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사람]부석면 임곡진료소 최영희 소장

소백산과 태백산의 양백이 병풍을 이루고 끝없이 펼쳐진 과수원들은 풍요가 뚝뚝 묻어나는 곳 마구령(매기재 해발 810m) 계곡을 흘러내린 수정 같은 물에 발을 담근 채 400여 평의 잔디밭을 안고 앉은 부석면 임곡보건진료소는 차라리 그림속 별장이다.

현관문을 들어서자 10여명의 중년부인들이 쏟아내는 수다가 낯설다.
“귀농인들입니다. 오전9시경에 집을 나와 마을 뒷산을 산책하고 진료소에 들러 운동하시는 3반 주민들이에요”

최근 4~5년 사이 10여명의 귀농인들이 사과의 고장인 이곳 임곡리에 정착하면서 ‘3반’이란 애칭이 붙여졌다는 최영희(55)진료소장의 설명이다.

대학을 나온 80년, 첫 부임지인 배점진료소를 거쳐 82년 이후 30년이란 긴 세월동안 5개 마을 900여 주민들과 함께 생활해 온 최소장은 어른들의 기초건강을 지키는 건강지킴이다.

“초창기에는 20평의 좁은 건물이라 환자 대기실이 딸린 조제실과 살림방 한 칸이 전부였어요. 요일도 시간도 안 가리고 안방까지 찾아드는 어른들 때문에 남편과 다툰 적도 많았지요. 그래도 그땐 마을 자체가 상당히 젊어 활기찬 마을이었어요”

농촌지역이 고령화 되면서 더 바빠졌다는 최소장은 진료소에서 약을 지어주는 업무보다 어른들의 건강을 살피며 고혈압과 당뇨 등의 각종 성인병 환자와 만성 질환자를 찾아내 기록부에 등재해야 집중관리가 되기에 환자발굴업무가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초창기에는 건강관리협회의 지원을 받아 주민들의 건강관리에 역점을 뒀어요. 초보시절엔 기록을 생활화 하면서 노하우를 쌓았지요”

지금은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무슨 약이 필요하신지 훤하게 알고 있다는 그녀는 외출 시에도 진료소 문은 열어놓아 주민들의 운동기구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배려하고 있다. 처음엔 방문 진료 시 현관 앞에 메모를 해두고 착신전화를 휴대폰으로 돌려놓아도 막무가내로 역정을 내시는 어른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약 짓는 업무는 오전으로 정착됐다며 웃는다.

“오후에는 주로 방문 진료를 해요. 어른들이 모여 계시는 경로당이나 사랑방을 돕니다. 자연 부락별로 사랑방을 돌아야 어른들의 상태와 동향을 정확하게 알 수 있어요. 또 거동이 불편한 어른들은 약을 지어다 드려야 하니까요”

점 조직으로 흩어진 작은 사랑방을 작은 음료수 한통 사들고 방문해 어른들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마음의 병까지 읽고 있다는 최소장은 “바쁜 마음에 이동을 재촉하면 어른들은 가슴을 열지 않는다”며 “어른들이 마음을 안 다치는 선에서 일어나는 것도 기술”이라고 말했다.

“시 보건소에서 내려오는 행복대학도 마을 실정에 맞게 조정을 하며 어른들이 좋아하시는 프로그램만 골라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운영협의회(회장 서종철)와 부녀회장, 이장님과 상의를 하면서 내실을 기하고 있는 것이죠. 건강강좌와 노래교실을 열고 있는데 강의시간에는 선비의 후예답게 점잖으셨던 어른들도 강사님이 떠나신 뒤엔 흥겨운 춤판으로 이어집니다”

이곳 진료소도 매주 수요일 오후2시에는 안동의료원의 의사와 영상진료를 받고 있다. 집중관리 되고 있는 25명의 환자들의 혈압과 당의 수치를 미리 입력해 놓으면 의사가 환자상태를 일일이 살펴가며 처방전을 내려준다. 또 집중관리를 받고 있는 어른들은 연 1회 안동의료원에 직접 모시고 가 정밀검사를 받기도 한다.

4년 전부터 24시간 진료소를 지키는 상주제도가 풀려 지금은 영주에서 생활하면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최소장은 시 보건소 업무는 출근하면서 해결하고 있지만 오가는 시간이 40분이나 걸리고 있어 어른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 같아 늘 죄스럽다고 했다.

최소장은 “1인 2역 이상의 역할이 필요한 진료소장 업무는 직무상 자리를 비울 때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사명감을 갖고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 하면서 어른들을 보살필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바빠지는 농번기가 되면 전화약속을 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기다릴 때도 있지만 어른들의 상태를 대체로 잘 알기 때문에 약을 지어 배달하거나 우체통에 넣어놓는 것이 상례화 되어 있어요”
최소장은 슬하에 직장을 나가는 두 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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