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사람]서울대 출신 동네 이장 김종구씨

한 송이 꽃도 귀하지 않은 꽃이 없는, 꽃 피는 고향마을 이장이 어느 높은 벼슬보다도 좋다는 봉화군 봉화읍 해저1리 속칭 바래미 마을 김종구(金鍾九) 이장(61). 그는 모곡도 받지 않고 긍지와 보람으로 이장을 한다.

동네 92가구가 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고향을 만들기 위해 마을을 내 몸같이 돌보는 서울대 출신 시골 이장이다.

이 마을은 1919년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金昌淑)옹이 파리 만국평화회의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동네로 파리장서 제1차 2차 3차 ‘유림단사건’이 발생한 마을이다.

집집이 소와 농토를 팔아 군자금을 상해로 보내는 등 34명이 옥고를 치르고, 3대에 걸쳐 항일 투쟁을 한 민족혼을 지킨 마을이다.

작년 7월 군비 및 성금 5천만 원을 들여 이장 자필로 쓴 독립운동비를 세웠고, 이날 박노욱 봉화군수를 비롯한 김중위 전 환경부장관(현 경북신문 논설위원)등이 고향을 찾는 등 인근 영주, 안동, 예천, 영양 지역 독립유공자 후손 및 주민 300여 명이 모여 기념식을 가졌다.

그는 봉화초등, 휘문고(청소년농구 국가대표선수), 서울대학교 사범대를 졸업했다. 경제기획원에 근무하던 아버지의 급서로 맏집 장손인 그는 서울의 꿈을 버리고 집을 지키기 위해 졸업과 동시에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후 춘양중, 봉화여중고, 봉화고, 소천고등에서 19년간 교편을 잡았다. 평교사로 백의종군하려던 교직의 꿈을 접은 이유에 대해 그는 “인간에게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만, 젊은 사람이 없이 쓰러져가는 농촌 현실이 너무 가슴 아팠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마을은 6년째 40억을 들여 유교문화권사업을 하고 있다. 전통 가옥 10채와 우물, 전기 등 일체 통신시설 케이블 지하 설치사업을 하는 등 연내에 환경정비 사업을 마무리 한다.

김 이장은 고향에 살구나무 등 수목원을 만들고 사슴을 기른다. 그리고 집 앞에 꽃밭을 가꾼다. 영주 삼여재 김태균 서예가에게 8년간 사사를 받아 경북도전에 서예특선을 했고, 봉화 애당마을 반현준 단국대 교수에게 4년간 도자기를 수업, ‘흙을 모르면 인생을 모른다’는 도공의 경지에 이르렀다.

도공이 됨은 부인의 시를 달항아리에 정성껏 써서 빚기 위함이다. 부인 김희선 교사(봉화중· 한국문인협회 봉화지부장)는 시인이다. 부인의 주옥같은 시를 예쁜 글씨로 정성껏 쓰고 하늘빛 도자기를 빚어, 올해 안에 개인전을 열어 남는 돈은 마을을 위해 쓰고 싶다고 희망이 가득했다.

슬하에 아들딸 남매가 있다. 김 이장은 기초수급자 및 독거노인 세대를 이광호 봉화읍사무소 마을담당과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살핀다. 인부들과 함께 동네 우물 복원사업에 열중하던 그는 멀리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말했다.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올해 유교문화권 사업이 마무리되면 바래미 마을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아름다운 마을이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이 마을 입구 솔밭 풍락식당 주인 박선희씨(60)를 비롯한 주민들은 “모든 것이 물질 우선 이기주의로 병든 사회에서 일제 36년 침략 혼이 물들지 않은 독립지사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며 “(김종구 이장은) 우리 마을의 정신적 이장 대통령이다”고 말했다.

박하식 프리랜서기자hasik3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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