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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의 역사란 세월의 경과로써 어두워졌으므로 진실을 알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명사에 대한 아첨으로 사실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 플루타르크 영웅전한국철도는 1989년 9월 18일 경인선(노량진-인천)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경부선, 경의선, 평남선, 호남선, 경원선 등이 계속 부설된다. 영주의 철도는 1935년에 시작된다.그해 양평, 원주, 제천, 영주, 영천을 지나는 경경선의 노선을 확정하고, 1936년 청량리 방면에서 착공한다. 1940년에는 양평〜원주와 안동〜우보 간이가 개통되었으며, 소백산맥의
길 따라 세월산책
김덕우
2021.03.0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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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빈은 태종(이방원)의 동갑계원으로 절친, 지영주사 하륜의 생질세종 명으로 한양-영주 관군이 운구, 임금 예우로 ‘종릉’ 하사조선 왕릉에 준하는 석실·팔각묘, 류빈 후손 문과급제자만 80명종릉의 주인 류빈(柳濱)종릉은 문수면 승문1리 버드내(柳川, 종릉로 258) 마을 동녘에 있다. 마을에서 종릉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두 개 표석이 있는데 하나는 종릉(鍾陵), 또 하나는 류릉(柳陵)이라고 새겼다. 마을에서 종릉까지는 약 500m쯤 된다. 또 이곳에는 문수면 만방리 ‘종릉’ 마을과 승문리 ‘버드내’ 마을이 있다. 둘 다 류빈의 묘와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02.2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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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부끄러움이 없을 수 없으니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 - 맹자 ‘진심장(盡心章)’이산면(伊山面)에는 세 개의 길이 있다. 이산로(伊山路)와 신암로(新庵路) 그리고 영봉로(榮奉路)이다.이산로는 청구아파트 앞, 영주로가 끝나는 용암교차로에서 출발하여 이산면사무소와 흑석사를 지나 봉화 황전(黃田) 봉화농공단지 앞에서 예봉로를 만난다. 신암로는 신암교차로에서 석포교 옆 이산로까지이고, 영봉로는 남간고개 너머 술바위지하차도에서 충혼탑 앞과 두월을 지나 봉화 상운면 구천삼거리까지의 길이다. 우국충정(憂國
길 따라 세월산책
김덕우
2021.02.0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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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절당은 단종절신 허방-허윤공-허지 삼대의 위패를 모신 곳허방은 단종을 끝까지 모시다 3년상을 치루고 장릉 인근에 은둔허윤공은 금성대군을 도와 단종과의 밀지를 전하고 격문을 초하다허지는 벼슬을 버리고 영월로 가던 중 병을 얻어 숨을 거두었다단산면 사천리 ‘삼절당’삼절당은 단종절신 현감(縣監) 허방(許邦)과 그의 아들 판관(判官) 허윤공(許允恭) 그리고 손자 현감 허지(許智)의 절의(節義)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 용규(龍揆)가 1876년 건립한 사당(祠堂)이다. 삼절당이 있는 띄기마을은 조선시대 때는 순흥부 동원면에 속한 곳으로 지금은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01.28 16:06
독자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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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은 근소한데, 보통 사람은 이를 버리고, 군자는 이를 보존한다. - 맹자순흥로(順興路)는 순흥초등학교 앞에서 출발하여 읍내리를 지나 순흥면 읍내사거리 교차로까지 가는 길이다. 순흥은 고려시대 흥주(興州)로 부르다가 충목왕(忠穆王) 때, 순흥부(順興府)로 승격하였다. 그리고 태종 때,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가 되었으나, 단종복위운동을 실패하며 폐부가 되고, 숙종 때에 다시 부(府)로 회복되었으나 일제 때에 순흥면이 되었다. 회헌(晦軒) 안향(安珦) 도동길(道東路)“삼한(三韓) 천만 년에 진유(眞儒)를 내리시니,
길 따라 세월산책
김덕우
2021.01.20 15:40
독자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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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6년 정월 부친상, 12월 모친상으로 영주서 5년 시묘살이묘소 앞에 여막을 짓고 학문에 정진하면서 남방학사 길러내정몽주, 정도전에게 ‘맹자’ 선물하고 우정의 편지 주고받기도 영주가 배출한 삼봉 정도전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영주가 배출해낸 걸출한 인물 가운데 단연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정도전의 선대는 봉화에서 누대에 걸쳐 살아오다가 고조부인 정공미(鄭公美)를 전후해 영주로 이거했다. 정도전의 아버지 정운경(鄭云敬, 1305-1366)은 순전히 자신의 능력에 의해 문과에 급제하고 형부상서에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01.14 15:21
독자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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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 있어서 대사건의 역사는 범죄사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 볼테르 / 풍속에 대하여회헌로(晦軒路)는 서천사거리에서 출발하여 안정면 동촌리를 지나 순흥교차로까지 가는 길이다. 회헌(晦軒)은 안향(安珦)의 호이다. 회헌로는 성리학을 도입하고, 섬학전(贍學錢)을 설치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간 안향을 기리면서 지은 이름이다. 물가를 따라가는 옛길조선시대 영주에는 세 고을이 있었다. 순흥부(順興府)와 풍기군(豊基郡) 그리고 영천군(榮川郡)이다. 그리고 이 고을마다 역(驛)이 있었다. 풍기에는 창락역(昌樂驛)이, 영천(榮川, 영주
길 따라 세월산책
김덕우
2021.01.0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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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맥 비봉산 서남방 주능선 구릉 경사면 해발 430m에 위치돌을 다듬어 벽돌을 쌓아 방을 만들고 덮개돌을 덮고 봉분을 쌓음무덤방 벽에 그린 벽화 5폭 통해 본 당시 사람들의 종교관 내세관 영주 순흥 벽화고분 위치영주 순흥 벽화고분(이하 벽화고분)은 소백산의 한 줄기인 비봉산(飛鳳山) 정상에서 서남방으로 뻗어 내린 주능선 구릉의 경사면 해발 430m에 위치한다.이 벽화고분은 돌을 다듬어 지상에 무덤방(墓室)을 만든 돌방무덤(石室墳)으로, 무덤 남쪽에서 무덤방(널방)으로 드나드는 널길(羨道)이 나 있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다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0.12.3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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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람도 자기의 기억을 상실한 사실에 불만을 품지만, 판단의 결여에 대해서 불만을 품는 자는 없다. - 라 로슈푸코, 「도덕적 반성」 영주의 옛길은 영남(嶺南)과 기호(畿湖)를 잇는다. 그리고 길은 역(驛)에서 역으로 이어지는데, 창락(昌樂), 죽동(竹洞), 창보(昌保), 평은(平恩)은 우리들의 소중한 역이었다. 여기에서 옹천(瓮泉)으로 잇던 길은 국도 5호선, 예천 유동(幽洞)으로 잇던 길은 국도 28호선, 봉화 도심(道心)으로 잇던 길은 국도 36호선의 기반이 되었다.길부터 낸 일본의 속셈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日
길 따라 세월산책
김덕우
2020.12.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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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6년 서울 아현동 출생, 1758-1775 충청 예산에서 천주교 서적 탐독1775년 순흥부 동쪽 10리 구고리(배나무실)에서 ‘칠극’에 의한 수계생활1785년 향년 60세 일기로 선종, 순흥부 동쪽 문수산 자락 우곡에 안장 단산면 구구리 홍유한 선생 유적지영주 서천교에서 회헌로를 따라 순흥·단산 방향으로 향한다. 귀내-장수고개-피끝-조개섬-사천(새내)을 지나 바우(사천2리) 마을 앞에서 우회전하여, 구구교를 건너 3km쯤 올라가면 구구3리 배나무실(梨木谷)이 나온다. 마을회관에서 한 집 두 집 지나면 곧바로 홍유한선생 유적지(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0.12.1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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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과 희망은 어머니와 딸이다. 딸과 즐겁게 얘기하고 있으면, 어머니 쪽을 잊는다. - J. 파올로/아폴리즘지천로는 역전통로변 영주석재 앞 삼거리에서 출발하여 꽃동산, 남부육거리, 휴천동 현대아파트를 지나서, 비달고개를 넘고, 한정교를 건너 한정마을 앞에 이르는 길이다.하늘과 맞다은 마을 지천(至天)지천은 고려말 지영주사(군수)로 부임한 하륜(河崙)이 남산이 낮아 재앙이 많다하여 ‘하늘에 이르도록 높다’는 뜻으로 남산을 지천(至天)이라 했다. 지천을 지나 한정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별달재(星月峴, 비달재)’라 하고, 전문대 뒷산을
길 따라 세월산책
김덕우
2020.12.1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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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흥1리 한정마을 정명규 여사의 ‘새마을운동 성공사례 발표문’1976년 12월 13일 새마을운동 6년을 결산하는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가 대전에서 열렸다.이날 박정희 대통령은 대회사에서 “새마을운동으로 5천 년 묵은 가난의 때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며 “부락 공동사업은 주민들의 총의를 모아서 하며, 부녀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주읍 문정리(한정마을) 정명규(44, 어머니회장) 새마을지도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공사례를 발표했다. 정명규 지도자의 발표문에는 이미 부녀회원들이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0.12.0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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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것이고, 은혜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어루만지는 것이다. 무릇 사람이란 이처럼 서로 보답하기 마련이다. - 정도전 / 삼봉집(三峰集) 구수산(龜首山), 구학봉(龜鶴峰), 구성(龜城)은 원래 하나의 산줄기였다. 구학봉과 구성은 용(龍)이 잘라 동구대(東龜臺)와 서구대(西龜臺)가 물 건너에서 서로 마주보게 하였고, 구수산과 구학봉은 사람이 잘라 폭포를 만들었다. 전자는 전설 속의 이야기이고, 후자는 역사 속의 실화이지만, 공통점은 큰 물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산줄기를 잘랐다는 것이다.‘구성’의
길 따라 세월산책
김덕우
2020.11.1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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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마에서 발견되어 영주동으로 갔다가 다시 현 위치로 옮겨통일신라 당시 영주지역만의 독특한 특징이 잘 나타난 불상돌에 새긴 신라인의 염원, 부처의 힘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꿈꿔1915년 ‘덕산사’라고 새긴 동제종 발굴로 한절은 덕산사로 추정‘영주동 석조여래입상’의 위치삼판서고택에서 남쪽으로 100여m 내려가면 구 공공도서관 건물이 있다. 도서관 뜰 서편 보호각 안에 모셔진 석불이 ‘영주동 석조여래입상’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 제60호로 지정됐다. 석불 이름 앞에 ‘영주동’이라고 붙은 것은 문화재 등록 당시 영주동(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0.11.1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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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란 인간의 진정한 재산이다. 기억 속에서 인간은 가장 부유하면서도 또 가장 빈곤하다. -알렉산더 스미스‘군청통로’는 ‘영주로 231번길’과 ‘구성로 350번길’로 이어지는 길이다. ‘영주로 231번길’은 영주시의회 앞, 영주시청소년지원센터에서 가톨릭병원, 태극당까지이고, ‘구성로 350번길’은 LG유플러스에서 영주농협 중앙지점까지 이르는 길이다. 지금은 군청이 없다. 그래서 ‘의회통로’라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아직도 ‘군청통로’가 익숙하다. 왜냐하면 군청이 있던 시절에 이 길이 가장 영화로왔기 때문이다.계몽의 중심, 군청 앞
길 따라 세월산책
김덕우
2020.10.2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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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년 죽죽이 죽령 개척 후 순사했다. 고갯마루에 죽죽사가 있었다.500년 신라 소지왕 죽령순행, 936년 왕건이 죽령에 ‘등항성’ 남기다.죽령에 숨겨진 보물 ‘죽죽사지’ ‘모죽지랑가비’ ‘퇴계선생 죽령유적비’안정 비상활주로에서 소백산을 바라보면 연화봉과 도솔봉 사이 짤록한 지점이 죽령이다. 해발 689m로 소백산 고개 중 제일 높다.역사서에 고갯길의 개척자와 시기가 명확히 기록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옛 고갯길이 있다. 바로 죽령(竹嶺)이다. 삼국사기 지리2에 「본래 고구려 날이군(捺已郡)이었던 지금 영주지역을 ‘신라 파사왕(婆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0.10.2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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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없어져도 복원이 가능하지만, 골목길은 없어지면 복원이 어렵다. 그 골목길이 없어지면 도시의 정체성은 점점 없어진다. -임형남 ‘명륜(明倫)길’은 상망동행정복지센터에서 영주여고를 지나, 영주향교까지 가는 길이고, ‘철탄길’은 영주시의회 앞 주차장에서 선유동계곡을 지나 철탄산 밑에 이르는 길이다. 명륜길은 영주향교로 가는 길이기에 붙여진 이름인데, 명륜(明倫)이라 함은 인간사회 윤리를 밝힌다는 뜻이다. 그리고 철탄이라는 이름은 산줄기의 형상이 달리는 말의 모습인데, ‘달리는 말이 쇠를 삼키는 힘찬 모습’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
길 따라 세월산책
김덕우
2020.10.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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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광승에서 태어나 강명학교·영흥야학·신간회 활동 주역1919년 일제가 군 관아를 헐 때 자재모아 성저에 33칸 한옥신축1934년 공회당을 극장으로 개조-최초 영주극장(현 분수대) 개관 광승마을 출신 송재승(75,야성인) 향토사연구가는 영주시민신문 애독자다. 신문을 받으면 먼저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를 본다는 송씨는 ‘우리 집에도 숨겨진 보물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창고에 숨겨둔 할아버지의 궤짝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기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영주시민신문에 연재되는 ‘숨겨진 보물’에 자극받아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0.10.0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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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시간은 단지 우리를 펼쳐 보일 뿐이다. -막스 프리쉬 ‘가흥로(可興路)는’ 영주서부초등학교 앞, 서부사거리에서 한국폴리텍 영주캠퍼스까지의 도로이다. 서천을 따라 걷던 뚝방길이었는데, 영주예술문화회관’이 지어지고, 새로운 택지가 개발되면서 길이 넓어지고 영주의 새로운 중심길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예전이나 현재, 이 길의 끝은 예천통로이다. 하지만 시가지에서 가흥로로 가는 옛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1961년 수해 때, 옛길을 뭉개고, 새길을 만들어 연결해 버렸기 때문이다. ‘가흥동’의 역사가흥동은
길 따라 세월산책
김덕우
2020.09.2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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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가 성리학 기본개념을 열장의 그림에 담아 선조에게 올린 글소고가 황해도관찰사로 있을 때 경비마련-이산서원에서 목판 새겨그 속에 ‘선비정신의 핵심’이 들어있어 ‘영주 선비들이 꼭 읽어야’1568년 겨울,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68세 때 그동안 자신이 익힌 성리학의 기본개념을 열장의 그림에 담아 17세 어린 왕 선조에게 올렸다.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서 452년이 지났다. 현대를 사는 우리가 해묵은 사상을 끄집어내보려고 하는 것은 ‘선비정신의 핵심’이 그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영주 소수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0.09.18 17:19
독자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