올린다”고 말했다.

이교성(90) 어르신은 “안남 동신제는 용왕수를 한 버지기 올리는 게 특이하고, 지역에서 생산된 제물과 맑은술을 올린다”고 말했다.

 

파평윤씨 느티나무

안남 사람들

마을 입구에 안남촌(安南邨) 표석이 있다. 그 내력을 여쭈니 박찬래 총무는 “표석 뒷면에 ‘1994년 甲戌(갑술), 月汀(월정) 題, 耕虛(경허) 謹刻(근각), 村民一同建立(촌민일동건립)’이라고 되어 있다”며 “1994년 이 마을 출신 박홍기(호:耕虛)씨가 서예 스승인 월정(정주상) 선생에게 글씨를 받아 ‘안남촌’이라 새겼다”고 말했다. 마을 남서쪽에 안남지(安南池)가 있고, 단산저수지에서 터널을 통해 내려오는 수로도 보인다.

노흥석 이장은 “단곡2리는 ‘우렁이농법’으로 친환경 벼농사를 짓는 특화단지이고, 안남지 안쪽에는 수만평 인삼, 사과, 복숭아단지가 조성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김종식(79) 단곡2리 노인회장은 “안남은 노인인구가 70%로 높다. 노인복지정책 중 가장 성공한 게 경로당 운영”이라며 “노인이 노인을 서로 보살피고, 또 마을 이장과 노인회 총무, 부녀회장이 경로효친을 잘 하고 있어 고맙다”고 말했다.

연자방아

김종희(57) 부녀회장은 “저희 안남마을은 소백산 아래에서 가장 청정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라며 “서로 화합해서 어른들을 잘 모시면서 정 나누기를 하는 따뜻하고 편안한 마을”이라고 자랑했다. 나복순(88) 할머니는 “마을 행사 중 가장 큰 행사가 성황제”라며 “마을 사람모두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정성껏 제수를 마련하여 동제를 지낸다”고 말했다.

이정이(90) 할머니는 “소백산에서 나는 귀한 제물과 마을에서 생산된 삼실과를 성황님께 올린다”고 말했다. 박분녀(87) 할머니는 “우리마을은 축사, 돈사, 양계장 같은 게 전혀 없는 깨끗한 마을”이라며 “원주민과 귀촌한 사람들 모두 합력하여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백년가약 마을회관

내려오는 길에 남목경로당에 들렸다. 2004년 KBS 6시 내고향 「백년가약(삼성후원)」이 경로당을 지어서 ‘안남골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참 따뜻하고 편안한 경로당이다.

안남지와 덕전골

[이장 연락처:010-4802-4768]

이원식 시민기자

<단산면 단곡2리 안남마을 사람들>

노흥석 이장
윤재근 남목노인회장

 

 

 

김종희 부녀회장
이교성 어르신

 

임진기 어르신
나복순 할머니

 

이정이 할머니
김정옥 할머니

 

박분녀 할머니
박찬래 노인회총무

 

허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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