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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幽溪) 송지향(宋志香) 1918-2003평안북도 박천군 동남면 동하동에서 송국훈(宋國勳)과 연안차씨(延安車氏)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2살(1929)에 아버지를 따라 두 동생과 함께 풍기 금계리로 온다.가정 형편상 학교교육은 받지 못했으나, 어려서 책을 좋아하였던 그는 주경야독하며 문학, 역사, 한의학 등을 독학으로 공부했다.34살(1952년)에 금계중학교 교사로 초빙되어 18년간 국어와 역사를 가르쳤다.22살(1939)에 조선일보 풍기지국을 운영하면서 ‘소백산 탐승기’ 등의 글을 조선일보에 게재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10.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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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정은 백암 김륵 선생이 만년을 보내기 위해 처음 지어지고백암의 차자 번계공의 6대손 익련이 1762년 구지의 남에 이건10여 년 전으로 기억된다. 이산면 번계들 대축제 날 낮에는 메뚜기 체험행사에 참여하고, 저녁에는 천운정에서 열린 고택음악회를 감상한 적이 있다. 그 후 이산로를 지날 때마다 천운정(天雲亭)에는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까?’ 늘 궁금해하다가 그해 가을 추억을 떠올리며 천운정을 다시 찾았다.천운정과 번계들농부가 그린 그림, 아름다운 번계들 금빛들판을 상상하며 이산로를 달린다. 이산면 석포리 석포교를 지나자 황금물결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10.0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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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암고택은 영남지방 ㅁ자형 뜰집의 대표적 주택으로 가치 인정영주 현존 주거건축-가옥 중 가장 오래돼 경북유형문화재 지정두암의 후손들 학문에 힘써 문과 8장, 생원ㆍ진사시 22장 급제두암고택(斗巖古宅)두암고택은 1975년 12월 3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1호로 지정(등록)됐다. 우리 고장(영주)에 현존하는 주거생활-주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그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영주 최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고택 솟을대문 앞에 섰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바로 이런 집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4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9.2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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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金性奎), 1904~19461927년 영주청년동맹과 신간회 영주지회 창립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광주학생운동을 계기로 일어난 영주 격문투쟁에 앞장섰다. 신간회 영주지회 집행위원, 총무간사와 영주 청년동맹 집행위원장을 맡아 지역 항일운동을 전개하며, 이를 통해 반군국주의 운동을 촉진하려 했지만, 일제 관헌에 발각되어 금고 8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이후 무섬마을에서 교육 활동을 전개한다. 1928년 10월에 문맹 퇴치, 우리글 교육, 민족정신 앙양 등을 교육방침으로 하는 아도서숙(亞島書塾)을 설립하고 운영위원으로 활동한다. 함께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9.1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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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촌 두암고택두암고택은 영주시 이산면 신암2리 우금마을에 있다. 최근 이전 복원된 이산서원에서 반포의 언덕을 넘으면 우금마을이 보인다. 고택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500년 수령의 늙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금마을의 오랜 역사를 귀띔해 주는 듯하다.고택 솟을대문 앞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1호」라고 새긴 나지막한 표석이 있고 그 옆에는 「우금촌 두암고택」 표지판이 있다.표지판에 “우금촌 두암고택은 ㅁ자형의 정침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사당, 죄측에는 독립된 사랑채인 함집당(咸集堂)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침은 조선 선조 23년(1590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9.0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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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풍환(李豊煥), 1866-1933 이흥식과 황남하의 장남으로 개성에서 태어났다.약관(20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훈랑직, 주사, 시종직을 지내다가, 영양 현감을 하던 부친에게 갈 때마다 외가인 풍기에 머물면서, 풍기가 개성보다 환경과 기후조건이 인삼재배에 적합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1900년대 초 (30대 중반)에 이곳으로 이주한다.1908년 삼업조합(인삼조합) 창설, 1908년 풍기초등학교 설립, 1922년 풍기 금융조합 설립 등 평생을 지역 발전에 헌신하다가, 1933년 67세에 생을 마감한다.그의 장례는 풍기면장(葬)으로 치
길 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8.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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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6년 퇴계는 봉정사에서 제자 금계의 문집을 교정하다금계가 남긴 1천여 수의 시 중 대표적인 시는 ‘거관사잠’거관사잠은 청렴하게, 어진마음, 공정과 상식, 부지런하라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과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1517〜1563년)은 열일곱 살 차이의 사제지간이다.퇴계가 금계의 능력에 대해 “‘총명(聰明)하고 뛰어나며 어떤 일을 맡겨도 잘 할 수 있는 능력(能力)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황준량의 타계(他界) 소식에 실성(失性)하여 길게 부르짖으며 물을 짜내듯이 눈물을 흘렸다. “하늘이 이 사람을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8.1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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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수, 향교 자주 침식-공이 옮겨 세우니 훌륭하고 아름다워신령현감, 문묘증축 힘써 권면·학사(學舍) 창건 ‘백학서원’ 편액성주목사, 영봉서원·향교중수·공곡서당·녹봉정사 등 건립 및 편액황준량, 백운동서원 건립부터 깊은 관심·사촌 황빈 조미 75석 희사금선계곡(錦仙溪谷)과 금선정(錦仙亭)이 아름다운 것은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이란 사람 때문이다. 그 옛날 이곳을 경영했던 황준량은 목민관으로서 ‘선정과 흥학을 제대로 실천한 선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계가 47세에 별세하자 퇴계는 몹시 아끼던 제자를 잃은 것에 대하여 크게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7.2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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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흥학교(沼興學校)소흥학교는 신교육의 발상지(發祥地)이다.서울의 보성(普成)학교와 대구의 계성(啟聖)학교는 같은 해이고, 대구의 신명(信明)학교 보다는 한 해, 안동의 협동(協東)학교보다는 두 해가 빠른 영남지역에서 최고 오래된 학교이다.1906년 3월 고종의 「흥학조칙(興學詔勅)」과 경상북도 관찰사 신태휴의 「흥학훈령(興學訓令)」이 발표되면서, 순흥군수 정재학에 의해 1906년 4월 7일 신식학교인 흥주소학교(興州小學校)가 설립되었다가, 새로 부임한 김창수가 관립(官立)이었던 흥주소학교를 사립(私立) 소흥학교로 개칭한다.그 후 1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7.2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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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 황준량이 조선 명종 때(1550년경) ‘금선대’라 이름 지었다영조 때(1756년) 풍기군수 송징계가 바위벽에 ‘금선대’라 새겼다정조 때(1781년) 이한일 풍기군수 당시 금계 후손들 금선정건립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소풍 갔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나이 들어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 후에도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곤 하는 것은 누구나 엇비슷할 것 같다.우리가 유적지를 찾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 사람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곳을 경영한 사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7.1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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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진(丁泰鎭), 1876~1959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노수(魯叟), 호는 외재(畏齋) 또는 서포(西浦)이다.안정면 줄포에서 정규덕(丁奎悳)과 영양남씨 남석동(南錫東)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동정(東亭) 이병호(李炳鎬)와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1914년 이승희(李承凞) 등과 함께 봉천부의 요중현(遼中縣)에서 독립운동기지 덕흥보(德興堡)를 개척하였으며, 그해 8월 조정규(趙貞奎), 이광룡(李光龍)과 함께 중국의 곡부(曲阜)에서 열린 공자의 성탄대회에 참가하는 등 공교회운동(孔敎會運動)에 참여하기도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7.0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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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헌공은 나주정씨 중시조, 부(賦) 시(詩) 등 700여 수 글 실려우담 정시한은 모우재 건립한 정범진이 우러러 숭모하는 현조해좌공은 풍기군수, 개성유수, 형조판서, 홍문관의 제학 등 역임연민 이가원이 외재에게 글 배울 때 줄포 검암정사에서 공부영주 줄포에 건립된 모우재(慕愚齋) 내 가승관(家乘館)에는 나주정씨 후손들이 현조(顯祖) 선양사업으로 발간한 책들이 전시돼 있다. 정해창 희현당 주손의 안내로 가승관에 전시해 둔 국역 문집과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원본 문집들을 열람했다.기자는 원본 한문본은 구경만하고, 국역 문집만 한 아름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6.3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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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택진(姜宅鎭) 1892~1926호는 하연(何然). 강재기(姜在琦, 1857~1938)와 김열(金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개성 출신으로 서울에서 살다 『정감록(鄭鑑錄)』에 따라 십승지를 찾아 풍기로 왔다.1917년부터 중국 길림성과 국내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19년 10월에 서울에서 상해 임시정부 산하 연통제(聯通制) 기관인 조선 13도 총간부를 조직하고 교섭부장을 맡아 활동하였다.이 활동으로 잡혀 2년간 옥고를 치루고, 출옥 후 풍기로 돌아와 풍기소작조합 결성에 참여하면서, “지주권을 포기하고 소작인 제군에게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6.2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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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우재는 정범진이 그의 10대조 우담 선조를 흠모해 지은 서재 이름현대 학자의 위상과 행적 후학에 알려 장래 모범적 지식인 양성 꿈40년 동안 모은 세계 필통 600개 「필통박물관」으로 전국에 소개돼모우재는 영주시 가흥2동 줄포마을에 있다. 2021년 10월에 개관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필통박물관이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희헌당(希賢堂)이란 현판을 단 고택(안협댁, 安峽宅) 옆에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2층 건물 외벽에 모우재(慕愚齋)란 간판이 걸려 있다.모우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중당 정범진 기념관’이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6.1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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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호(宋永祜), 1903~1968장수면 호문리에서 송인상(宋仁相)과 류하회(柳河回) 사이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아우 송재호(宋在祜, 1906~1974)도 제2차 유림단의거에 함께 활동하였다. 12세 때 영주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18년 3월 졸업하였다.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5개월 만에 그만두고, 1924년 동생과 함께 중국 베이징 북경학원에 입학하여, 1925년 6월에 졸업하였다.1925년 4월, 베이징에서 2차 유림단의거에 참여한다. 이는 독립운동을 위한 군사기지 건설에 필요한 군자금 모금 활동이다. 송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6.1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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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철이 희현당 처음 짓고-1882 대직 중수-2011 해창 중수안협댁, 가훈 충신독경·학문으로 영남 명가·가족 문집 발간‘숨겨진 보물을 찾아서’는 가흥1동 하한정과 문수면 고랑골에 이어 가흥2동 줄포(茁浦)로 올라갔다. 나무고개 넘어 비상활주로(신재로) 중간지점에서 좌회전해 줄포길로 접어들어 농로를 따라 1km쯤 들어가서 상줄교회 앞을 지나면 곧바로 안협댁과 모우재를 만나게 된다.지난 5월 21일 안협댁 사랑채에서 정해창 희현당 주손을 만났다. 사랑채 도서장은 현조(顯祖) 선양사업으로 발간한 우담전집, 해좌집, 우담정시한선생연보,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6.0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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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선(朴齊璿), 1878~1938풍기읍 산법리에서 출생했다. 1908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08년 3월 30일 한성사범학교 부속 보통학교 본과 훈도에 임명되었다. 1910년 경술국치 때, 학생들에게 강제 병합의 불가함을 주장하다가 일제의 감시를 받게 된다. 1913년 영천공립보통학교 훈도, 1917년 풍기공립보통학교 훈도로 근무하였다.1915년 9월 11일, 봉화공립보통학교 훈도로 있던 처남 류명수, 풍기에서 서당을 운영하고 있던 정응봉, 영주 지역의 부호 자제였던 제자 권영목·이교덕 등과 함께 대동상점을 설립한다. 대동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5.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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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계발 위해 8개 문중 협력 1671년 난고서당 설립급제 홍패 동구 느티나무에 걸고 천지신명에 경축 고사작은 마을 대과급제자 6명 배출은 난고서당 교육 덕분우리고장 영주는 시내를 벗어나면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재(文化財)를 만날 수 있고, 만나는 마을 마다 숨겨진 보물이 많아 ‘역사와 문화의 고장’이라고 말한다.기자가 ‘영주의 마을’을 탐방할 때, 우리 고장에서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마을로 희여골(풍기 백동白谷), 고랑골(皐蘭谷, 문수), 서릿골(蟠谷, 가흥동 하한정)을 꼽았다. 그러고는 ‘인재 배출 3골(三谷)’이라 칭했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윤애옥 기자
2022.05.2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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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기중(蔡基中), 1873-1921상주시 이안면 소암리에서 채헌락(蔡獻洛)과 곡부공씨(曲阜孔氏) 사이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극오(極五), 호는 소몽(素夢)이다.한학을 배워 76편의 한시를 짓는 등 문학적 소양이 있었고 억울한 일을 그냥 바라보지 못하는 의협심을 갖고 있었다.1905년 을사늑약 소식을 듣고, 이듬해 풍기읍 서부리로 와서, 1913년 풍기광복단을 조직하고, 1915년 박상진이 조직한 조선국권회복단과 더불어 대한광복회를 조직하면서 경상도지부의 책임을 맡아, 회원 및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7년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05.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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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 선생이 여름에도 시원하다 하여 ‘하한정(夏寒亭)’소고의 ‘향나무’ , 소고 문과급제 유가행렬 깃발 ‘장대’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영주를 소개할 때 “역사와 문화의 고장 영주시입니다”라고 말한다.영주는 시내만 벗어나면 가는 곳마다 유적지이고,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마다 귀한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시내 육거리에서 현대아파트 쪽 비달고개를 넘으면 한정교가 보인다. 다리 건너 한정마을 초입에는 큼직한 돌에 하한정(夏寒亭)이라고 새긴 표지석이 탐방객을 맞이한다.돌에 새겨진 하한정 글씨가 한석봉이 쓴 글씨라고 하니 ‘이 또한 보물이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05.06 1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