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십시일반 내놓아 함께하는 생활공동체로
어머니 위해 자녀가 쉼터 제공해 ‘정(情)’ 나눔

영주1동 숫골길 11통 5반(숫골)에는 매일 오순도순 이야기 소리와 따뜻한 음식에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오숙희(72) 어르신 댁인 이곳은 대문을 열면 본채와 떨어져 있는 단칸방이 있다.

이 단칸방은 20여명의 마을어르신들이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식사와 놀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하루를 보내는 생활쉼터이다.

이 쉼터는 3년전 오씨 어르신의 아들이 몸이 아픈 어머니를 걱정하는 마음과 마을어르신들의 오랜 모임장소가 없어진 것이 안타까워 모임 장소로 제공한 곳이다. 오랜 시간 서로 어울리며 지내던 공간이 철거된 터여서 새 모임장소가 어르신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다.

 

 

 

▲삼시세끼 나누는 이웃공동체지난 9일 어르신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쉼터를 찾아갔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루 앞에 신발들이 곱게 일렬로 줄이 서 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작은 방에 15명 내외의 어르신들이 둘러앉아 있다. 옆문으로 연결된 작은 주방에서는 영주1동 11통 임옥분(68) 통장과 2~3명의 젊은(?) 어르신들이 분주하게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재한(80) 어르신은 “30~50년 이상을 이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로 서로의 집에 숟가락 개수도 알 정도로 돈독하게 지내왔는데 이제 모두 70~80대가 됐다”며 “이렇게 생활한지 15년이 훨씬 넘었는데 어느 누구나 와서 함께 어울리고 식사도 함께 한다. 이렇게 하는 곳이 없다”고 남다른 화합모임을 자랑했다.

이에 박금서(65)씨는 “(내가)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해 집에서만 머물다보니 심적으로 힘이 들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마을에 이런 모임장소가 있으니 하루에도 두 세번씩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마을 분들과 어울려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점심을 기다리던 한 어르신이 “송노인은 왜 안오시는가”라고 묻자 몇몇 어르신이 “아침을 늦게 드셨다더라”고 답한다. 하루라도 안보이거나 한 끼 식사라도 건널라치면 안부를 묻는 것이 이곳의 일상이다.

이렇게 마을어르신들이 함께 어울려 지낼 수 있게 된 데에는 임옥분 통장의 노력도 한 몫을 차지한다. 틈틈이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살피고 마을주민들과 함께 음식을 준비해 주고 있다.

주방에서 음식준비를 도운 후 뒷설거지를 하던 양옥순(70)씨는 “어르신들이 서로 마음이 잘 맞아 오랜 시간 이렇게 생활할 수 있다”면서 “노년에 함께 음식과 정을 나누는 자리에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들이 서로 돕고 협력할 필요가 있어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십시일반의 나눔 운영이날 점심은 최씨 어르신이 제공한 고소한 순두부가 상에 올랐다. 임 통장의 소개에 멋쩍어 하던 어르신은 “집에 녹즙기가 있어 옛날처럼 어렵지 않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뒤늦게 문을 열고 들어온 한 어르신은 “병원에 가다가 임 통장이 장을 봐서 갔다는 말을 듣고 점심을 먹으려고 바삐 다녀왔다”고 인사하며 “혼자서는 밥을 챙겨먹기 힘든데 같이 먹으면 입맛도 좋고 재미나다”고 했다.

이곳은 행정적 지원 없이 어르신들 스스로가 5천원, 만원씩 내놓아 쌀과 연탄 등을 구입해 운영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생활하고 서로를 챙기기 때문에 외지에 나가있는 자녀들의 걱정거리는 줄어든다. 사계절을 함께 보내는 어르신들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집 앞마당의 텃밭에 채소를 심어 부족한 음식재료에 사용한다.

강신평(76) 전 통장은 “여름에는 집 앞 나무 밑에 모여 더위를 피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방안에서 옹기종기 모인다”며 “옛날에는 기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나눠먹던 사이라 자녀들이 나간 후에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예산이 지원되는 경로당에 사람들이 없이 비어있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곳은 더 어렵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도 정을 나누고 쌀과 난방비를 각자 부담하는데 조금이라도 지원방안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임 통장은 “어르신들의 한 끼 식사는 중요하다. 이는 어르신들 스스로가 잘 아시기 때문에 후원이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 돌아가며 돕고 단합해 오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이어가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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