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사람]동양화 여백에 열정 쏟는 표구장이 철학자 동초(東樵) 이용석씨

자기 표구점을 찾는 고객에게는 병풍뒷면에 붙일 사군자를 그냥 그려 병풍을 만들어주며 ‘성질이 느린 사람은 서양화를 벽에 걸고 직선으로 걸으며 살아도 되지만, 성질이 급한 사람은 여백이 있는 동양화를 걸고 돌아가는 길을 걸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당부하면서 사람의 DNA를 따지는 표구장이가 있다.

영주시 하망동328-26 동산방표구사 문인화를 그리는 표구장이 동초(東樵) 이용석(李龍錫)씨(73). 풍기가 고향으로 풍기초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군복무는 풍기 금계동 김계원 육군참모총장의 이웃이란 고향 덕으로 의무보급창에서 호화롭게 생활했다.

제대 후 이장을 하고, 예비군소대장을 하고, 풍기가 인삼 고장인 관계로 풍기인삼조합원으로 인삼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러다가 팔자소관인지 문인화에 빠져들었다.

석당(石堂) 김종호 선생에게서 글씨를 배우고, 지경(志耕)선생에게서 동양화를 배웠다. 그러나 그림으로는 호구지책이 안 되기 때문에 배운 것이 표구장이였다.

그는 2002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매화가 입선이 된 것을 비롯 2003년에는 노안(蘆雁)이 입선, 2009년에는 매화가 입선되는 등 3회 입선을 한 후 그 뒤로는 출품을 안 했다.

그가 그린 매, 난, 국, 죽이 잘 그린 그림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자기의 기법과 필력은 독보적인 존재로 먹색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세상에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다만 먼지가 가득한 방에 홀로 앉아 먹향을 풍기는 먹을 갈아 노안을 그리며 그 노안이 하늘로 훨훨 날아올라가는 날을 기다리며 산다.

주로 예천 사람들에게 후배양성을 위한 사사를 했다. 개인 사사를 받은 사람은 30여명에 이른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가족과 떨어져 수도승처럼 적막하게 절개를 지키며 홀로 산다. 하루 담배 두 갑을 피운다. 안주인이 없는 이 집에는 영주에서 쓸모없는 사람들이 다 모인다. 하릴없는 인생들의 사랑방인 셈이다.

특히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다. 다방이나 사람이 모인 데서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열을 올린다. 박정희대통령의 경제와 노무현대통령의 평등을 자랑한다. 그 외에는 국가관도 철학도 없는 과속운전, 무면허운전, 음주운전 대통령뿐이라고 개탄한다. 그리고 대철학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에서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엥겔스 등에서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쑥 꿴다. 마르크스레닌 사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A·스미스 ‘국부론’과 마르크스 ‘자본론’ 등 모르는 게 없다. 모든 철학자가 다 그러하듯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그는 경멸하고 혐오, 불신한다.

불교의 근본요지인 ‘반야심경’ 행초서를 줄줄 외운다. ‘세계는 한 여자의 꽃이다. (世界一花)’, ‘마음밖에 법이 없다 (心外無法)’ 불교의 진리는 비움이라며, ‘반야심경’ 병풍을 많이 만들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웃는다. 그리고 ‘눈 속에 핀 매화는 향기를 팔지 않는다.

(梅一生寒不買香)’, ‘짧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땀 흘리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無汗不成)’, ‘마음에 조금도 나쁜 일을 생각지 않는다. (思無邪)’등 문인화 화제(畵題)를 많이 쓰고 족자를 자꾸 만들다 보니 공자, 맹자, 노자, 순자의 철학을 알게 되고, 유교사상의 사자성어는 진리 아닌 게 없다고 자랑한다.

퇴계선생 후손인 그는 선생이 수 천 년 동안 성현들이 연구한 동양의 심오한 학문을 도표로 정리한 “성학십도”를 선조임금께 바친 주기론과 일원 이기론, 이원일기론 등 성리학에도 밝다.

그는 고서화 수리를 잘한다. 당시는 표구목공을 함께 배웠다. 눈썰미와 손재주가 뛰어난 그는 양질의 표구는 풀 관리에 있다고 주장한다. 화공약품으로 제조된 풀을 쓰지 않는다. 풀을 써 삭혀 쓴다. 그래야 좀이 안 먹고 곰팡이가 슬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값싼 것만 찾고, 전통성 표구를 알아주지 않는 시대로 변했다’고 안타까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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