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춘호 류영경 선생은 1550년(명종5년) 한양에서 출생하여 영주 풍기 백곡, 창원 황씨가에 혼인을 하였다.

처갓집이 크고 넉넉하여 한동안 머무르면서 수학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후일 풍기 백곡을 류상공의 유지라 불렀다. 선생은 본관이 전주이며 오대봉군 가문의 중심인물이었다.

선생의 부친인 류의는 증직 영의정으로 전릉부원군이며 선생은 영의정으로 전양부원군이고 아들 류열은 증직 영의정으로 전원군에 봉해졌다. 손자 류정양은 부마(선조의 6여), 정휘옹주 남편)로서 전창군이며 증손자인 류염은 경상관찰사로 전평군에 봉해졌다.

1597년(선조 30년)정유재란 때 선생은 지중추부사의 위치에 있었으나 피벌되어 아들 오형제와 가솔을 데리고 처갓집 부근인 흥주(지금의 순흥 태장)로 내려와서 잠시 기거를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순흥지역의 일부 지명이 당시 사연들과 연류되어 지금까지 존속되어 오고 있다.

▲이자산
이자산은 지금의 태장리 뒷산 이름이다, 선생이 한양에서 내려와 순흥에 머물 때 둘째아들이 삼십대의 아까운 나이로 병사하였다.
태장리 뒷산에 묘를 쓰고 둘째아들의 묘가 있는 산이라 하여 그산 이름을 이자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망정동
둘째아들의 장사를 지내고 선생은 곧 복직이 되어 귀경하게 되었다. 죽은 아들과 정을 잊고 가야한다고 살던 지명을 망정동이라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망정동은 지금 이자산 부근이며 옛 집터는 전답으로 변하여 그 옛날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평장포
예로부터 정승이 사는 집을 평장각이라 했는데 상공이 살던 곳이라 하여 평.장 두 글자와 포는 물을 의미하는 뜻으로서 류씨 성은 항상 물이 가까이 있어야 성한다 하여 지명을 평장포라 불렀다 한다.
위치는 이자산 줄기로서 지금의 배점댐 위쪽이 된다.

▲태장리
정승을 삼태라 불렀다. 즉 상태, 중태, 하태의 뜻이다. 상공께서 살던 곳이라 하여 뒷날 태장리라 불렀다고 한다.

▲한상곡
이자산 서편지역으로 지금도 5-6호가 살고 있다. 이곳의 명칭은 한양의 한자와 상공의 상자를 따 한양상공이 살던 곳이라는 뜻으로 한상곡이라 하였다고 한다. 선생은 아들 오형제와 가솔 등 대식구를 데리고 순흥땅에 내려왔었다. 아마 형제가 한구역에서 함께 생활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니 여기저기 가까운 위치에서 각자 생활을 한 것 같다.
복직 후 선생께서는 1602(선조35년)에 이조판서에서 우의정이 되었고 1604년(선조 37년)에는 영의정이 되었다. 선생은 순흥에서 복직명을 받고 상경할 때 이곳에서 죽은 둘째아들 식구만 순흥땅에 남겨두고 떠났다고 한다. 지금 순흥에 살고 있는 전주 류씨는 선생의 둘째아들 후손들이다.
이토록 우리고장은 역사의 발자취가 골골이 숨어있는 곳이다.

<영주문화원 이사 designtimesp=23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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