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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정은 정운경의 사위로 한성판윤·공조·형조·예조 판서 지내호 미균은 ‘먹을 것이 하늘’이라는 말을 정책에 반영한 목민관내외직 벼슬 두루 거친 후 영주로 낙향해 ‘소쇄헌’ 현판 걸어삼판서고택의 첫 번째 판서는 정도전의 아버지로 고려말 형부상서를 지낸 정운경(鄭云敬)이고, 두 번째 판서는 고려말 한성판윤‧공조‧형조‧예조 판서를 지낸 황유정(黃有定)이다. 그는 첫 번째 판서인 정운경의 사위이면서 정도전의 여동생 남편이기도 하다.영주의 평해 황씨황유정(1343~1421)은 평해 황씨다. 영주의 평해 황씨는 고려말 문과 급제로 영해 부사를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3.03.1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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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공리에 담박하면서 가산에 신경 쓰지 않는 청백리의 표상불의에 맞서고 백성들 편하게 하는 지방관으로 모범 보여어진 사람을 가까이하고 착한 사람을 벗하는 뜻에 순응해지난 호에 이어 삼판서고택의 첫 번째 판서인 정운경을 소개한다. 정도전이 직접 쓴 아버지 정운경의 행장은 방대하면서도 정중하다 할까. 그래서 2회에 걸쳐 소개하게 됐다.어린 정운경은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 집에서 자랐다. 영주(榮州)와 복주(福州:안동) 향교에 다닐 때 매번 수석을 차지해 보는 사람마다 우러러 귀중하게 생각했다. 개경에 올라와 십이도(十二徒, 고려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3.03.0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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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식(李斗植) 1947~2013영주 최초의 사진관이었던 ‘영주사진관’을 운영하는 이종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영주초등학교와 영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하여 서울예술고등학교와 홍익대학교를 졸업했다.홍익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대학생 시절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그후, 한국 추상미술의 맥을 이어가며, 모교인 홍익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국내외에서 70여 회의 개인전을 연다. 국제적인 활동도 활발하여, 1993년 뉴욕 제리 브뤼스터 화랑(J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3.02.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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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세에 영주향교 입학 매번 수석해 복주(안동)향교로 월반삼각산서 공부할 때 한 번 본 것은 모두 기억하며 대의 깨우쳐공정하고 밝은 안목, 분명하고 명쾌한 판단으로 주변 놀라게 해지금은 「삼판서고택」이라고 부르지만, 예전에는 판서댁(判書宅) 또는 삼판서댁(三判書宅)이라고 불렀다.영주 사람들에게 “정운경이 누구냐?”고 물으면 “… …”이지만 “정도전의 아버지”라고 하면 “아! 정운경”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영천(榮川, 옛영주)에는 옛날부터 삼판서댁(三判書宅)이 있었는데 고려말의 정운경(鄭云敬) 판서가 그 사위에게 물려주니, 그 사위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3.02.1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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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스님(1917~2003)속명은 송홍근(宋鴻根). 1917년 송동식(宋東植)과 신동경(申東卿) 사이에서 3남으로 출생하여 풍기읍 금계리에서 살았다.어머니 신씨가 ‘고목에서 꽃이 피고 수많은 별들이 쏟아지고 거북이 나타나는’ 태몽을 꾸고, 친정인 안동 녹전으로 가서 출산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어린 시절, 독립운동으로 아버지가 투옥되었다가 탈옥을 하고 행방불명이 된다.이후 왜경들의 감시와 압박에 못이겨 풍기를 떠나, 화전(火田)을 일구며 살아가며, 단양의 대강보통학교와 예천의 대창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1932년에 예천 서악사 화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3.02.1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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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년경 정도전의 할아버지(정균)가 영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두 번째 판서 황유정이 이 집에 살면서 ‘소쇄헌’ 현판을 걸어1780년 김응련이 고택을 중수할 때 간옹 이헌경이 ‘집경루’라 해구산(龜山)은 ‘삼판서고택’을 품은 성산(聖山)이라고 앞서 밝힌 바 있다.이 산을 성산이라 한 것은 구산 아래 삼판서고택(三判書古宅)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고택의 건축 내력을 알아보려고 구산 아래 있었던 판서택 구지(舊址)에도 가보고, 이전 복원한 삼판서고택에도 여러 번 들러봤다. 또 『영주지』를 비롯한 여러 문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3.02.0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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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주(鄭柄宙), [1926 ~ 1989]이산면 용상1리 배해마을에서 태어났다. 영주에서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안동농림학교 졸업 후 1949년에 육군사관학교 9기로 입교한다.6.25 전쟁의 발발로 1연대 소대장으로 참전한다.1967년 제1공수여단장, 1969년 특전사령부 제1특전여단장, 1971년 제5보병사단장, 1974년 대통령 경호차장에 보임되었으며, 1975년부터 특수전사령관을 지내다가 1979년 강제예편되었다.1979년 12월 12일, 장태완 육군 수도경비사령관과 군사반란을 막아보려 했지만, 특전사령부 예하 부대장 박희도(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3.01.2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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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은 정도전이 태어난 삼판서고택과 동·서구대 등을 품은 성산(聖山)구산 중심엔 가학루, 북 불바위, 동 향서당, 서 구호서원, 남 제민루어릴 적 영주 하망동에 살았다. 국민학교 5〜6학년 때 친구들과 구성공원 아래 삼판서고택 앞을 지나 쪽박소(봉송대)로 가서 절벽 다이빙을 즐기며 놀았고, 구성공원에 올라 골프놀이 하는 구경을 하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어 교가를 불렀는데 ‘구성산 가학루의 어여쁜 정경’이 나왔다. 그래서 구성산과 가학루를 알게 됐다. 그 후 학창 시절 동안 추억 사진은 거의 구성공원에 가서 찍었다.영주에 살면서 구성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3.01.1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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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덕(洪思德)[1943~2020]순흥면 내죽1리 속수마을에서 홍난유(洪蘭裕)와 반남 박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순흥국민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때 영주국민학교로 전학해 졸업했고, 영주중, 서울대 사대 부고,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중앙일보 기자로 일하였다.11대(민한당)와 12대(신민당)에 영주에서, 14대(민주당)와 15대(한나라당)에 서울 강남구(을)에서 국회의원을 했고, 16대엔 비례대표(한나라당)로, 18대(새누리당)엔 대구 서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6선 의원이다.정치 활동을 하며 민주당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3.01.0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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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맨 꼭대기에서 천 년 동안 절 지킨 부처님, 마애삼존불상반쯤 묻힌 석불, 이산면 장정들이 목도로 삼존불 앞에 안치삼국시대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고구려:372, 백제:384, 신라:417〜458)된 이후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사찰들이 존재했을까. 어떤 기록에는 8만4천 개가 있었다고도 한다.흑석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되어 사세를 유지했으나 조선 시대 폐사되어 ‘절골’이란 지명만 남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절은 없어져도 절 주변 흑석·야곡·샘골마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역사는 전해지고 있다. 그 많던 절이 왜 없어졌을까.조선 초 억불숭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12.3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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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봉(友峰) 김창근(金昌槿)[1930~1991]1930년 10월 22일 안동시 녹전면 신평리에서 김석원(金奭源)과 안동 김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영주농업고등학교 재학 시절 민주 학생연맹을 결성하여 우익 청년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필리핀 국립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버클리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을 수학했다.1963년부터 영주에서 제6대, 제7대, 제8대 국회의원을 했다. 1972년 10월 유신을 반대하다가 국회의원직을 잃었다.그리고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12.2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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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은 초암사 상호스님이 1949년 소백산 소개령 때 업고 내려와 흑석사를 중건하고 봉안한 불상이다. 이 불상에서 나온 복장유품은 1993년 11월 5일 국보 제282호로 일괄 지정됐다. 이 목불의 복장기(腹藏記)와 보권문(普勸文)에 의하면 1458년에 정암산(井巖山) 법천사(法泉寺)에서 조성한 불상으로 확인됐다.법천사는 강원도 원주 명봉산(鳴鳳山), 전남 무안군 승달산(僧達山) 등 여러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권선문에 기록된 정암산 법천사는 어딘지 확인되지 않는다.특이한 것은 이 목불 복장에서 나온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12.1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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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白南) 강병주(姜炳周)[1882~1955]평은면 천본리 내매마을에서 강기원(姜祺元)과 이성곡(李星谷) 사이 장남으로 출생하였다.1910년 기독교 재단인 대구 계성학교(啓聖學校) 사범과를 졸업한 후, 고향 마을에 기독내명학교를 설립하여, 향토 계몽운동과 항일독립정신을 고취해 나갔다.1919년 3.1운동에 가담했다가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그 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사회 계몽가와 종교지도자로서 활동을 시작하였다.풍기로 와서 지금의 성내교회인 풍기교회를 맡아 10년 동안 선교와 사회 계몽운동에 매진하였다. 이후 경안노회장(慶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12.1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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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은 1950년 흑석사를 중창한 상호스님이 초암사에 있던 이 불상을 흑석사로 옮겨와 봉안했다.1986년 상호스님은 세수 92세로 입적하고, 아미타불은 흑석사의 주불로 절을 지켜왔다.1992년 흑석사에 도둑이 들어 (귀금속은 챙겨갔는지 알 수 없고) 복장유물을 꺼내 놓는 바람에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됐고, 문화재청과 학자들의 정밀 감정과 연구에 의해 1993년 아미타불과 복장유물은 국보 제282호로 일괄 지정됐다.복장유물의 의의불상은 조선 세조 시기에 왕실이 발원하여 만든 불상이다. 조선 500여 년 동안 이런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12.0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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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부(牧夫) 권진호(權鎭浩) 1915~1951영주 최초의 근대미술인 권진호는 1915년 6월, 부석면 임곡리에서 아버지 권창동(權昌東)과 어머니 전주 최씨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1929년, 를 졸업한 뒤 1930년 ‘대구농림학교’에 진학했는데, 특히 미술부 활동에 두각을 나타냈다.졸업반 때인 1934년 제1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계림의 초춘”이 입선되면서 아예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당시 화가로 활동할 수 있는 최적의 직업이 교사라고 여기고, 졸업 후 ‘대구사범’에 입학해 6개월 단기 교원자격을 획득하고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11.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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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에는 경주 다음으로 국보가 많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17), 무량수전(국보18), 조사당(국보19), 소조여래좌상(국보45), 조사당벽화(국보46) 등 부석사에만 5점이 있고, 소수서원에 안향영정(국보111) 1점이 있어 모두 6점이 있었는데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木造阿彌陀如來坐像, 이하 아미타불)과 복장유물이 일괄(국보282) 국보로 지정되어 영주에 국보가 7점이 됐다.국보가 1점도 없는 시군이 대부분이라고 하는 데 비하면 영주는 ‘찬란한 문화의 보고’란 말이 빈말이 아니다.그런데 흑석사 아미타불은 원래 흑석사에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11.1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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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靑江) 김영하(金永河), 1919~20151919년 3월 3일 지금의 영주시 순흥면 석교리에서 출생하였다.일제 강점기에 순흥보통학교(순흥초등학교)와 중동학교(중동중고등학교)를 나와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를 다니면서, 항일학생 비밀결사 단체인 ‘조선학생동지회’ 활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함흥형무소에서 해방을 맞이한다.해방이 되자마자, 풍기중학원(풍기중학교)에서부터 40년 교직자의 길(영주 근무 29년)을 걷는다.퇴직 후에도 퇴직교사들의 모임인 ‘영주교문회(榮州敎文會)’를 조직하여 교육자들의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하였고, ‘영주향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11.1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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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출생-어릴 적 사서삼경-중국 소련 유학-김구와 독립운동30세 입산-금강 묘향 오대 지리산 거쳐 소백산 초암사 주지1949년 소백산 소개령 때 초암사 떠나 흑석사 중건 불상 봉안1960년대까지만 해도 영주 사람들이 가볼 만한 곳으로 흑석사와 귀내 보트장을 꼽았다.당시 흑석사 가는 길은 이산면사무소를 지나 조그네재를 넘는다. 우측 산중턱 검둥바우를 쳐다보면서 산비탈로 난 오르막길을 올라 산등성이를 넘으면 흑석사가 나왔다.산 아래는 밭이 있고 구릉 아늑한 곳에 작은 절집이 있었다. 법당에는 그리 크지 않은 부처가 모셔져 있고, 산비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11.0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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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이 국풍 성지를 대동하고 태백준령을 친히 답사하여 얻은 터해방 후 백암의 14대손 김준영이 양진재 중건 계획에 종중 대호응1602년 명나라 신종 황제가 준 용연(龍硯), 다양한 문양 보물급천운정과 양진재 사이 백암 선생 시비가 있다. 이 시는 선생이 임인년(선조35, 1602) 겨울 하절사(賀節使)로 명나라 연경(燕京)에 갔을 때 고향집 양진재(養眞齋)를 그리워하면서 지은 시이다. 양진재는 백암 선생이 조용히 거처(居處)하던 집이다.기자는 지난 10월 6일 양진재 사랑채에서 김태곤(金兌坤, 백암의 16대손) 주손을 만나 양진재
우리마을 숨겨진 보물
이원식 기자
2022.10.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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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幽溪) 송지향(宋志香) 1918-2003평안북도 박천군 동남면 동하동에서 송국훈(宋國勳)과 연안차씨(延安車氏)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11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2살(1929)에 아버지를 따라 두 동생과 함께 풍기 금계리로 온다.가정 형편상 학교교육은 받지 못했으나, 어려서 책을 좋아하였던 그는 주경야독하며 문학, 역사, 한의학 등을 독학으로 공부했다.34살(1952년)에 금계중학교 교사로 초빙되어 18년간 국어와 역사를 가르쳤다.22살(1939)에 조선일보 풍기지국을 운영하면서 ‘소백산 탐승기’ 등의 글을 조선일보에 게재
인물따라 세월산책
영주시민신문
2022.10.14 17:16