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사)한국체형보정의학연구소 정연도 강사

노인대학 등 전국을 다니며 발 치유 강의 펼쳐
정연도 강사, “내 몸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인체의 2%가 되지 않는 발이 98%를 지탱하고 있어요. 발은 신체의 축소판이자 제2의 심장으로, 신체의 각 기관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관리가 꼭 필요한 곳입니다”

하루도 쉼 없이 일하는 발!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신체의 일부분인 발이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존0중하거나 관리하는 순서에서는 밖으로 보이는 신체부위를 우선시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지역에서 ‘발’에 관한한 이 사람을 배재하고 말할 수 없게 됐다. 발가락 수리공이라 불리는 정연도 강사가 그렇다.

영광고와 제일고 학생들, YMCA, 봉화보건소 건강교실. 매주 신영주교회 헬스카페, 노인대학 등 지역뿐만 아니라 정 강사는 전국을 다니며 발 치유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전국의 단위를 넘어 몽골, 캄보디아. 필리핀, 그루지아 등 외국으로 나가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네팔지진 구호팀에 합류해 하루 150명 이상의 발을 만지고 왔다. 그는 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했다.

졸업 후 배합사료회사에 소장으로 근무를 하다가 37살의 나이에 사료회사를 차렸다. 주변에서 인정받고 승승장구한 시절이 계속될 때쯤 J양계를 시작했고 그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매각을 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됐다고 한다.

사업 실패로 낙담해 있을 때 신문(국민일보)을 보다가 발 관련 기사를 보게 됐는데 ‘어쩌면 이게 나에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다니는 신영주교회에서 발 치유 교육을 받을 때 더 관심을 두게 됐고 그러다보니 발가락을 늘 만지는 습관이 생기게 됐다고 한다.

정 강사는 “발가락을 만지다보니 길이, 굵기에 따른 차이, 건강상태를 자연스럽게 알게되는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국제발치유 강사교육과 국제 의료복지협회 등에서 교육을 받고 지도자로 활동을 하게 됐다. 그는 2011년 울란바트라 선교교회에서 첫 강의를 시작했다.

“단기선교팀으로 같이 갔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도 되더라. 그 이후로 용기가 생겼다. 원래는 수줍음이 많고 부끄럼을 잘 탔는데 첫 강의 이후로 그런 것들이 점차 사라지더라”고 말했다. 그 후 사람들 앞에서 하는 강의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활동이 됐다고 한다.

지난 5월 대전 유성구청 발치유페스티발을 진행했고 아카데미, 학회, 대체의학쪽에서도 강의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주 3회 정도는 타 지역으로 강의를 하러 간다. 하지만 발치유를 시작하면서도 어려움은 있었다고 한다.

“직업 없이 발만 만지러 다니니까 사람들 시선이 좋지 않더라. 그때 집사람이 마음고생이 심했다. 나는 내 좋아하는 일하러 다녔는데 집사람은 이런 저런 주변의 말들을 다 감당하고 있었다”며 “그래서 영주동에 건강관련 업체인 ‘쌀눈이야기’를 열고 집사람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집사람에겐 참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점차 생활의 안정과 활동의 영역이 넓어지게 됐다는 정 강사는 “내 몸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 몸을 사랑하지 않고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육체건강, 마음 건강을 위해서 제 2의 심장인 발을 만져주는 것만으로도 병원 가는 횟수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발 쌤 혹은 발가락 수리공으로 불리는 정연도 강사는 오늘도 발치유를 통해 사람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저작권자 © 영주시민신문(www.yjinews.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