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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계발 위해 8개 문중 협력 1671년 난고서당 설립급제 홍패 동구 느티나무에 걸고 천지신명에 경축 고사작은 마을 대과급제자 6명 배출은 난고서당 교육 덕분우리고장 영주는 시내를 벗어나면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재(文化財)를 만날 수 있고, 만나는 마을 마다 숨겨진 보물이 많아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라고 말한다.기자가 ‘영주의 마을’을 탐방할 때, 우리 고장에서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마을로 희여골(풍기 백동白谷), 고랑골(皐蘭谷, 문수), 서릿골(蟠谷, 가흥동 하한정)을 꼽았다. 그러고는 ‘인재 배출 3골(三谷)’이라 칭했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윤애옥 기자
2022.05.2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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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기중(蔡基中), 1873-1921상주시 이안면 소암리에서 채헌락(蔡獻洛)과 곡부공씨(曲阜孔氏) 사이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극오(極五), 호는 소몽(素夢)이다.한학을 배워 76편의 한시를 짓는 등 문학적 소양이 있었고 억울한 일을 그냥 바라보지 못하는 의협심을 갖고 있었다.1905년 을사늑약 소식을 듣고, 이듬해 풍기읍 서부리로 와서, 1913년 풍기광복단을 조직하고, 1915년 박상진이 조직한 조선국권회복단과 더불어 대한광복회를 조직하면서 경상도지부의 책임을 맡아, 회원 및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7년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5.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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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선생이 여름에도 시원하다 하여 ‘하한정(夏寒亭)’소고의 ‘향나무’ , 소고 문과급제 유가행렬 깃발 ‘장대’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영주를 소개할 때 “역사와 문화의 고장 영주시입니다”라고 말한다.영주는 시내만 벗어나면 가는 곳마다 유적지이고,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마다 귀한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시내 육거리에서 현대아파트 쪽 비달고개를 넘으면 한정교가 보인다. 다리 건너 한정마을 초입에는 큼직한 돌에 하한정(夏寒亭)이라고 새긴 표지석이 탐방객을 맞이한다.돌에 새겨진 하한정 글씨가 한석봉이 쓴 글씨라고 하니 ‘이 또한 보물이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5.0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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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金東鎭), 1867~1952자는 국경(國卿), 호는 정산(貞山). 부석면 상석리에서 태어났다. 1884년 권연하의 가르침을 받다가, 스승의 추천으로 1889년 김흥락의 제자가 되었다. 김흥락은 이황에서 이상정으로 이어지는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인물이다. 그리고 1904년 매학당, 1906년 관선재, 1907년 은구재를 건립하며 후학양성에 힘쓰면서, 1918년 도강서당(道岡書堂)이 있는 부석면 상석리에 동계구곡(東溪九曲)을 만들어 경영하였다.김동진은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른다. 1911년엔 고종의 밀지와 관련으로, 1914년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4.2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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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익지가 고상(故相, 옛 영의정) 류영경의 6대손임을 확인한 영조가류익지 통해 전주류씨 선대와의 인맥 관계를 문답하고 술회한 기록류익지는 순흥 돌다리 출신으로 1762년 식년문과 갑과 제2인 급제어제초경후재경전문답(御製初庚後再庚前問答)은 영조(英祖,재위:1724~1776)가 친히 집경당(集慶堂) 서연(書筵)에 나아가 신하들과 독서하고, 주고받은 문답 내용과 정치적 술회를 기록한 것이다. 이것을 첩(帖)으로 제작하여 내전(內殿)과 동궁전(東宮殿)에 각 1건씩 내입시키고, 입시했던 신하들에게도 분사(分賜)했다.이 책은 당시 승정원 기사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4.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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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림(金敎林), 1865-1938자는 인직(仁直), 호는 회남(晦南). 을미의병(乙未義兵)이었던 지평 우영(羽永)의 아들로 1888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1896년 그 아버지가 일본 헌병에게 시해(弑害)당하자, 피 묻은 옷을 입고 상경하여 명예를 회복하며, 그 효행으로 참봉 벼슬을 하사받았다.1905년 일본의 침략을 틈탄 혼란한 시기에, 토호세력을 업고 약한 농민을 울리는 무법세력을 견제할 목적으로 초군청을 설립하였다. 나라가 인정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하여 직접 상경(上京)하여 조정에서 이란 도장을 받아왔다. 190
길 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4.1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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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친정갱진첩’은 당시 승정원 주서 유익지가 받았던 것으로영조가 친필 어제를 내리고 신하들이 화답 시를 지어 올리다유익지는 순흥 돌다리 출신 1762년 식년문과 갑과 제2인 급제 영주 순흥 돌다리(石橋里)춘호 대감(영의정 春湖 柳永慶, 1550∼1608)이 희여골(영주시 풍기읍 白洞)의 창원황씨 황응규(문과군수 松澗 黃應奎, 1518~1598)의 딸한테 장가를 가서 과거 공부를 시작한 지 3년만인 23살에 문과에 급제했다.이러한 연유로 이곳 희여골이 창원황씨 주요 유적지라 할 수 있다.그 뒤 병마수군절도사(兵馬水軍節度使)로 영남을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4.0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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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순흥도호부 수민단면 원구리(현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 원두들)에서 홍성유(洪聖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홍훈(洪薰)의 종손이다. 10살 때, 경기도 지평현 상석리(현 양평시 양동면)로 이사한다. 여기서 안승우를 만나 그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는데, 경사에 밝고 또 글을 잘 썼다고 한다.하루는 다른 이의 잡에 홍익한의 『화포집(花浦集)』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비록 방계 자손이지만, 우리집에 이 분의 책이 없는 것이 대단히 부끄럽다.”하며 날마다 『화포집』보고 돌아와 외워 썼는데 의병에 참여하는 바람에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4.0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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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갱진첩은 당시 승정원 주서였던 류익지가 받았던 것으로경연에서 어제(御製)에 화답(갱진)한 신하들의 시 엮은 서첩류익지는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류영경의 7세손이다전주류씨 순흥 돌다리(석교리)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고문서 3권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그곳에서 지정을 취소하고 유물의 고향인 순흥 돌다리로 돌아와 소수박물관에 기탁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지역민들은 돌다리 전주류씨 문중 사람들의 애향심에 깊은 감명과 감사를 보내고 있다.고문서 세 권은 어제갱진첩(御製賡進帖), 어제친정갱진첩(御製親政賡進帖), 어제초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3.2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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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암(耻庵) 김석규(金碩奎)이산면 우금(友琴) 두암고택에서 태어났다.1880년 11월 1일 영주향교에 만인소 통문을 발송하고 11월 26일 안동에서 800명이 모여 영남만인소 회합을 가지면서, 이만손이 소수(疏首)로, 김석규를 부소수로 추대하고, 다음 해 2월 29일 한양에서 400여명의 유생들이 함께 상소한다. 그 후 3월 4일 다시 상소하고(소수 김조영), 3월 6일 3차 소수로 추대되어 상소를 올린다. 그리고 3월 16일 형조에 연행되어 3월 17일 평안도 덕천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숨을 거둔다.김홍락은 행장에서 “공의 경학·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3.1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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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평서당대평서당(大平書堂)은 순흥면 석교리(순흥초 아래쪽)에 있었던 서당이다. 대평서당은 정축지변 때 희생된 원혼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서운 서당이다. 이 서당이 언제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료(史料)와 행적 그리고 구전 속에서 그 내력을 찾아보기로 한다.먼저 광뢰(廣瀨) 이야순(李野淳, 1755〜1831, 퇴계의 9세손) 공이 1810년(순조10) 대평서당에 와서 보고 쓴 기문에 의하면, 정축지변(丁丑之變) 때 석교리 일대 65家가 참화를 당하여 구천(九泉)을 떠도는 원혼(冤魂)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살던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3.1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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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한다. 대한제국 광무황제(光武皇帝)의 장례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은 고종이 일제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독살설도 원인이 되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루어진 파리강화회담도 큰 계기가 되었다.이 회담에서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14개 조의 전후처리 원칙 중에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라는 ‘민족자결주의’는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그 후 3월 1일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된다.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시작한 경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3.0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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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치(食治)란 음식을 이용하여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이석간식치방」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한 의학관을 제시이석간은 고향을 지키면서 인술을 베풀고 선비 기품 지닌 명의우리가 사는 영주는 유교의 성지요 선비의 고장으로 역사를 잇고 미래를 열어가는 한국 대표 유교 도시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또한 천하명의 이석간의 고향으로 그가 남긴 경험방 덕에 마을마다 집집마다 전통 식치법 한두 가지는 다 가지고 있는 고을이기도 하다.기자의 집에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온 식치법 몇 가지가 있다.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전해주셨고,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2.2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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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려수필(騎驢隨筆)『기려수필』은 1986년 병인양요(丙寅洋擾)부터 1934년까지 있었던 애국지사의 활동을 직접 답사하며 기록한 기려자 송상도 애국지사의 독립운동 결정체이다.수록 인물은 의병, 의열투쟁 등 독립운동을 전개한 애국지사들이다.그 내용은 원본 5권과 미정고본(未定稿本)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본 5권은 목차, 본문 순서인데, 가 권의 본문은 제 1항 제목 앞에 ‘기려수필’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원본은 한지에 평균 가로 11중, 세로 30자이고, 면구는 총 5권에 769면으로 되어 있다.부록에 해당하는 ‘부효(附孝)’는 77면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2.2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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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간은 조선 대표 명의 4인에 이름 올린 영주사람이석간경험방은 임상 처방을 근거로 만든 의방서석간의 아들, 임진 때 정견 원종공신·정헌 순국 충렬사 배향이석간(李碩幹:1509∼1574)은 조선 성리학의 인간관(人間觀) 즉 마음의 수양(修養)을 강조하는 철학을 ‘몸’의 수련으로 확장해 적용한 명의(名醫)였다. 그는 조선 유교의 정치 이념과 도덕의 준수를 심신 수양의 기초로 삼은 유의(儒醫)이기도 했다.유의는 의원이지만 유학(儒學)에 밝은 사람이며, 유학자이면서 의학(醫學)에 밝은 사람이다. 즉 성리학과 의학에 모두 해박한 지식을 골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2.1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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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구전(口傳)되어 오던 이야기를 1950년대 중반 문서로 작성공주이씨 이병하 종손이 들려준 이야기를 故 김영하 작가가 엮음두 이야기 1982년 KBS ‘전설의 고향’에서 ‘천하명의 이석간’ 방영‘천하명의 이석간-①’ 보도(2022.1.6) 후 영주에 사는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경기도 파주 민통선 안에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허준(許浚)의 묘’가 있다. 경기도는 ‘허준의 묘’를 경기도문화재(기념물, 제128호)로 지정(1992년)하고, 성역화사업을 추진한 결과 지금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영주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1.2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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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간은 영주가 낳은 유의, 명의, 신의로 ‘천하명의’이석간의 묘, 문수면 승문1리 버드내마을 앞 관석골에이석간 묘소 앞 동자석이 손에 들고 있는 게 ‘약병?’이석간은 영주가 낳은 선비요 명의이다. 2021년에도 ‘유의 이석간’, ‘이석간 경험방’에 대한 학술대회가 여러 번 개최되는 등 그의 의술이 재조명된 한 해였다.이석간(李碩幹, 1509∼1574)은 선현들이 남겼던 귀한 가르침을 배우는 일이 일과였으며, 또한 전래되어 온 의서(醫書)라는 의서는 수천 독 하였기에 유의(儒醫), 명의(名醫), 신의(神醫)로 팔도에 이름을 떨쳐 ‘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1.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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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기억력을 지닌 사람들의 공통점은 반드시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사람이며, 그것에 집중하고 훈련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물에 대하여 열심히 알려고 하면 할수록 그 사물은 더욱 잘 기억된다. 그것은 진리이다. -데일 카네기추억을 찾고 싶어요“어머님 생전에 한 번 모시고 가고 싶어요.”지난 봄이었다. 서울에 사는 분이셨는데, 어머님을 모시고 영주에 오고 싶다는 전화였다. 처음 한 말은 국토건설단을 아느냐고 물은 것 같다. 왜 그걸 묻느냐고 했더니, 아버님이 그 일원으로 근무를 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영주에서 신혼을
길 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1.0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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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1815) 8월~병자년(1816) 5월 18일까지 김휘덕의 일기문선왕(공자), 회헌, 신재, 오리, 미수 등 5위의 영정을 봉안신재 9세손 주이태, 돈 10냥 가지고 600여 리 걸어서 오다서원 문밖 행단 좌우에 임시 가옥 20여 곳 만들어 조석 식사「성정개모일기(聖幀改摹日記)」는 을해년(1815) 8월부터 병자년(1816) 5월까지 동주(원장) 김희주(金熙周, 대사간, 의성인, 내성망도리)가 문선왕 영정과 회헌·신재 두 분 영정의 개모를 추진할 때 소수서원 유생 김휘덕(金輝德, 선성인, 문단)이 전 과정을 일기로 쓴 소수서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1.12.2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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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야 하며,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 나아가야 한다.-아산 정주영단산로는 동촌로터리에서 순흥으로 가는 회헌로에서 갈라져 단산천을 따라 단산면 소재지에 있는 옥대삼거리로터리까지 가는 길이다. 여기서 소백로를 만난다. 그리고 영단로는 영주와 단양을 잇는 길인데, 단산교회에서 소백로와 갈라져 좌석리와 마락리를 지나 의풍삼거리에서 영부로와 만난다.두 산줄기 사이로 흐르는 단산천단산로에 들어서면 두 산줄기를 만난다. 서쪽의 산줄기는 국망봉에서 뻗어내려 소수서원 앞을 지나 백산서원에서 끝난다. 그리고 동쪽의 산줄기는 자개봉
길 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1.12.24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