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영주 성불사 지성스님

성불사, 전국 최고 성지로 발전시킬 것
스스로 실천하고 모범을 보이는 것이 교화

끝없는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고 있는 ‘지성스님’을 찾아 1일 오후 성불사로 갔다.
성불사는 상망동 영광고 입구 맞은편 골짜기로 들어간다. 아마도 철탄산 뒤 성재 동쪽 끝자락쯤인 것 같다. 절로 들어가는 입구에 성불사 안내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에는 ‘지장기도도량 성불사 700m’라고 적혀 있다. 마을 안길을 지나 산길로 500m 쯤 가면 아담한 절 성불사를 만난다. 성불사가 있는 이곳은 옛날 삼국시대 말 진묵대사가 움막을 짓고 공부하다 ‘깨우침을 얻은 곳’이라 한다. 그래서 ‘성지(聖地)’로 알려져 있으며, ‘연화골(연꽃모양)’이라는 지명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대웅전 열린 법당 앞에서 지성스님을 만났다. 얼굴 가득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아주시니 순간 편안하고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대웅전 아미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선방(禪房)으로 갔다. 서실 책장과 벽에는 한국인 인물대상을 비롯하여 표창장, 교화위원 위촉장 등이 수두룩하다. 스님이 직접 다렸다는 돼지감자차를 마시면서 나누고 베푸는 마음은 어디서 왔는지 스님께 여쭈었다.

교화란 행동으로 보이는 것
스님께서 교화활동을 많이 하신다기에 교화로 말문을 열었다. 지성스님은 “불교는 강요가 없다. 스스로 와서 행하는 것을 보고 존중해 따르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믿고 따라 오는 것이 불교”라며 “교화는 높은데 있으면 안 돼. 자신을 낮추라는 말이지. 마음속에서 한 단계만 더 낮출 수 있으면 그것이 하심(下心)이고, 하심을 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다”라고 설법했다.

스님은 “중(僧)은 중(中)에 서서 신도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줘야한다”면서 “신도들을 위해 부지런히 축원해서 잘 되면 기쁨을 받고, 기쁨은 또 기쁨을 낳아 스스로 베품으로 이어진다. 나누고 베푸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중(僧)”이라고 말했다.

지성스님은 또 “보살·처사님들이 불전함에 넣은 귀한 돈은 함부로 써선 안 된다”며 “사찰에서 쓰는 최소한의 경비만 쓰고 남은 돈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스님은 “나는 생전에 업이 많은 사람. 빨리 씻으려면 많이 주고 베풀어야 한다”면서 “내 스스로 실천하고 모범을 보이는 것이 교화”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성불사는 화려함이란 찾을 길 없고 검소와 겸손이 가득한 절이다.

스님이 되기까지
지성스님은 영주가 고향이고 고향에서 설법하기 위해 성불사 주지가 됐다고 한다. 영주동에서 태어나 가흥동(한절마)에서 자랐으며 동부초와 영주중을 다녔다고 했다.

19살에 스승이신 도원스님을 만나 출가하여 직지사에서 6개월간 수행하다 도망 나왔다고 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27살에 화엄사에 다시 들어갔다 또 도망치고 말았다. 나이 서른이 되던 해 ‘내가 중이 될 팔자라면 공부를 시작해야 겠다’고 마음먹고 불교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불교대학과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조계종 불교대학에서 법사자격, 포교사 자격증을 받았고, 불교신문 일간지 한반도일보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다.
지성스님이 성불사 주지스님으로 오신 것은 1997년이라고 하니 19년 전이다. 스승이신 도원스님이 성불사 주지로 계셨던 영향도 있겠지만 수행을 통한 중생 계도에 앞장서겠다는 큰 뜻이 작용한 것으로 보여 진다.

영주 성불사
성불사는 지장기도도량으로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입은 절이라는 뜻이다. 또한 성불사는 부처님 진신사리 108과를 모시고 있는 적멸보궁이다. 성불사는 작은 암자에 불과 하지만 지성스님의 큰 뜻을 배우기 위해 많은 신도들이 모여드는 절이다. 지난해 5월에는 아미타부처님 점안법회를 봉행하기도 했다. 이 날 지성스님은 “아미타부처님 점안을 계기로 성불사를 전국 최고의 성지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힌바 있다.

지성스님은 “성불사는 모든 사람들의 사찰이며 불자들이 주인인 절”이라며 “전국에 불자 3천여명이 있고, 불자들은 이곳을 전국 최고의 성지로 발전시키겠다는 큰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지성스님은 영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앙지 신문·잡지사들이 영주까지 와서 취재·보도한 일이 여러 번 있고, 2010년을 전후하여 불교 TV에 출연 강의하는 등 중앙에서 널리 알려진 한국 불교계 지도자 중 한 분이다.

교화·장학 활동
지성스님이 안동교도소 교화위원으로 활동한지 6년째이다. 매월 넷째주 수요일 오후에는 어김없이 교도소에 간다. 성불사 신도 3-4명이 100명분 떡과 과일을 준비해 가지고 간다.

교화 첫째 시간은 자매들과 음식을 나누면서 참회와 희망의 이야기를 나눈다.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고 안아 주기도 하는 시간이다. 둘째 시간은 법회를 연다. 법회 때는 불자 10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법문공부를 한다고 한다.

지성스님은 “내가 교도소에 갈 수 있는 것은 신도님들 덕분”이라며 “재소자 중 불자들은 우리가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지성스님은 교도소 교화 활동 외에도 소년소녀가장 돕기를 수년간 해왔으며, 2016학년도 졸업식 때는 불우학생 중심 고등학생 3명에게 1인당 50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20여 년 전부터 스리랑카에서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매년 스리랑카 각지의 어려운 학생 100여 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지성 스님은 2006년부터 스리랑카 불교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스리랑카 현지 대학에 우리나라 불자들을 유학시키는 소임에도 전념하고 있다. 스리랑카에 끼친 한국과 지성스님의 이미지는 ‘대단히 좋은 나라!’, ‘대단히 좋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을 스님께 여쭈다
지성스님께 최근 비도덕적인 사태를 여쭈어 봤다. 지성스님은 “나, 너, 우리를 가르쳐 서로 아껴주고 밀어주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면서 “「無人上 無人下」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생명을 존중하라’는 부처님 말씀이다. 나 밖에 모르는 사회에서 나누고 베푸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라는 단어를 버리고 ‘우리’라는 단어를 강조하다보면 남을 배려하고 베푸는 마음이 생겨 행복한 가정,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웅전 지붕위로 3천등탑을 건립하고 있는 지성스님은 “올 석가탄신일에는 시민 모두 성불사에 오셔서 3천등탑도 구경하시고, 나눔과 베품을 직접 체험하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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