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수석, 석부작 별난 취미 40년 세월 이재철씨

취미도 유행을 따른다고 한다. 40~50년 전, 수석수집(壽石收集)이 유행인 때가 있었다.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시간만 나면 좋은 돌을 줍기 위해 내(川)와 강(江)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나 수석 수집은 여러 취미 중에서 가장 힘이 많이 들어 평생 고생하기 쉽다고도 한다.

“처음에는 친구를 따라 강남을 가는 격으로 동행했지만 하나씩 돌을 모아보니 그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강변에 굴러다니는 조그마한 돌에서 각기 다른 모양과 아름다운 색채, 상상(想像)에 따라 달라 보이는 형체 등 자연이 오묘하게 만들어 낸 귀한 작품에 푹 빠져 힘이 드는 줄도 모르고 40년 세월을 돌과 함께 살아 왔습니다”

휴천2동에 사는 이재철(79)의 말이다. 이씨는 1965년도 33세 때 건축직 철도공무원으로 채용돼 강원도 철암에서 근무하다가 67년 1월 정선선(민둥산역-구절리역) 개통 시 정선보선사무소로 전근돼 철도시설물 관리 보수업무를 7년간 담당해 왔다. 이후 74년도 영주건축사무소에 전입돼 근무해오다 96년도에 31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했다.

이씨는 자신이 근무했던 정선(旌善)을 “두 번을 울어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 들어 갈 때 산간벽지라서 울고 나올때 자연경관이 너무 좋아 더 살고 싶어 운다는 것이다.

“조양강이 읍(邑)내를 옆에 끼고 맑은 물이 장유수로 흘러 물고기가 많아 천엽(川獵)하기 좋고 여름철 큰물이 한 번씩 지나가면 돌 줍기가 그렇게 좋았습니다. 그때 지역수석 애호가들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제가 수반(水盤)을 만들어 제공하니 쉽게 교분을 맺어 석선(石善)동호회 회원이 됐고 돌에 대한 상식을 가지면서 취미가 되었습니다”

이씨는 그 후 영주에서 일요일이면 승용차가 없던 시절이라 회원들과 함께 열차나 버스를 이용해 문경, 단양, 충주 등으로 수석수집을 다녔다고 한다. 퇴직 5년 전 대부분을 정리하고 수석 30여점으로 풍란 석부작을 만들기도 했다. 이를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보관실, 태양조건, 습도, 겨울 1일 1-2회, 여름 3-4회 물주기 등이 필요해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었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무난한 취미생활을 즐길수 있었다고 했다.

“마침 젊었을 때 그렇게 반대했던 70넘은 아내가 예쁘게 자라는 란(蘭)을 보고 생각을 바꿔 내가 없으면 직접 물도 주고 기르면서 사랑까지 주니 내외간도 대화가 많아지면서 서로의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한때 직장 동료였고 현재 수석동호회원인 가흥동에 사는 권태기(83)씨는 이씨에 대해 “30~40년 전 그때 젊음만 믿고 함께 수석을 수집하기 위해 넓은 강을 헤매고 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라면을 직접 끓여 먹고 하던 일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느 때인가 한 번은 내가 발목을 다쳤는데 약과 붕대를 감아 주며 자기 아픔같이 하던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며 “특히 35년 전에 피나무로 직접 만든 바둑판 하나를 선물로 받아 오늘날 까지 사용하면서 판(板)을 볼 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하는 절친한 친구”라고 말했다.

전우성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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