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사람]봉현면 노좌진료소 권 택 기소장

“초창기에는 참 어렵게 출발했어요. 20평 정도에 건물을 짓고 부엌도 없는 방 한칸에서 살림살이를 했습니다. 요일도 시간도 안 가리는 어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시고, 남편과 다툼도 잦았어요”

봉현면 노좌, 유전, 하촌1,2,3리 등 8개 마을 816명의 기초건강을 지키고 있는 노좌 보건진료소 권택기(53)소장의 말이다.

81년 대학을 졸업하고 시 보건소 결핵예방팀 주사담당으로 근무했지만 매일 주사만 놓아야 하는 업무가 싫어 6개월간의 진료소 직무교육을 이수하고 85년 1월 순흥면 배점진료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만 해도 주민들의 돈을 받아도 약값이 안됐어요. 88년 의료보험이 시행되면서 숨통이 터졌지요”
친정이 봉현이라 노좌진료소를 희망했다는 권 소장은 나고 자란 곳에서 진료업무를 보니 친정에 온 것처럼 마음도 업무처리도 쉬워졌다고 웃는다.

“보건진료소도 의료기관으로 분류되지만 취급하는 약의 전부가 기초의약품으로 한정되어 있어요. 감기 몸살은 물론 혈압 당뇨 등의 약재도 중증 치료제는 없습니다”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살피며 혈압 당뇨 등 성인병 환자를 발굴해 병원으로 안내하며 독감이나 유행성 출혈열 같은 계절성 접종으로 주민들에게 봉사하는 일이 주 임무라고 권 소장은 말하고 있다.

“혈압과 당뇨 등으로 고생하고 계시는 40여 명의 환자들이 집중관리를 받고 있어요. 건강한 주민들은 매년 가을철 독감예방접종과 유행성 출혈열 예방접종을 무료로 해드리고 있지요. 유행성 출혈열 예방접종은 2년에 걸쳐 1~2차로 나뉘어 접종해야 항체가 발생합니다”

권 소장은 2009년 진료소를 새로 짓기 전에는 주민자치센터가 있는 면사무소가 있는 오현리까지 주민들을 태워가고 태워오고 했었는데 지금은 이곳 진료소에서 요가, 에어로빅 등 모든 운동을 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봉현면은 남북으로 길게 자리해 있으면서 중간지점에 소백산 능선인 희틋재가 가로막고 있어 다소의 이질감속에 살고 있다고 한다.

“시 보건소에서 내려오는 건강 100세에 도전하는 행복대학 외에도 오래전부터 금연 금주운동을 펴고 있어요. 그 옛날같은 술과 도박은 사라졌지만 혼자 계시면 우울해지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건강한 겨울나기와 유익한 여가선용을 위해 사랑방운영 등 다양한 취미교실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집 전화에 커다랗게 진료소 전화번호를 인쇄한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는 권 소장은 오후가 되면 마을별로 산재한 사랑방을 돈다고 한다.

“연로하신 어른들은 마음에 새겨두고 정기적으로 방문을 해야 합니다.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도 아예 저한테 안부를 물어오기 때문에 어른들의 동향을 더 잘 알아야 합니다”

음료수 한통 들고 사랑방을 돌다가 새참도 얻어먹으면서 어르신들의 수다를 들어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권 소장은 운영협의회(회장 임휘태.54)는 물론 마을 이장과 부녀회장 등과 분기별로 회의를 열고 있으나 난방 등에 사용하는 전기료 값이 매월 50만원을 넘어서고 있어 사용할 때 마다 손이 오그라든다며 웃었다.

“가끔은 진료소를 비운다고 화를 내시는 귀농하신 어르신도 계시지만 지금은 오전 오후가 자리 잡혔어요. 진료소장은 약을 지어주는 업무 못지않게 방문 진료도 중요합니다. 농촌사회가 고령화되면서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많아졌어요. 하루건너 한번 씩은 그 어른들의 동향을 체크해야 안심이 됩니다”

약을 지을 사람은 미리 전화만 하면 우체통을 통해 전달하거나 배달도 가능하지만 연로하신 어른들은 일일이 찾지 않으면 큰일이 나도 모를 수 있다는 것이 권 소장의 생각이다. 사업가인 남편 안정현(56)씨와의 사이에는 아들형제를 두고 있다.

취재를 마치면서......

취재에 응해주신 보건진료 소장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짧은 글 솜씨로 소장님들의 품위에 손색이나 없었는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기자이기에 앞서 한사람의 주민으로 그동안 진료소를 찾아갔다 돌아서면서 진료소장의 역할도 모른 채 근무태만이라 생각했고 ‘한자리에 오래 머물면서 변화가 없고 안일하다’, ‘너무 비운다’ 등의 수 없는 제보를 받기도 했습니다.

진료소를 돌며 기획시리즈로 연재하게 된 것도 진료소의 생리를 더 살핀 뒤에 잘잘못을 가려보자는 생각도 있었습니다만 진료소를 돌면서 소장님의 역할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 최일선에서 열악한 환경속에 근무하는 진료소장이란 자리는 진료소를 자주 비울 수밖에 없는 직업이었으며 약을 지어 배달하거나 우체통을 이용하고 연로하신 어른들을 내 부모처럼 살피며 착신전화를 생활화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서 타고난 천직이라 생각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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