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전 영주교육장, 소백산자락길 위원장)

흑석사는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사찰이다. 많은 사찰들이 그랬듯이 흑석사 역시 수많은 질곡 속을 지나온 사찰 중의 하나이다.

6~70년대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였던 흑석사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보물 제681호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고 또한 삼국시대의 석조마애여래상이 새겨져 있어 적어도 통일신라 이전의 사찰로 짐작되기는 하나 아직까지 정확한 창건연대가 밝혀진 바는 없는 사찰이다.

▲ 흑석사(아미타여래좌상)-국보282호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오랫동안 폐찰 신세로 내려오다가 광복을 맞으면서 초암 김상호 스님에 의해 1945년에 중창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던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몸체 안에서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유물들의 기록에 의하면 이 불상은 조선 세조 4년(1458)에 왕실이 주도적으로 조성한 사찰인 법천사 삼존불 가운데 본존불로 조성되었다가 흑석사로 옮겨온 것으로 보이는데 그 연유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법천사라는 사찰명도 경기, 강원, 충청, 경상, 전라 등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정확히 어느 곳에 있었던 절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여간 복장유물에는 불상 제작연도와 제작에 참여한 인물들이 정확하게 나열돼 있음은 물론 독특한 조성 양식으로 조선 초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관리가 소흘한 틈에 이 소중한 문화유산은 잇달아 수난을 겪게 된다.

법보신문에 의하면, 1980년대 후반, 예불을 드리기 위해 전각을 열고 들어간 흑석사 스님이 화들짝 놀랐단다. 주전에 봉안돼 있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주변을 뒤져 천만다행으로 사찰에서 300m 떨어진 논두렁에서 복장유물들과 함께 버려져 있던 불상을 되찾아 모실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누구도 불상 속의 복장유물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터였다. 문화재 관계자들의 확인으로 복장유물이 국보급임을 밝혀냈다. 도난 미수로 인해 국보급 복장유물이 발견되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하나?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복장유물이 국보(제282호)로 지정되자 사찰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다. 경내에 이렇다 할 보관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궁리 끝에 이들을 파출소에 맡기자는 참으로 황당한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딱히 다른 방도가 없었으므로 사찰 측은 복장유물들을 여행용가방에 담아 파출소 무기고에 맡겼다 한다. 문화재에 대한 인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 사건은 한 일간지가 대대적으로, 그것도 자랑삼아 자세히 보도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진 개그 같은 해프닝이었다.

또, 흑석사 신도회장이 사찰 측으로부터 은밀한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복장유물인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4권과 백지금니변상도를 보관해달라는 것이었다. 신도회장은 두 유물을 집으로 가져와 잘 보관하였다. 때문에 불상 및 복장유물의 국보 지정 시 이것들의 행방을 찾지 못하여 지정에서 제외되었었다.

그렇게 복장유물을 은닉해오다 사업자금이 궁해지자 이를 문화재매매업자에게 8000만원에 팔아넘겼다. 이 사건은 문화재매매업자가 매입가격의 10배가 넘는 10억원에 매매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검거되면서 들통이 나고 말았다. 결국 신도회장, 문화재매매업자, 그리고 거래를 주선했던 거간꾼까지 모두 구속되는 불행한 사태를 빚고 말았다.

불행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999년, 석 달 동안이나 끈질기게 사찰 주변을 탐색하던 어떤 사람이 경내로 들어섰다. 불자인 것처럼 합장하고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앞에 서 있다가 스님이 잠시 법당을 비운 사이 불상을 꺼내들고 달아나버렸다. 법당으로 돌아온 스님이 신속하게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도주로를 차단하고 격투 끝에 범인을 검거했다. 다행히 목조아미타여래좌상도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너무 잘 생겨서 죄일까? 가슴에 품기 좋은 알맞은 크기여서 흑심을 유발한 것일까? 이후 흑석사는 특수 제작한 유리 방화 금고에 불상을 모셔두고 있다. 도난 방지를 위한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었음은 물론이다. 복장유물은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옮겨져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다.

왕실의 평안을 기원하고자 조성되었던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정작 평안하지 못했던 아미타부처님이 이제 더는 수모를 겪지 않고 정토왕생의 길을 중생들에게 인도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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