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이사람] 영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언어지도사 박소영씨

가수 박진영의 ‘그녀는 너무 예뻤다.’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생각나는 여인이 있다. 박소영(47세)씨다.

MBC라디오, MBC TV에서 리포터로 활약하며 영주를 알리던 시절 그녀를 만났다. 예쁘고 날씬하고 게다가 말솜씨까지 있는 그녀, 당시 그녀의 이름은 박군자였다.

당시 명함을 받아든 나는 그녀의 세련돼 보이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주변인들이 그녀를 박소영씨라고 불렀다.

하지만 요즘도 나는 그녀를 박군자씨라고 부른다. 한 번 입력되니 쉽게 고쳐지지 않기도 하거니와 내심 ‘이름이라도 촌스러워야지’ 라는 못된 마음도 없지 않다.

“잘 지내고 있어요. 다문화가정과 함께하는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요즘 어떻게 지내요.? 라는 말에 그녀에게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영주시종합사회복지관내 영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언어지도사’로 일하고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난다. 화려한 모습만 생각나는데 정말 의외였다.

“뒤늦게 다시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2008년쯤 지역사회 주민들을 위한 다문화이해증진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되어 다문화가정양육방문지도사로 다문화가정을 돕는 일들을 해 왔고요. 현재 영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언어지도사로 일하고 있죠.”라는 그녀의 말에 그저 “네 군자씨, 그렇군요.”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군자라고 부르니까 좋은데요. 더 친근감이 가요. 예전부터 아는 분들이 저를 그렇게 부르거든요. 이름을 두 개를 다 써요. 사주에는 ‘군자라는 이름이 맞다.’고 하더라고요. 96년도쯤 MBC TV ‘토요일 아침이 좋아’라는 생방송 프로가 있었는데 당시 함께하는 패널 리포터가 김소영씨 였어요. 저는 패널 리포터로 출연했는데 이름이 같으니까 담당 PD가 ‘은어를 도로 묵이라 하여라.’ 하는 것처럼 다시 박군자라고 해라’해서 박군자로 나갔죠. 누가 뒤에서 박소영씨, 해도 돌아보구요. 박군자씨 해도 돌아본답니다.”라며 환하게 웃는다.

그녀와 얘기하는 도중 그녀의 전화벨이 울린다. 그녀는 너무나 다정하게 친절하게 문제를 해결해준다. “멘토링하는 다문화가정 이주여성분이에요.”란다.

“센타로 방문하는 다문화가정자녀들에게 언어지도를 하고 있어요. 현재 센터로 방문하는 아동은 11명이고 센터로 올 수 없는 아동을 위해서 보육시설로 찾아 가기도 하죠. 한 번은 퇴근 후 봉화에 있는 다문화가정을 방문 하는데 주유소를 50M쯤 앞에 두고 차가 서 버린 거예요. 기름이 없어서- 약속시간이 다 되어가고 갔다 오다가 넣어도 되겠지 싶었는데- 그래서 주유소까지 뛰어가서 패트 병에 담아와 기름을 넣고 가기도 했죠.“라는 그녀는 최근 언어를 지도한 다문화가정 아이의 엄마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눈물을 흘렸단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저 보고 ‘엄마’라고 했어요.”라는 전화를 받고 저도 그만 울어 버렸죠. 보통가정에서 자랐으면 벌써 ‘엄마’, ‘아빠’ 다 할 아이였는데 여기서 지도를 받고 늦게 말문이 터진 거죠.”라는 그녀 얼굴에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보람과 긍지를 느껴진다.

“요즘도 근무시간 외에 사회자 제의가 오면 사회를 봐요. 관장님(영주시종합사회복지관)께서도 흔쾌히 허락하시죠. 하지만 주로 이 일에만 매달려요. 공부할 게 너무너무 많거든요. 지금도 몇 일 제대로 잠을 못 잤더니 눈이 충혈 됐네요.”라는 그녀의 말에 그녀의 눈을 보니 정말 토끼눈이다.

어떤 프로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으니 “제가 뒤돌아보는 성격도 아니고 또, 갑자기 물으니까 얼른 생각이 안 나는데 MBC TV 생방송 ‘토요일 아침’, MBC라디오는 ‘라디오가 좋아요.’, ‘오후의 주부 초대석’ 등이 기억나고, 글쎄요. 가장 기억나는 프로는 아무래도 제 이름을 걸고 했던 ‘이 노래가 그 노래’예요. 2006년에 해서 2007년까지 했던 프로죠.”라고 말하는 그녀는 마치 라디오 프로를 진행하듯이 낱말에 강약 길이를 조절해 ‘이 노래가 그 노래’라고 말한다.

예쁘고 말 잘하는 그녀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영주에 YCN방송이 생기고 그녀에게 아나운서 제의가 들어온다.

“당시 MBC 라디오를 하고 있었는데 YCN 관계자가 연락을 해 와서 방송이 안동으로 넘어가기까지 한 3년 했었죠. 당시 김진영시장이 시정을 보실때 였죠. 그 때부터 영주에서 하는 행사에 사회를 보기 시작했어요. 한국민속예술축제 전야제 행사 사회를 봤는데 주현미, 설운도씨 등이 왔었는데 정말 시민들의 호응이 대단했어요. 그리고 시민들이 나와서 제야의 종도 치고 했던 해넘이 축제 사회를 첫해 분수대에서 할 때도 보고, 오거리에서 할 때도 봤는데 분수대에서 얼어 죽는 줄 알았어요.”라며 당시가 기억나는 듯 몸을 부르르 떤다.

“참! 아시죠? 영주 FM도 했어요. 개국하고 한 1년 했는데 ‘영주, 영주인‘이라는 토크 프로그램이었어요. 이 프로를 하면서 우리지역에 참 훌륭한 분들이 많구나하고 느끼게 해준 프로였죠. 그리고 제가 영주시관광안내봉사원도 1년 했다는 거 아닙니까. 제가 1기 인데 지금도 그때 같이 한 분이 계시더라고요. 그 때 박석홍 선생님으로 부터 많이 배웠죠. 지금도 손님이 오면 제가 설명을 하면 다 너무 놀라시는 거예요.“ 라며 좋아라 하는 그녀를 보니 새침할거라는 선입견이 기우였음을 깨닫는다.

영주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거창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자랐다고 한다.

“저도 대전이고 남편도 안동이 고향이지만 대전에서 살았어요. 남편은 소개로 만났는데 저희 집에 오는 야구르트 배달 아줌마가 엄마께 괜찮은 총각 있다고 소개를 해서 만나게 된 저는 대학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남편은 부산에서 대학원 다니면서 조교로 일하고 있었죠. 제가 대전에서 12시쯤 완행열차를 타고 부산가면 해 뜰 때쯤 되죠. 데이트하던 곳으로 광안리가 생각나네요.”라는 그녀는 그 때 그 사람과 88년 결혼해 96년 남편(경북전문대 권영모교수)의 직장을 따라 온 영주에서 1녀(다정), 1남(오성)을 두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안경애 시민기자 agh3631@yj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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